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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통화ㆍ재정정책의 조화: 한은을 위한 변명

(※ 사견임)

한국은행(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2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1.50%로 동결했다. 시장에서는 경기 상황이 악화되고 있고 인플레이션도 낮아 한은이 조만간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는 1년 및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이 기준금리보다 낮게 유지되고 있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2월 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기 상황 악화에 동의했지만 금리를 인하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에 대해 한은 총재가 너무 소극적으로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다. 한은은 이 총재가 취임한 이후 2014년 두 차례, 지난 해 두 차례 등 모두 네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포인트 내렸다. 1%포인트는 기준금리가 5%를 넘을 때라면 몰라도 인하 직전 2.5%였던 것을 감안하면 적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한은이 소극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경기 및 물가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경기 상황 즉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은 한은에게는 최우선 의무는 아니다. 한국은행법은 한은의 목적을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면서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고 정해 놓았다. 물론 한은의 "통화신용정책은 물가안정을 저해하지 아니하는 범위내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단서도 붙어 있다.

그렇다면 성장률을 제외하고 물가 상황과 최근 한은의 기준금리 조정 추이를 살펴보자. 아래 그림은 소비자물가지수 전년동월비 증가율 12개월 이동평균(인플레이션율), 근원인플레이션율 12개월 이동평균, 그리고 기준금리의 변화 추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 총재 취임 후 한은은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낮아지는 추세에 맞춰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낮췄다. 최근 금리를 동결해 오고 있지만 근원인플레이션율의 안정적 움직임을 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더구나 금융안정에 유의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감안하면 한은의 입장은 이해할 만하다. 여기서 금융안정 관련 지표는 한 가지가 아니고 다양하다. 현재로서는 가파른 가계부채 증가율,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 원화의 절하, 좀비 기업의 부당한 연명 등을 들 수 있다. 또 기준금리가 1.5%인 만큼 앞으로 금리를 내릴 여력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즉 정책 여력을 조금 더 어려울 때를 대비해 아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물론 한은이라고 해서 경제성장률 둔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차원에서라도 그렇다. 사실 문제를 삼자면 전임 김중수 총재 재임 중인 2012년 좀 더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하지 못한 것이 더 아쉬운 면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사정은 있었다. 즉, 유로존 재정위기가 새로운 글로벌 위기로 번질 지 아니면 잘 수습될 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한은으로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할 여력을 남겨놓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금리 정책은 성장률 둔화에 대응하는 유일한 수단도 아니고 갈 수록 그 효과도 떨어진다. 그 뿐 아니라 금리 정책은 거시경제정책의 또 한 축인 재정정책과 함께 운용해야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몇년 간의 재정정책을 살펴보면 오히려 금리 정책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래 그림은 2003년 이후 분기별 정부 소비 및 투자 항목의 GDP 대비 비중을 4분기 이동평균한 것과 기준금리 변화 추이를 함께 표시한 것이다. 그림에서 보듯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되자 한은은 기준금리를 대폭 낮췄고 정부도 재정 지출을 늘려 GDP 대비 정부 소비와 투자 비중은 크게 높아졌다.

이후 위기가 수습되면서 정부 부문의 비중이 낮아진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성장 둔화가 다시 문제가 되면서 기준금리는 다시 인하됐지만 정부 소비와 투자 비중은 오히려 낮아졌다. 심하게 말하자면 통화정책은 완화하고 있는데 재정정책은 상대적으로 긴축적으로 운영했다는 말이 된다.


이런 내용을 다른 지표로 살펴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이 그림은 전년동기대비 경제성장률에 대한 민간 소비와 투자의 기여도와 정부 소비 및 투자의 기여도를 나태내고 있다. 이 그림에서도 역시 기준금리 인하 기간 중 정부 부문의 성장 기여도는 크게 높아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2013년과 2014년에는 세수(재정수입)가 목표에 크게 미달하면서 정부 지출이 예상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세계 최고 수준인 인구 고령화 속도와 낮은 출산율로 미래 재정 수요가 증가할 것을 감안하면 정부는 재정 상황을 최대한 강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금리를 인하하면서 재정은 긴축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최소한 정책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정부 채무가 GDP 대비 40% 선에 그쳐 선진국 및 경쟁국에 비해 월등히 낮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용평가회사들도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해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렸다. 그렇지만 점점 여력이 떨어져 가는 마당에 통화정책을 완화하고 있는데 그 효과를 반감시켜가면서까지 재정 건전성을 지켜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정부부채라는 것이 높다고 꼭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재정의 역할이 필요할 때 효율적으로 재정 지출을 늘려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ㆍ장기적 재정 건전성을 위해서는 더 좋다. 재정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를 외면해서 성장잠재력이 크게 훼손된다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물론 재정을 포퓰리즘적 목적으로 낭비한다든지 추가 지출을 초래하는 방식으로 지출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성장잠재력 훼손을 막는 쪽으로 지출을 늘리는 것은 득이 된다.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직후 일본식 장기불황 위험을 강조하면서 필요하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확대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추경은 대규모 세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 컸으며 다음 해부터는 오히려 재정 건전성이라는 명분으로 재정을 다시 긴축적으로 편성했다.

내가 한은의 정책 담당자라면 이런 사실이 섭섭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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