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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考) 거시지표 모범생 한국, 국제경쟁력은 부진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 주도의 구제금융을 받아 국제기관들의 관리체제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 안에 구제금융을 모두 갚고 관리체제에서 벗어난다. 한국은 이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 IMF나 국제신용평가사들도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에 따라 한국 국가신용등급은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한국인들은 남들의 시선, 즉 평판에 극도로 민감한 편이다. 정책 당국도 당연히 그런 특징을 자주 드러낸다. 위 그림에서 보듯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경제적 혼란기를 맞아 휘청거렸지만, 한국은 이를 가장 잘 극복한 사례로 꼽힌다. 그에 따라 한국 국가신용등급은 2008/2009년 혼란기에도 강등되지 않았으며, 반대로 2010년 상향 조정됐고, 이후에도 두 차례 더 상향 조정됐다.

신용평가사들이 주로 들여다보는 지표들을 통해 한국의 신용등급이 이렇게 2008년 위기 이후 상향 조정될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자.


신용평가사들이 자본 유출입이 잦은 신흥국들을 볼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바로 대외취약성이다. 위 그림은 무디스인베스터즈서비스가 신흥국 가운데 신용등급이 A등급(Aaa부터 A3 사이)에 속하는 국가들을 상대로 대외취약성지수를 비교한 것으로, 여기서는 2007년과 2015년 지수를 비교해 보았다. 대외취약성지수는 단기 외채와 당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장기 외채, 그리고 비거주자 예치금의 총액을 외환보유액으로 나눈 것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 한국을 포함한 많은 신흥국들의 대외취약성지수는 2008년 위기 이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칠레, 말레이시아, 체코, 멕시코, 대만, 중국, 보츠와나는 악화됐다. 물론 절대 수준 면에서는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외환보유액 대비 총외채 비율도 한국의 경우 개선된 사례에 포함된다. 절대 수준 면에서도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보츠와나, 대만, 중국, 이스라엘 등과 함께 낮은 편에 속한다. 이 지표에서 말레이시아와 멕시코, 그리고 UAE는 상황이 악화된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 재정 건전도를 평가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인 기초재정수지다. 한국은 아이슬란드 다음으로 기초재정수지 흑자 폭이 크다. 물론 2007년과 비교하면 흑자 폭은 좁혀졌으나 이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대부분의 나라들이 재정 지출을 늘려 온 추세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며 특히 인구 구조 변화로 복지 지출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기간 중 한국의 1인당 GDP(PPP달러 기준)는 절대 수준 및 증가율 면에서 높은 편에 속한다. 1인당 GDP의 지속적 증가는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유지함으로써 재정 건전성과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신용평가사들이 중요하게 들여다 보는 지표다.

위 그림들에서 보듯 대부분의 거시경제 및 국제금융 지표에서 한국은 국제신용평가사들로부터 찬사를 들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견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분명 한국 정책당국과 한국인들이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한국이 잘 해 나가는 것은 아니다. 위에 소개한 거시적 지표와는 달리 "soft power"라고 할 만한 여러 지표에서 한국은 아주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아주 우려스러운 것이며 국가적 자원이 그만큼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디스가 정리한 지표 가운데 정부효율성지수 면에서 한국은 신흥국 중 겨우 중간 위치에 머물러 있으며 더구나 2007년 이후 정부효율성이 악화된 나라에 속한다. 이 지표는 정부의 제도적 성숙도와 반응성을 평가하는 지표로 -2.50에서 +2.50 사이의 점수로 표시된다.



국제신용평가사가 주로 거시 지표 위주로 국가를 평가한다면 "soft power"를 포함한 다양한 측면에서 국가를 평가하는 것 가운데 점점 신뢰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 세계경제포럼(WEF)의 국제경쟁력지수(GCI)다. 한국은 지 지표에서 26위를 차지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와 홍콩, 일본에 크게 뒤쳐진 것은 물론 대만, 말레이시아보다 뒤쳐져 있다.


물론 설문조사 결과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 순위가 좀 뒤쳐진다고 당장 문제라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 10년간 지적된 문제를 매년 거의 하나도 개선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떤 부분은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심각한 것이다.

위 그림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이 한국에서 가장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한 부분들을 가중치를 두어 계산한 것이다. 2006년 조사 때 지적된 문제들이 최근에도 계속 지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시경제 및 국제금융 지표 같은 "hard power" 면에서는 국제적으로 모범생 평가를 받는 한국이 "soft power" 면에서는 이렇게 매년 지적을 받아도 개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시 이익집단들 사이에서 과감한 개혁을 밀고 나가는 능력이 뒤쳐져 있음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보고서에서 WEF는 다음과 같이 안타까움을 표시하기까지 했다.


그 가운데 "지난 10여 년간 성과를 돌아볼 때 한국은 선진 경제 가운데 주요 경쟁력 지표 면에서 그 성과가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고 한 부분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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