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이 이전에 국내에 소개되는 과정, 그리고 수상자 발표 이후 그에 대한 설명을 담은 보도자료를 일부 기자들이 그대로 보도하는 과정 등에 대해 말이 많다. 나 자신 아직 그의 작품 가운데 한 권도 원서를 완독하지 못했으므로 진위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래 글은 사실이라면 아주 중대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생각해 여기에 소개한다.)
‘위대한 왜곡’ ?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 번역에 관하여
프린스턴 대학교의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이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국내엔 거의 소개되지 않은 경제학자인데, 그나마 하나 들어와 있는 것이 그의 최근작(2013년) <위대한 탈출>이고, 이 책은 이번 그의 노벨상 수상과는 관계가 (있긴 있지만) 다소 멀다. 이 책은 작년 9월 초에 발간되었는데, 그러니까 피케티의 <21>이 이미 한국사회를 휩쓴 뒤이고 또 그것의 한글판이 나오기 바로 직전이다.21>
바로 이런 상황에서 <위대한 탈출>이 ‘한국경제신문’이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수경제지 산하의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경출판사의 책 중에 좋은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디턴의 이 책도 그 중 하나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의 좌-우파간의 경제체제 논쟁(증세, 복지, 재벌 등), 특히 피케티를 통해 본격 촉발된 불평등과 증세에 대한 문제제기와 공세가 있자, 그에 대한 ‘대항마’로 이 책 <위대한 탈출>이 선택되었다. 구체적인 번역 경위는 모르지만, 실제로 ‘피케티 vs 디턴’은 이 책의 주요한 마케팅 내지는 셀링 포인트였다.
한경 측의 주장은 이런 거다. 피케티는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중요한 모순이며 극소수의 부자들 손에 엄청난 부가 집중되는 것이 그 증거라면서 소득세 누진성을 높이고 그들에게 높은 자본세를 매겨 불평등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기실 불평등이란 성장의 동력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장을 통해 불평등이 줄어드는 경향도 있으므로 그것을 인위적으로 없애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하기 위하여, 디턴의 <위대한 탈출>이 ‘동원’된 셈이다.
당연히 이 책을 진지하게 읽어본 사람들은 분노했다. 왜? 디턴의 이 책은 그런 주장을 담은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턴은 <위대한 탈출>의 한 대목에서 피케티의 연구(<21>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을 때다)를 매우 긍정적으로 인용하면서, 그의 작업이 불평등에 대한 사고방식과 연구방향에 큰 혁신을 가져왔다며 극찬하기도 했다. 서구의 언론에서도 디턴과 피케티를 대비시키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둘은 ‘보완’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게 옳다.21>
하여튼 <한국경제신문>, 그리고 이 신문과 함께 자동연상되는 자유경제원 및 관련된 주요 인사들(현진권 원장, 정규재 논설위원 등)은 다양한 기사, 칼럼, 논설 등에서 자신들의 ‘자유주의’ 이념을 설파하는 데 디턴을 ‘인용’하였다. <위대한 탈출>이 ‘피케티 vs 디턴’이라고 씌인 시뻘건 띠지를 두르고 세상에 나타난 것은 물론이다.
자… 여기까지는 나는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역사도 국가가 나서서 왜곡하시겠다고 하는 나라 아닌가? 이 정도는 애교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원제목에 붙은 ‘health, wealth, and the origins of inequality’라는 구절이 빠진 대신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라는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 구절이 붙은 것을 봤을 때도.. ‘뭐, 저 정도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거다.
한국경제신문이 펴낸 <위대한 탈출>은 단순히 마케팅만 자기들 입맛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이 책은 ‘그들’의 입맛에 맞게…
부제목뿐만 아니라 부(part), 장(chapter), 절(section)의 제목이 대부분 바뀌었고,
절의 경우, 원문의 절 구분을 빼는 동시에 없던 절 제목을 집어넣기도 했고,
원문의 내용 중 일부를 자기들 멋대로 생략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리를 옮기기도 했으며,
어떤 경우엔 원문에 없는 것을 집어넣은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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