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국 통화정책은 다른 경제정책보다 모든 경제주체들에 거의 무차별적 영향을 미치는 데다가 금융시장을 통해 다른 가격변수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중앙은행들은 최대한 신중하게 정책 결정을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통화정책과 관련해서는 항상 '실기'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너무 늦게 움직였다'는 뜻이리라.
아무리 정보의 흐름이 과거보다 빨라졌다고는 해도 경제 활동을 집계하고 분석해서 함축적인 시사점까지 도출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으로서는 어떤 추세가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려봐야 하는 문제도 있다. 중앙은행을 두둔하자면 결국 실기할 수밖에 없는 속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런지 잘 설명하는 보고서가 KB증권에서 발간돼 소개한다. 『통화정책의 관성과 과잉긴축』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저자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이렇듯 실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의 이면에는 한 번 방향을 잡으면 방향을 바꾸기까지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관성'을 지적한다. 결국 내년에도 미국 통화정책 방향 전환이 데이터가 시사하는 것보다 늦춰질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이런 통화정책의 '관성'을 고려할 때 미국보다 7개월 일찍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2021년 8월)한 한국은행의 혜안이 돋보이지만, 당시 한국은 주택가격 폭등과 가계부채 급증이라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는 사정을 덧붙이고자 한다. 즉, 인플레이션이 이렇게 빠르게 높아지고 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도 뒤따라 강력한 긴축정책을 펴리라고 예상하기도 했겠지만, 한국은행도 사실상 코로나19 사태로 '실기'한 측면까지 있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