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斷想) 전통과 허례허식 그리고 한국의 미래

(※ 사견입니다)

얼마 전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된 한 청취자 사연 내용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날 소개된 제보자에 관한 모든 세부 사항이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한꺼번에 드러내 주는 것이라 생각해 중요한 내용만 소개하고자 한다.

설 명절을 앞두고 겪고 있는 애로사항에 대한 사연을 소개하는 부분이었다. 제보자는 자신이 결혼적령기가 지난 남성이며 직장이나 학력 등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특별히 부족함이 없다는 설명을 하며 그런 자신이 명절 때마다 하게 되는 고민이 있어 제보했다고 했다.



그는 글에서 자신에게 얼른 결혼하라는 집안의 압력이 거세지만 자신은 양심상 결혼할 수 없다고 했다. 즉, 그는 자신의 집안이 아주 전통을 중시하고 있으며 자신은 외아들이어서 누구든 자신과 결혼하는 여성은 제사든 명절이든 온갖 집안 행사에 혹독한 고생을 할 것이 뻔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을 알면서 누구든 멀쩡한 여성을 자신의 부인으로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보자의 글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이 말은 한국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절이면 즐겨 먹지 않는 온갖 종류의 음식을 만드느라 많은 여성들이 고생하고 그 과정에서 남편들과의 불평등 얘기가 나온다. 고부갈등이라는 문제도 부각된다. 명절에는 온가족이 모여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차례는 미풍양속이며 선조들의 고마움을 잊으면 안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 60여 년간 전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해 왔고 이 순간에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전통의 가치가 변했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전통과 그 전통의 표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각종 허례허식은 구분해야 할 것이다. 결혼과 출산이 꺼려지는 것이 막대한 육아비용 때문이라고 하지만 다른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