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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보도자료대로만 쓰는 게 나을 때도 있다

(※ 필자의 사견임)

경제 담당 기자들에게는 무엇 하나 만만한 주제가 없다. 경제지표에서부터 기업실적, 재벌 총수들의 법정소송, 나아가 통상문제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기초지식과 이해력이 없으면 올바른 기사를 쓰기 어려운 내용이 수두룩하다. 어떤 경우는 학문적 지식이 필요하고 어떤 경우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일전에 "모르면 자료대로 쓰는 게 아니고 안 쓰는 것이 맞다"는 블로그 글을 게시한 적도 있다 (▶ 여기 참조).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국내 언론기사 중에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동산 관련 기사다. 다른 내용은 충분한 이해 없이 보도자료 그대로 쓰는 것이 문제라면 부동산 기사들을 보면 오히려 차라리 보도자료대로만 썼으면 나았을 뻔한 글이 많고, 또 이 문제는 이상하게 거의 모든 언론에 공통적으로 눈에 띈다.


거의 모든 경제활동은 둘 혹은 그 이상의 당사자가 관련돼 있다. 그 가운데 아마도 가장 많은 이해당사자가 관련돼 있는 것은 물론 이해의 내용도 웬만한 사람이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것이 부동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구매 목적도 다양하고 매도 목적도 역시 다양하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사람도 있고, 오르면 좋지만 안 올라도 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내렸으면 하는 사람도 있다.

※ 이해 어려운 건 알겠는데 "서민" 찾는 습관은 좀

정부나 금융당국이 부동산 정책을 발표할 때는 그 목적이 매번 다르다. 대표적으로 보면 담보대출을 일으켜 아파트 투자를 하던 것이 붐을 이루던 노무현 정부 때는 부동산 정책 발표는 대부분 가격 억제와 투기적 투자 유인 억제를 위한 것이었다. 많은 대책이 발표됐지만 크게 분류하자면 부동산 관련 대출 억제와 부동산 보유 및 매매이익 과세 강화로 나뉜다.

그런데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언론기사에서 빠지지 않고 거의 습관적으로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대책으로 집값이 안정될 지는 회의적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기 까지 투자 수요는 계속 될 수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라는 내용이다. 마치 준비해 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쁘게 생각하면 마치 정부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계속 오르기를 바라는 어떤 세력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면서도 저소득층의 주거 구입을 지원하고 가계부채는 자극하지 않으려는 목적의 대책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이번에는 언론기사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시장에서는 이번 대책으로 시장이 활기를 되찾게 될 지는 회의적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진단하고 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뭐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뜬금없이 "서민"을 들먹이는 부분에 가서는 읽는이의 마음이 편치 않다.

예를 들면, "서민들의 내집 마련 꿈은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느니 "서민들도 웃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것 등이다. 이 서민이라는 말은 경제용어로는 적절치 않을 뿐더러 이 단어의 사용이 어떤 가치도 더해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민이란 중류층 이하의 저소득층을 말한다. 즉 하류층이라는 말이다. 하류층까지 걱정 없이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자본주의 국가는 거의 없다.

※ 최근 한국 주택가격 동향

전세나 월세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이 서민 걱정은 더 심해진다. 그러나 전ㆍ월세 문제를 서민과 결부시키는 것은 아마도 발언자의 이해 부족 때문인 것 같다. 집을 구매할 능력이 못되니 전ㆍ월세를 사는 사람이 대다수다. 하지만 꼭 가난한 사람들만 세를 사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월세 이야기를 하면서 "서민의 설움"이나 "월세 전락"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전락"이란 나쁜 상태로 빠지는 것을 뜻한다. 아마도 이 단어를 사용한 사람은 전세와 월세에 대한 개념을 잘못 알고 있거나 아니면 크게 상관하지 않고 사용한 듯하다. 자가 거주, 전세입자, 월세입자 사이의 경제적 및 사회적 지위 차이는 그렇게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오히려 전세보다는 월세 문화로 대세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도 많다. 월세는 아무리 보아도 "설움"이나 "서민"과 결부시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독자들을 위해 최근 한국 주택시장 동향과 관련된 자료를 조금 소개하고자 한다.

(시장상황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반영하는 서울 아파트매매가격지수와 전세가격지수 변동 추이, 그리고 전세가격/매매가격 비율의 20년 평균 대비 추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약 3년간은 매매와 전세가격 모두 상승했으나 전세가격 상승이 훨씬 가팔라 전세/매매가격비율이 급등했다. 2004-2009년 이 비율은 반대의 이유로 급락했다. 이후에는 매매가격은 횡보 후 하락하는 반면 전세가격은 꾸준히 상승해 이 비율이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의 상승세보다는 완만하고 아직 그 수준도 당시보다 높지 않다. 더구나 전세가격 상승 속도도 당시보다 가파르지는 않다. 한편으로는 최근 전세/매매가격 비율 상승은 매매가격 부진과 지난 하락기로부터의 기술적 반등이 결합된 현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이다. 이 때 분모인 가구 수에서는 1인가구가 제외된다. 이 표에서 보듯 전국 보급률은 2002년 100%를 넘어섰고 수도권 보급률은 2010년 100%를 넘어섰다. 물론 1가구 다주택자들이 많기는 하지만 보급률이 이렇게 상승하고 있는 것은 주택가격 전망에 부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주택 구입 의사와 능력이 가장 높은 30~40대 인구 및 전국 가구수 변화 추이다. 30~40대 인구가 2006년 정점을 지나 서서히 감소하고 있는 것은 주택 수요에 부정적인 요인이지만 가구수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거주 형태 분포를 나타내 주는 표다. 이 표에서 보듯 부동산 관련 정보는 사람들마다 각각 대하는 입장이 다를 수 있다. 예컨대 전세입자는 전세 관련 제도에 관심이 있고 가급적 전세가격이 내려가거나 오르지 않기를 바라겠지만 전세에서 얻는 수익으로 생활하는 은퇴생활자라면 반대의 상황을 원할 수도 있다. 월세입자의 경우는 전세 가격에 큰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부동산 문제를 보는 시각은 사람들마다 제각기 다르다. 실례로 위 그림에서 보듯 한국인들의 자산 가운데 부동산은 70% 가까이 차지하고 있으며 또 금융부채 가운데 담보대출은 80%를 차지하며 담보의 대부분은 부동산이다. 그런 만큼 부동산 문제는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자산가치에 영향을 미치며 또 다른 국민들에게는 부채규모에 영향을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