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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책소개) 한국의 먹거리와 농업 (김흥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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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흥주
출판
따비
발매
2015.06.30.


먹거리와 농업 분야에도 과학적이고 산업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욕하면서 본 책이다. 의외로 괜찮은 에너지 분야 개론서였던 '왜 에너지가 문제일까?'를 본 후, 내가 있는 독서 모임에서 이번에는 농업 분야 개론서를 읽어 볼까 하고 고른 책이 바로 이것이었는데, 정말 실망스러웠다. 한마디로 농업과 먹거리(식품 가공 및 유통)를 산업이 아닌 '대안적 사회운동'의 차원에서만 바라본 책이기 때문이었다.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시작하여 1999년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에서 정점에 이르고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에서 멈춘' 책이라고나 할까.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농업과 먹거리 분야에 정말 제대로 된 과학적이고 산업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왜 에너지가 문제인가'가 저자의 '운동권' 적인 접근에도 불구하고 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에너지가 기본적으로 과학과 산업(=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영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반면, 농업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과학과 산업 이전의, 뭔가 종교적이고 '전산업(pre-industrial)' 적인 존재인 것이 사실이다. '동아시아 소농 사회'의 일원이었으며 '농자천하지대본'의 구호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먹히는 한국은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라도 보다 균형잡힌 논의를 위해 과학자(농학자)와 산업적 측면에서 농업에 접근하는 농업경제(경영)학자가 이 책에 참여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사회학자가 주도하고 있고, 농업경제학자 몇 명도 '대안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의 출간에 들어간 정부 예산이 좀 아깝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논조가 반정부적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과거 지향적이고 '운동' 지향적인 책을 굳이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이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이런 데 쓸 돈으로 어르신들 기초연금을 단 백원이라도 인상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 책은 교육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연구지원사업인 'SSK(Social Science Korea)' 예산으로 발간되었다.

이 책의 1장은 현재 세계의 농업-먹거리 체제를 '초국적 농기업 중심의 기업식량체제'로 바라보고 있다. 농업이 급속도로 산업화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소농들이 심각한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농업이 당면한 어려움'으로 제시된 몇 가지 현상들을 보면서, 나는 왜 농업만 이렇게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된다. '농업의 악순환'이라고 이름붙인,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규모의 증가가 시장 전체의 공급 증가와 이윤 감소로 이어지는 현상은 사실 정도만 다를 뿐 모든 산업에서 관찰되고 있다. 생산의 여러 과정이 분절화되고 기업이 개입하게 되는 현상(전유주의), 최종 생산물을 값싼 산업적 제조품으로 대체하는 현상(대체주의) 역시 농업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기보다는 경제 전반의 산업화 그 자체의 특성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제2의 농업혁명'이라고 불렀던, 산업 혁명의 일부로서의 농업의 산업화를 부정하는 듯하다. 유발 하라리는 '기계화된 농작물 재배법과 산업적 가축사육법은 현대 사회경제 질서의 기반이다'라고 설파한다. 농업 산업화의 부정은 현대 사회경제질서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인 것이다. 생각해 보자. '기업식량체제'에 대한 대안이랍시고 '세계 소농과 성찰적인 먹거리소비 행위를 하는 먹거리시민'의 대규모 연대를 추구한다면, 소득이 낮아 '성찰적인 먹거리소비 행위(=자국산, 유기농, 공정무역 농산물 구매)'를 할 수 없는 대다수의 시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또 기본소득으로 해결한다고? 물론 소농과 농업노동자를 막론한 농업 종사자의 노동조건 개선과 소비자 입장에서 먹거리의 품질 향상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그렇다고 농업이 굳이 전산업 시대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제2장은 한국의 농업 근대화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우선,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근대 농업 식민지 체제로 이행되었다'는 주장은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나는 지적하고 싶다. (사실 이 책에서는 발리바르를 인용하면서 '근대화=식민화'임을 시사한다. '식민화'는 싫지만 '근대화'는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는 무거운 고민으로 다가온다.) 토지조사사업이 '일제에 의한 토지 수탈'이 아니라 조선인 권세가들의 농지 사적 소유를 법제화함으로써 이들을 농업부르조아 계급으로 거듭나게 했다는 평가도 이 책 전반의 '운동권'적 시각을 감안할 때 꽤 인상적이다. 식민지 시대의 농업생산 증대를 위한 근대주의적 통치술 (농민대중의 '타자화' 및 관료에 의한 농민 '계도')이 해방 이후 박정희 시대의 '발전주의적 프로젝트(=새마을 운동)'로 이어졌다는 서술 역시 결국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일부일 것이다.

