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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해지는 정책여건, 그런데 한은 총재는 벌써 레임덕?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의 임기는 내년 3월 말 종료된다. 연임이 되지 않는다고 가정을 해도 임기는 9개월이나 남았다. 따라서 김 총재를 레임덕이라고 말하기는 좀 이르다.  레임덕(lame duck)은 임기 종료를 앞둔 대통령 등 지도자가 자신의 힘을 제대로 펴기 힘든 경우를 일컫는다. 특히 다음 지도자가 선출된 이후 현직 지도자의 권력 누수 현상을 뜻하므로,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김 총재를 레임덕이라 부르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김 총재는 지난 4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때 기준금리 인하를 주문하는 정치권의 압력에 맞서 4-3 표결로 금리 동결을 관철시켰고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 "외부 의견은 외부 의견일 뿐"이라고 당당하게 강조했다. 그러나 다음 달 회의 때는 최근까지도 매파적 입장을 유지해 온 한 동료 위원의 갑작스런 입장 변경으로 한국은행 총재의 주장이 전면 거부되는 흔치 않은 상황을 맞아야 했다. 이로써 김 총재가 급격히 레임덕이 됐다고 볼 수도 있다.

김 총재는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재직하던 중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지명이 발표된 직후 언론과의 통화에서 한국은행이 정부 정책에 협조하는 것이 무조건 이상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취임도 하기 전에 중앙은행 중립성을 가벼이 여긴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취임 이후에도 종종 이런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고 여러 차례 금리 결정과 설명 내용도 그의 이러한 입장이 배어났다.

그런데 정확히 임기의 3/4을 마친 뒤 열린 4월 금통위 회의에서 모처럼 가장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정부 및 정치권의 압력을 거부했던 그가 바로 다음 달 동료 위원의 입장 변경으로 레임덕이 된 것이다. 실로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총재가 취임한 이후 통화정책 뿐 아니라 모든 경제정책은 세계적으로 근 100년 만에 가장 험난한 여건을 맞이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충격에서 가까스로 벗어나는가 싶던 세계경제는 유로존 재정위기로 다시 침체를 맞은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펼쳐질 경제 및 금융정책 여건이 최근보다 더 험난하고 더 복잡해질 것이라는 데 있다. 미국은 경기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의 축소 개시를 공언하고 있다. 반면 유럽중앙은행과 영란은행은 언제라도 통화정책을 추가로 완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약속했다. 일본은 이제 막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양적완화정책을 펴고 있다. 반면 한국의 중앙은행 총재는 임기를 9개월이나 남겨놓고 레임덕 신세가 됐다.

김 총재 등 몇몇 전문가들은 기준금리가 제로까지 마냥 내려갈 수 없다고 하며 이른바 정책금리 하한선을 얘기하고 있고 일부 분석가들은 우리라고 기준금리를 제로까지 내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통한 경제부흥을 약속하고 있지만 재벌기업들은 새로 가해지는 각종 규제를 달가와하지 않고 있다. 이제 앞으로 남은 9개월, 한국에게는 90년을 좌우할 중요한 순간들로 점철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