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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중ㆍ남미 경제의 잦은 위기에 얽힌 미스테리


아르헨티나가 국가부도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이 나라의 경제위기는 처음이 아니다. 아르헨티나 뿐 아니라 중ㆍ남미 지역 경제와 관련한 위기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듣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궁금한 것이 있다. 우선 왜 이 지역에서는 이렇게 자주 외환 관련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 어떻게 이 지역 국가들은 이렇게 자주 위기를 겪으면서도 국가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존속해 나가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국내ㆍ외 전문가들과 오랜 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을 바탕으로 엉뚱한 결론이지만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두 가지 궁금증 모두와 관련해 중요한 배경 지식은 바로 이 지역이 미국이 앞마당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지리적으로 그럴 뿐 아니라 감성적으로도 미국인들이나 미국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중ㆍ남미 국가들은 거의 가까운 친척처럼 느껴진다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자본의 이동이 빈번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높다.

이런 설명은 아시아 국가들의 사정과 비교해 보면 더욱 이해가 쉽다. 아시아에서는 지난 1997년 태국이 고정환율제를 포기하면서 위기에 빠지자 위기는 재빨리 인접국은 물론 동북아시아의 한국을 초토화시키고 이어 세계 경제에 불안을 가져온 바 있다. 왜 아시아 국가들의 위기는 이처럼 심각하게 퍼져 나가는 것일까? 이는 위에 설명한 것과 반대의 경우, 즉 지리적ㆍ문화적ㆍ철학적 차원에서 미국 및 서양 자본가들과 거리감이 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선 중ㆍ남미의 경우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사태 파악이 신속하고 이해도도 상당히 높다. 그러나 아시아의 웬만한 국가들의 경우 미국 자본의 입장에서는 사태 파악에 시간이 걸릴 뿐더러 아시아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더구나 아시아의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지면 대부분 미국 자본가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이거나 최소한 업무가 끝난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지리적 거리감이 크다는 말이다.

또 한 가지 특징적 차이를 들자면,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대부분 토착민들이 유구한 역사를 통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것이 오늘날의 국가 체제다. 반면 중ㆍ남미의 경우 물질적(천연 자원 등) 풍요를 좇아 외부에서 찾아 온 사람들이 주축이 돼 형성된 것이 오늘날의 국가인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 주민들의 경우 아시아인들보다 낙천적인 반면 위기는 있어도 위기감에 대한 우려감은 훨씬 적게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편 위기 발생 후 극복 과정도 두 지역 사이에 차이가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역사ㆍ문화적 동질감이 강한 편이어서 강한 단결력을 바탕으로 빠르지만 처절하게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 국난 극복이라는 자세로 임한다. 반면 중ㆍ남미의 경우 위기에 빠져도 국가적으로 단결해 내핍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기보다는 위에 설명한 대로 미국 자본이 "친숙한 감정"을 바탕으로 다시 투자를 늘리면서 자연스럽게 위기가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두 지역의 차이점을 정리해 보았다. 다만 이 견해는 전문가적인 분석보다는 사변적인 것인 만큼 가볍게 읽고 "이런 점도 있을 수 있겠다"는 정도로 이해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