1970년대의 농업 정책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혼란이 생기기도 했다. 60년대 저곡가정책에 대한 비판이야 농민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타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통일벼로 상징되는 70년대 '녹색혁명'에 대한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닐까. 70년대 '녹색혁명'은 농업기술의 발전과 함께 생산비를 보전하는 이중곡가제 실시, 즉 저곡가정책의 폐지를 기반으로 했는데, 이 얘기를 저자는 쏙 빼 놓고 있다. '통일벼의 쌀자급 프로젝트는 농가부채 증가, 농약 및 비료 의존도의 증가 등을 통해 자본주의적 먹거리순환으로의 체계적 종속을 가져왔다'고 비판하는데, 과연 정부 지원금에 의한 이중곡가제로 지지되는 쌀 자급 프로젝트를 '자본주의적 먹거리순환'의 일부로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자본주의적 먹거리순환'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식민지 시대처럼 쌀을 수출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차라리 경제 논리보다 정치-사회적 논리가 우선한, '식량안보'와 '농촌 살리기'를 위한 프로젝트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농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쌀농사 위주' 현상은 상업적인 필요성이 아닌 이중곡가제의 후신인 '논농업 직불제'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다. 솔직히 나는 옛날부터 쌀농사의 산업화야말로 한국 농업이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논농업 직불제에도 변화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1980년대 이후의 농업 세계화 내지 '기업식량체제로의 이행' 과정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었다는 것도 지적해야겠다. 한국은 분명 '다국적 식품기업과 연계된 수출농업 부문의 성장'과는 거리가 먼 나라이다. 굳이 생각한다면 축산업의 발전 정도를 '기업식량체제'의 증거로 보아야 할 텐데, 이것은 '다국적 식품기업의 의도'라기보다는 경제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

어째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한다 했더니, 저자는 '근대' 내지 '산업적 농업'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린다. '일상화된 근대자본주의 권력의 식민성과 근본적으로 착실하게 씨름해 나가자.' 이게 무슨 얘기인가 했더니, 결국 등장하는 것은 쿠바의 '생태-도시농업'이었다. 쿠바가 소련 붕괴 이후 생태농업으로 '전화위복'을 경험했다? 쿠바도 식량의 40%를 수입한다는데?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등 남미 일부 국가에서 본격화하고 있는, 선주민문화가 가진 대안적 살림살이의 잠재력을 되살리는 탈식민의 정치'에 주목하자는 주장 역시 자다가 봉창 뚜들기는 기분이다. 쿠바의 생태농업 경험으로 북한의 먹거리위기를 해결하자는 주장에는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쿠바는 기본적으로 열대 지방이다.

제3장은 한국 근대 농업의 역사 및 현 상황을 실제 숫자를 제시해 가면서 서술하고 있다. 친환경 농업 육성 정책에도 불구하고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량이 줄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친환경 농업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보여 준다. '주산지화' 유도 정책을 비판하고 있는데, '주산지화'를 하지 않고 한 농가가 배추, 무, 오이, 마늘, 사과를 모두 재배한다면 농산물가격 폭등락 현상이 막아질런지 궁금하다. 농산물 가격의 폭등락은 기본적으로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작아서 벌어지는 현상 아닌가? 정부의 귀농 장려 정책이 농업의 대규모화, 산업화의 계기를 마련하기는 커녕 오히려 중소농가의 숫자만 늘려서 한국 농업의 문제점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저자는 로컬푸드 운동에 귀농 농가가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데, 마치 로컬푸드 운동이 한국 농업의 문제(그리고 노인 복지 문제까지-귀농을 생각하는 사람은 주로 50대 이상이다) 를 모두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된 것만 같다. 아무리 봐도 로컬푸드 운동은 '중산층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상위 10%'의 운동일 뿐 전체 농업을 먹여살릴 수는 없다.

