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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대북 리스크 점검: 두려움을 거둘 때

(※ KB증권 보고서 내용 중 일부)

2월 글로벌 증시는 중순 이전에 저점을 확인하고 반등했다. 한국은 가장 상승률이 낮은 국가였다. 상품 가격 상승을 감안하면 원자재 중심 신흥국들에 비해 상승률이 낮은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더 낮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일각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북핵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 핵실험 혹은 미사일 발사 실험을 재개할 것이라는 주장, UN 안보리 대북 제재를 넘어서는 독자제재 행보를 보이는 미국 등은 이러한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평창올림픽 문제로 연기된 한미군사훈련도 4월 초에는 재개될 전망이다. 미국과 북한 정권이 각기 처한 환경과 편익을 중심으로 대북 리스크 재개 가능성을 점검해봤다.


《미국의 입장: 꽃놀이패》

2월 23일, 미국은 대북 독자 제재를 발표했다. 북한의 석탄 수출, 원유 수입과 관련된 선박·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것이다. 지난해 9월 UN 안보리는 북한 선박이 공해상에서 선박간 접촉을 통해 석유제품을 공급받는 행위를 금지했다. 하지만 의심 선박에 대한 강제 수색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이에 따라 선박간 환적을 통한 북한의 밀수가 늘어났다. 미국의 이번 독자 제재는 북한의 선박간 환적 밀수에 쓰인 선박을 지정해 제재를 가한 것이 주 내용이다. 즉, 북한의 원자재 수출입에 대한 압박을 강화한 조치로 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제재를 “전례없는 가장 무거운 제재”로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 발표 직후 “이번 제재가 효과가 없으면 2단계로 가야 한다”고 발언했으며, 2단계에 대해서는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더 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국 국무부는 대북 제재에 대해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로 향하는 길에 대한 신뢰할 만한 대화에 동의할 때까지 계속할 것 (until North Korea agrees to credible talks on a way forward to a denuclearized Korean peninsula)'이라고 논평해, 북한과의 대화 조건을 '비핵화'로 못박았다. 시기적으로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방남 이틀 전에 발표됐는데, 이는 '북한의 제스처에 일일이 신경쓰지 않겠다'는 메세지로 해석된다.

미국의 강경책의 배경에는, '북한에는 유화책이 통하지 않는다'는 경험과, '잇따른 북한 도발에 따른 미국 국민들의 불안', '외부의 적을 통한 내부 지지층 결속 강화 의지'가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업체 갤럽이 2월 1~10일 기간동안 실시한 연례국제문제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51%가 북한을 주적 (主敵, Greatest Enemy)'이라고 답변했다. 정당별로는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58%,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45%가 이와 같이 답변했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언론플레이도 이어갔다. 댄 코츠 국가정보국 (Office of the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DNI)국장은 상원 정보위원회 연례 청문회에서 “2016년 이후 미사일 시험을 가속한 북한이 올해 더 많은 실험을 강행할 것같다”는 의견을 밝혔으며,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Central Intelligence Agency; CIA) 국장도 “미국을 위협하는 핵 역량을 보유하려는 김 위원장의 소망에 어떤 전략적 변화가 있다는 조짐이 없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즈는 마이크 폼페오를 '역대 CIA 국장 중 가장 당파적 성향이 강하다'고 평한 바 있다.

정리하자면, 미국 정부는 자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대북 제재를 지속하고 있고, 이를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도 있을 공산이 크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대북 갈등 지속시에는 '외부의 적을 통한 공화당 지지층 결속 강화'를, 북한 핵동결 이상의 성과를 얻는 경우에는 '트럼프노믹스의 외교적 성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꽃놀이패를 쥔 양상이다.


