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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땅에 떨어진 명예의 가치

(※ 절대 사견입니다)

요즘 특정 산업의 급속한 부실화가 매일 국내 언론 보도의 단골 주제가 된 가운데 그 부실화를 좀 더 일찍 중단시키거나 최소화하지 못한 국책은행의 책임 여부 역시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민간기업의 경우 부실화의 책임은 주주와 대출자가 비중에 맞게 나누어 지게 되며, 그 과정에서 경영진은 불법 행위가 있을 경우 개인적으로 사법적 처벌도 받게 된다.

하지만 앞의 경우 국책은행은 주주가 정부이며 정부가 금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정부의 돈은 납세자의 돈이거나 후손의 몫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책은행 경영진의 불법 행위가 확인되면 그 개인이 사법 처벌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불법 행위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도덕적 및 정치적 책임을 묻는다고 해도 납세자의 돈은 그대로 들어간다.

더구나 이들이 만에 하나 도덕적 및 정치적 책임을 인정하고 그 대가를 치르겠다고 해도 기껏해야 현직에서 물러나거나 연봉을 반납하는 등의 조치에 그칠 뿐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런 정도의 책임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책임을 돌리는 듯한 행동을 해 보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많다.

(사진 출처: http://wanderingpoet.tistory.com/ 블로그)

그런 일이 비단 이번에, 혹은 특정 사안에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수십년 째 크고 작은 비슷한 사례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나는 이런 일을 대할 때마다 "명예"의 가치는 땅에 떨어진 반면 "불명예"의 대가는 거의 없는 한국 사회의 풍조가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납세자 및 그 후손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공직을 수행하고 있으니 그 책임을 성실히 수행해 임무를 완수했다는 "명예"를 지키겠다는 생각이 부족해 보이는 사례가 너무나 많다.

요즘 "명예"라는 단어는 기껏해야 "명예 박사학위"라든지 "명예 시민증" 같은 경우에 붙는 이외에 사실 그 가치는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는다. 속된 말로 하자면 명예가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반대로 불명예를 잠시 외면하면 평생 유복하게 살 수 있고 잘 하면 자손들은 명예까지 살 수도 있지 않은가?

무슨 무슨 기념일에 어설프게 선정된 엉뚱한 사람이 무슨 무슨 명예로운 표창장을 수상하는 기사는 주요 언론 매체에 필요 이상으로 요란하게 등장하지만 국가를 위해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공직자를 기리고 그가 겪은 각종 불이익을 조금이나마 보전해 주는 장치는 이미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아니던가?

꽤 높은 직위에 있는 몇몇 공직자와 사적인 자리에서 편하게 얘기하다 보면 다음 번 일자리에 대한 걱정을 하는 말을 듣는 때가 있다. 지금 나이가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인데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정도가 되었다면 "명예를 위해 이후 일자리가 없어져도 지금 할 일을 똑바로 하겠다"는 자세를 가질만 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큰 실망감을 준 경우도 있다.

한국의 장ㆍ노년층에 대한 복지 제도는 고소득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며 노인빈곤율은 50%에 육박한다. 그것 때문일까? 다음 일자리를 걱정해야만 하는 것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일까?

"지금까지 사회로부터 수십년째 혜택을 보았으니 이제 갈 곳이 없어지더라도 지금 맡은 자리에서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발휘해 임명권자 눈치를 보지 않고 납세자와 그 후손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겠다"는 자세를 가진 공직자가 내 생각보다 많을 지 모른다.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춰 보면 충분히 많지는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자서전(서평 블로그 글☞(책소개) 버냉키의 『행동하는 용기』: 미국이 강대국인 이유)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로 알려진 다음 문구를 소개하던 부분이 생각난다.
"지금 내가 아는,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할 뿐이고 끝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그 결과 문제가 해결된다면 지금 나에게 반대하는 그 어떤 비난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반대로 지금 아무리 수많은 천사가 칭송하는 대로 내가 행동한다 해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그 또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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