제4장은 한국의 식품산업을 다루고 있다. 한국의 기업식량체제가 앞에서 본 '초국적 농기업 중심'이 아니라 CJ 등의 '수입곡물복합체'에 의해 주도된다는 점을 주목한다. 오뚜기가 마요네즈 세계 1위인 크로르와 케찹 세계 1위인 하인즈를 이겼다는 사실도 나온다. 한국의 식품산업은 '민족자본'의 주도 아래 나름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겠다. 기업식량체제와 소비자의 먹거리 불안/유기농 선호가 결합하여 '유기농의 단작/관행화'가 나타난다는 얘기도 있다. 한국의 자연조건과 산업화를 감안할 때 대량의 곡물 수입이 불가피하겠지만, 일본은 대부분의 수입농산물을 (국내 식품기업이) 직접 구매하는 반면 한국은 60-80%를 초국적 곡물 메이저에 의존한다는 지적도 등장한다. 포화 상태에 이른 식품 산업이 그 영업을 유통업, 외식업으로 넓히면서 소위 '골목상권 보호'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고, 그러면서 농업과 관련된 생태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갈 수 있다는 얘기도 주목할 만하다.

제5장은 먹거리에 대한 문화적 접근이다. 전통 생활문화의 붕괴로 인해 현재 한국의 음식 문화가 '아노미'에 빠져 있다는 진단은 솔직히 상투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일본의 '식육기본법'을 본받아 우리나라도 2009년 '식생활교육지원법'을 제정하였고 이에 따라 '식생활교육 국민 네트워크'가 조직되었으며 2015년 '제2차 5개년 국가식생활교육'이 실시된다는 대목에서는 솔직히 헛웃음이 난다. 이럴 때마다 내가 '자유주의자'라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그리고 저자는 '대안음식으로서의 한식의 가치'를 역설한다. 저장을 위한 발효음식의 발전과 제철음식 위주의 식생활을 동시에 강조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사람들은 자꾸만 '제철식품'을 강조하지만, 사실 4계절이 있다는 것은 '제철식품'이 나오지 않는 계절의 존재를 의미하며, 그래서 발전한 발효음식은 장기 저장을 위한 소금의 과도한 사용과 섭취를 가져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역산물 위주의 자급자족적 식생활이 고유한 향토음식문화를 가져왔다'는 표현 역시 곰곰 생각하면 '주산지화'를 비판하였던 앞부분의 주장과 서로 모순된다. '각 지역마다 생산되는 특산물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서,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타 지역이 생산한 다양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창조적인 음식 문화를 발전시키자'는 주장이 더 낫지 않을까. 이왕이면 수입한 식재료도 사용하여 다양성을 더 키우고 말이다. '발효음식에 치유적 가치가 있다'는 주장은 그 유명한 '김치 워리어'를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서, '가족 중심의 노동집약적인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자급자족했던 전통적 식생활은 장수에 유리하고 치유적 가치를 중시하는 식생활이다'는 주장은 그냥 나를 소름끼치게 만든다.

제6장은 먹거리정치에 관한 내용이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가 한국 먹거리정치의 시초가 되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과연 그 이후 먹거리정치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의문이다. 2008년 일련의 사태에서 먹거리는 대선과 총선의 연이은 패배로 열패감에 싸여 있던 '민주진보세력' 지지자들을 재집결하는 계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당시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의 득표율은 26.1%, 18대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이 전체 299석 중 81석을 얻었었다.) 지금 사람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잘만 먹고 있다. '먹거리정치'의 또다른 상징인 학교 무상(의무)급식 운동 역시 이제는 힘이 다한 느낌이다. 먹거리정치를 강조하는 이 책의 시점이 2008년에서 멈춰 있다는 내 해석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한국의 식량안보 정책이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고 민영화를 확대하는 신자유주의 방향'이라는 주장은 '진보' 인사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류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해외식량조달을 중시했는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식량안보 정책의 기본 중의 기본이 바로 '쌀 농업 보호' 정책임을 저자는 설마 모르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농업이 농협이라는 사실상의 공공기관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도? 국가의 입김이 이렇게 강한 산업이 어떻게 신자유주의라는 말인가? 민간기업의 해외식량개발을 '민영화'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저자가 '민영화'를 너무 광범위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먹거리정치의 새로운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는 '비아캄페시나' 이후의 식량주권 운동은 결국 로컬푸드 운동으로 현실에 옮겨지고 있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도 지적하고 있듯이, 이러한 운동은 '변혁적' 이라기보다는 개인주의나 영양중심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많다. '윤리적 소비'를 강조하는 소비주의 또한 중산층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먹거리정치'로 흐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2008년의 촛불집회를 '소비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은 먹거리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한 사건'으로 높이 평가하지만, 위에서도 얘기했듯 나는 이러한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 과연 촛불집회에 참가한 (나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이 얼마나 '먹거리시민'으로 정치화되어, '먹거리체계를 변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농업 생산자와 관계를 맺는 데 성공' 하면서 이를 '탈자본주의적 상상력과 결합' 시키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해 본다. 과연 먹거리정치, 식량주권/먹거리시민권 운동이 빈부격차, 이중노동시장, 성차별과 같은 '진보 좌파적 관점에서 본' 우리나라의  핵심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먹거리정치' 세력들이 전체 '사회운동' 내지 '민주진보 세력'의 지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지 않았던 것은 결국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궁했기 때문이 아닐까. '먹거리정치'는 가볍게 보면 그냥 중산층 위주의 소비주의이며 심각하게 보면 '전근대로 돌아가자'는 퇴행적인 운동으로 보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GMO 반대'로 자본주의를 해체할 것 같지는 않다는 얘기다. 그냥 일부 소수의 '깨인'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로 그칠 뿐.