《북한의 입장: 도발도 협상도 급하지 않다》

북한은 잇따른 핵실험, 미사일 발사로 장거리 전략미사일에 대한 상당한 기술력을 축적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강력한 경제제재에 직면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북한의 최대 외화벌이 수단인 석탄과 철광석의 수출 길이 막힌 것이 뼈아프다. UN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2321호 (16/11/30), 2356호 (17/06/02), 2371호 (17/08/05)는 북한의 석탄 철광석 수출을 전면 금지했고, 대북 제재 결의 2379호 (17/12/22)는 석유 정제품 수입을 종래의 10% 수준으로 통제, 원유 수입도 제한했다.

북한자원연구소의 '2017년 북한 광업생산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석탄 생산량은 전년 대비 39%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3,500만톤 → 2,100만톤, -1,400만톤). 북한 내부를 전문으로 보도하는 일본 아시아프레스는 평양의 휘발유 가격이 2017년 4월 이후 8개월만에 4배 (6,000원/kg → 26,000원/kg)상승했다고 보도했다. UN의 북한 지하자원 타겟 제재가 시차를 두고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북한 경제가 나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완전월급제 (배급제 대신 월급을 화폐로 지급), 독립채산제 (국영기업의 운영·재정을 국가에서 독립), 포전담당제 (텃밭에서 재배한 작물의 사적재산권을 허용)등 김정은 정권에서 도입한 경제제도로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은 개선됐다는 주장이다. 텃밭 재배 증가로 식료품 가격이 안정되고 있으며, 수출 금지로 오히려 북한 주민들은 난방용 석탄을 구하기 쉬워졌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해외인사들이 주로 이런 논조를 편다.

양쪽 주장이 모두 크게 틀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은 일부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함에 따라 생산성이 향상됐다. 생산성 향상으로 민생이 안정되면서 경제제재로 북한 체제가 위협받을 여지는 크지 않다. 하지만 지하자원 수출 금지는 북한의 외화소득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북한 고위층의 수입 사치재 소비가 어려워졌을 가능성은 높다.

그렇다면 김정은 정권의 향후 의사결정에서 두 가지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의 추가 도발은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체제를 지속'시키기보다는, 북한 고위층 내 불만을 높이고 미국의 선제 타격 위험성을 높인다. 즉,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추가 도발보다는 공포정치를 통한 내부 단속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경제 제재 환경은 오히려 내부 숙청의 빌미로 활용될 수 있다. 2013년 장성택 숙청 당시에도 석탄 해외 판매를 통한 외화 부정 축재가 명분이 된 바 있다.

둘째, 4월은 북한의 만성적인 춘궁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며, 북한의 태양절 (김일성 주석 생일, 4/15)이 있는 시기다. 북한의 민생이 힘든 상황이라면 경제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을 서둘러야 하는 시기다. 하지만 기아가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서둘러서 핵포기를 전제로 한 협상에 나설 필요가 없다. 북한 입장에서는 협상을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얻을 수 있는 것이 적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정리: 3월은 표면적인 갈등은 지속되나, 진짜 리스크로 부각될 가능성은 낮아》

미국-북한의 양 입장을 비교해 보자. 미국 트럼프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혹은 핵동결) 조건을 가져오지 않는 한 대화를 서두를 필요가 적다. 북한과의 대립이 이어지면 공화당 내부 결속 강화를, 북한의 양보를 얻어내면 외교적 업적쌓기를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은 무력시위보다는, 공포정치를 통한 내부 지도부 단속이 더 절실할 공산이 크다. 오히려 이를 위해 미국과의 대립, 경제 제재 상황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종합하면 당분간 표면적인 북-미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북한의 도발이나 미국의 선제 타격으로 연결될 여지는 적다. 양쪽 모두 시간을 벌며 협상력을 키우고, 위기 상황을 이용해 내부 문제를 해결할 유인이 크기 때문이다.

북-미 갈등은 실제 군사 도발보다는 구두 위협이 주를 이루고, 금융시장의 실질적인 위협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낮다는 판단이다. 2월 글로벌 증시 반등에서 한국 증시가 소외된 이유가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 우려 때문이라면, 3월은 불안감이 남아있더라도 두려움을 거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