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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한국의 직장 회식문화 폐해, 웃어넘길만큼 단순치 않다

(※ 사견입니다)

때로는 대부분의 정치ㆍ사회적 기본권 정립까지 유보하며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과 빈곤탈출을 국정의 최우선순위로 두고 노력한 끝에 한국은 세계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빠른 속도로 경제를 발전시켰다. 급기야 PPP(구매력평가)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GDP는 향후 2-3년 이내 일본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단한 성적이다.

하지만 경제성장은 점차 둔화되고 있으며 심지어 성장 자체도 확실히 보장된 것이 아니다.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이런 논의는 결국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문제에서 시작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동의하는 심각한 문제는 낮은 생산성이다. 즉 일은 많이 하고 열심히 하고 투자도 그런대로 열심히 하는데 그만큼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나는 이 블로그에서 소위 "야근 문화"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그 글에서 나는 현재 한국의 대다수 기업들에서 강제로 시행되고 있는 야근은 문화라는 단어를 붙일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며 많은 해외 글로벌 기업들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행태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강제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행해지는 야근은 생산성 개선에 큰 책임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 『(斷想) 야근 문화? 희생을 강요 말고 성과를 요구하라』 참조)

오늘은 야근보다 더 심각한 관행으로 회식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회식 가운데 특히 강제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직장내 회식이야 말로 한국의 생산성 저하 뿐 아니라 다른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설문조사에서 직장인들 대다수가 이런 회식을 좋아하지 않고 심지어 스트레스로 여기고 있으며 지인들 얘기를 들어봐도 대가를 생각할 때 이런 회식의 순기능은 크지 않아 보인다.


취업포털 잡코리아는 최근 직장인 456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회식문화’에 관한 설문을 한 결과 직장인 61.4%가 회식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고 밝혔다. 직장인들은 회식을 업무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회식을 업무의 연장이라 생각하는가’를 묻자 ‘그렇다(42.5%)’는 답변과 ‘매우 그렇다(36.6%)’는 답변이 1,2위를 차지했다. 직장인들에게 ‘회식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는지’ 질문에도, 61.4%의 직장인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이데일리, 2016년 7월 11일)
간단히 말해 직장내 회식은 참석자들이 근무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스트레스를 준다는 말이다. 따라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피해를 준다고 봐야 한다. 한국은 국제 통계에 따르면 비교대상국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 일하면서 시간당 부가가치 산출은 가장 적게 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이미 알려져 있다.

남들보다 오래 일하는데 시간당 부가가치 산출이 적은 것은 결국 일정 근로 시간이 지나면 일을 할 수록 부가가치 산출이 줄어든다는 말이 된다. 이런 상황과 관련해 야근의 역할이 작지 않다. 즉 꼭 필요하지 않은데 회사 분위기, 상사의 지시, 기타 목적으로 야근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경우 늘어난 근로시간만큼 평균 부가가치 증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야근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낳는 것이 회식, 그것도 직장내 회식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생각해도 회식은 대부분 근로자들의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원치 않는 회식에, 그것도 과도한 음주가 곁들여진 장시간의 회식에 참석한 다음 날 근로자들은 최상의 상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다음 날 이들의 생산성은 일정부분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생산성 저하에서 그치지 않는다. 많은 직장내 회식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한국의 후진적 기업문화의 개선을 가로막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갑자기 결정된 회식에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거의 강제적으로 참석하게 된다. 회식에 직원들을 참석시키고 회식의 진행도 일방적으로 강제함으로써 직장상사는 자신의 권위를 다시 한 번 모든 부하직원들에게 입증하는 셈이 된다.

또 회식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불합리한 행위들이 이루어진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신입 직원들은 자신이 속한 회사나 부서 안에서 어디까지 불합리가 허용되는지 체험하고 이를 반복하면서 자신도 거기에 익숙해지게 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어디까지 합리적 사고가 부정되는지 확인하고 교육받는 것이다. 더구나 공공연하게 인권이나 윤리적 기준도 회식이 거듭될 수록 상당 부분 부인되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더구나 이를 신입직원들은 몸소 익히게 된다.

이렇게 학교에서 배운 "상식"과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적용되는 "상식"과 회식을 통해 사실상 통용되는 "상식"이 서로 다른 환경에 오래 노출되고 그것이 몸에 익게 되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필요에 따라 "적절한 수준의 상식"을 선택해 적용하는 것이 익숙해진다. 즉 나도 모르게 다중인격의 고수가 되도록 훈련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회식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는 관리자들은 회식의 순기능을 주장한다. 그 가운데 조직의 단합이나 동일한 목표의식 공유 등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말은 그럴듯해도 그런 순기능은 크지 않다. 우선 조직의 단합이 기업의 실적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생각만큼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다. 물론 업무와 직접 관련된 팀원들 사이의 "목표의식 공유"는 필요하지만 회식을 통해 증진하는 "단합"의 필요성은 동의할 수 없다.

일요일 아침 일찍 전직원을 데리고 이상한 모자에 이상한 복장에 이상한 문구를 쓴 깃발을 들고 높은 산에 올라 "단합"을 촉구하는 임원들은 그렇게 해서 "단합심"이 높아진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을까? 아니, 그렇게 해서 강화된 "단합심"이 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일까?

오히려 단합과 팀워크를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열린 회식에서 관리자는 직원들의 "사고방식"을 은밀히 파악하고 누가 자신의 지휘방식에서 벗어나는 사고방식을 지녔는지 확인하는 데 회식을 악용하는 측면이 있다. 또 심하게 취한 상태에서 직원들은 필요 이상의 사생활을 공개하게 되고 이는 다음날 이후 회사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직원들은 업무 성과 이외의 무엇인가에 따라 달리 대우받게 되는데, 이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즉 공정한 직원 평가가 방해받고 있는 것이다. 직원들의 단합이나 조직에 대한 적응력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객관성이 떨어지는 어떤 것에 기업이 높은 가치를 둔다면 이는 언제든 악용될 소지가 있으며 정상적인 다른 가치를 왜곡하게 된다.

회식이 잦아지면서 벌어지는 부작용은 또 있다. 업무시간 중 행동이나 객관적 업무 성과는 뛰어나지 않은데 유독 회식을 통해 상사나 동료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이런 직원이 반대의 직원(업무 성과는 좋은데 회식 등 다른 활동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 직원)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회식이 끼치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회식이 갖는 사회적 차원의 해악도 있다. TV 광고나 드라마 등에 보면 회식에서 심하게 취해서 늦게 귀가한 젊은 아버지가 자주 등장한다. 그는 침대에 털썩 쓰러지며 아내나 자녀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내가 나 좋아서 마시는 줄 알아? 이것도 다 일이라고! 먹고 살려고, 너희들 먹여 살리려고 하는 거라고!"

왜 일을 하느라 피곤하고 일 때문에 고민하고 일 때문에 회의를 하는 대신 회식 때문에 피곤하고 회식 때문에 고민하고 회식 때문에 늦게 들어와서 "너희들 때문"이라고 외치는 아버지가 돼야 하는가? 누가 그런 아버지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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