제7장, 먹거리복지와 공공급식에 대한 부분이 그나마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끼니 때마다 배고픔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다는 지적은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빈곤 문제를 구체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노인 빈곤율이 높다는 얘기는 노인의 평균 영양 섭취량이 권장량의 50% 미만이라는 더 구체적인 얘기로 치환된다. 공공급식에 사회투자 성격이 있으며 로컬푸드 운동의 중요 수단으로서의 의미도 크다는 저자의 주장에도 나는 동의한다. (특히 로컬푸드 운동의 '중산층화'를 막는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공공급식의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흔히 '결식아동 급식 사업'이라고 부르는 재가보호 아동 급식은 현금급여(전자카드제)로 인한 영양상의 문제점이 지적된다. 편의점에서 도시락 대신 라면이나 간식류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시설보호 아동 급식의 경우 단가가 1식당 1,800원 수준으로 너무 낮은 것이 문제가 된다. 저소득층 재가노인 급식의 경우 1식당 2,800원인 단가도 문제지만 무료급식 대상 인원이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7.2%밖에 안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급식의 경우 현금을 받는 일반수급자는 주거비 부담 때문에 식비에 충분한 돈을 쓰지 못하고 있고, 시설수급자의 경우 1인당 월 생계급여액이 16만원에 불과하며 그나마 시설 운영자에 의한 착복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학교 급식에 있어서 '무상급식 실시를 둘러싼 지나친 이념적 대립이 학교급식 자체의 공공, 교육, 복지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방해한다'는 지적도 마음에 든다. 내가 지지할 수 있는 '먹거리운동'의 상한선은 '우리농산물을 주로 이용한 공공급식'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마지막 제8장은 한국의 대안 농식품운동에 대한 서술이다. 우선, 한국의 친환경농업이 양적인 측면에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주장이 인상적이다. 친환경농산물 재배면적은 2009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역시 2008년 광우병 집회는 '먹거리정치'의 시작이 아니었다) 2015년 저농약 인증의 폐지로 더 많은 농민들이 관행농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생협 운동의 경우 경쟁 격화 및 대형화로 '운동성'이 퇴색하고 유기농산물 직거래 사업(기업)으로 귀착할 다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유사수신' 논란까지 발생한 아이쿱생협 같은 경우 운동보다는 기업으로서의 특성을 더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협동조합을 '운동체와 사업체의 모순적 통일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과연 이러한 조직이 지속 가능한지 나는 의문이다. 결국 운동체나 사업체 둘 중 한 쪽으로 수렴하지 않을까. 로컬푸드 운동의 경우 물리적 거리에 집착한 지역 설정이 운동 전반을 오히려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로컬투드 운동에 정부, 지자체, 농협 등이 참여하여 '운동성' 내지 '관계성'이 희석되는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저자는 유기농산물, 생협운동, 로컬푸드 등이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목표는 과연 무엇일까? 탈자본주의? 탈산업화? 내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일단 탈산업화 및 전근대 소농 농업으로의 회귀는 절대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를 목표로 한 먹거리 운동은 반대한다. 탈자본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화를 부정하는 먹거리운동은 이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은 되기 어렵다. 차라리 자본주의 운운하는 '거대담론'을 삭제하고 유기농산물, 로컬푸드 등의 실제적 운동을 그 목표로 한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유기농산물 하나 사는 데 '탈자본'을 내세우는 것은 너무나 부담된다. 그냥 '우리 동네에서 재배한 친환경 채소로 내 자녀가 다니는 학교 급식을 주는 것은 기분좋은 일 아니냐' 정도에서 끝맺는 것이 어떨까. 먹거리는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운동'을 하기는 싫다.

[출처] 한국의 먹거리와 농업 (김흥주 외)|작성자 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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