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분석실 임일섭 실장 보고서를 소개한다. 보고서의 원제는 『세계화에 따른 물가결정구조의 변화와 통화정책적 시사점』이다. 이 문제는 인플레이션타게팅을 원칙으로 하는 한국 같은 나라의 통화정책에 있어 큰 중요성을 갖는다. 큰 중요성을 가질 뿐 아니라 국내 인플레이션에 국내 수요 요인이 갖는 영향력이 적어지거나 일정하지 않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과연 인플레이션타게팅의 논리가 유효한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벌써 10여년이 지난 2005년 여름, 당시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이른바 "미꾸라지 물가론"을 제기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아무리 추어탕을 많이 먹어도, 중국산 저가 미꾸라지가 대량으로 수입되는 한 추어탕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경기회복으로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산 저가 소비재가 대량 수입되면서 물가가 안정되고 있는 현상을 지칭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5년여가 지난 2011년 전후, 미꾸라지 물가론으로 대변되던 중국발 물가하락 압력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정부의 적극적인 내수부양과 임금상승 등으로 주요 원자재와 식료품의 가격들이 상승하면서 중국이라는 경제대국의 존재가 전세계적인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었다(차이나플레이션). 시차를 두고 나타난 이러한 두 가지 현상은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은 정반대였지만, 한 나라의 물가가 국내적 요인뿐만 아니라 해외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문제다.
일반적으로 세계교역의 증가, 다수 신흥국들의 세계경제로의 편입을 의미하는 세계화는 교역대상국들의 물가에 두 가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째, 미꾸라지 물가론에서 나타난 것처럼 저가 수입품의 증가로 인한 물가하락 효과가 있으며, 둘째로는 차이나플레이션 우려에서 나타난 것처럼 거대 신흥국들의 원자재 소비 증가에 따른 국제원자재가격 상승이 물가상승 압력으로 이어지는 경우이다. 학계의 연구들에 따르면, 이러한 두 가지 효과가 결합하여 실제로 물가에 어떤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는가는 실증분석을 통해 확인될 필요가 있으며, 시기별로 우위를 점하는 요인이 다를 수도 있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인해 주요국들의 물가는 국내 요인뿐만 아니라 해외 요인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과거 모건스탠리의 외환 전략가를 지낸 스티븐 젠은 세계화로 인해 주요국들의 물가상승률이 수렴하게 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필자가 IMF의 분류상 선진국에 속하는 30여개 나라들을 대상으로 계산해본 결과, 1980년부터 최근까지 약 30여년간 주요 선진국들 간의 경제성장률의 편차는 별다른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어 온 반면, 물가상승률의 편차는 눈에 띄게 감소하였다.
1980년대에 물가상승률의 표준편차는 4.9%p에 달하였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1.2%p로 크게 낮아졌다. 반면 같은 기간에 성장률의 표준편차는 3.0%p에서 2.1%p로 소폭 낮아지는 데 그쳤다. 말하자면 경제성장의 속도는 여전히 제각각이지만, 물가상승률은 상관관계가 밀접해지면서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하여 온 것이다. 성장률이 여전히 제각각인 것은 각 나라들이 경제발전의 성숙도에서 차이가 있으며 인구 동학과 생산성, 기술발전 등도 다르기 때문인 반면, 물가상승률이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해온 것은 신흥국들의 출현으로 인한 세계적인 생산 이동과 아웃소싱, 이에 따른 상품 교역의 증가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추론은 이 시기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의 역할과 효과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세계경제는 적정 수준의 성장과 물가안정을 누렸다는 점에서 이른바 "대완화"(Great Moderation) 시기로 불렸는데, 중앙은행들은 이 시기의 물가안정을 중앙은행들의 성공적인 통화정책('물가안정목표제')에 힘입은 것으로 주장하여 왔다. 그러나 중앙은행들의 물가안정목표제는 물가안정과 생산 및 고용의 안정이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는데, 이러한 관점에서는 이 시기에 물가안정과 더불어 물가상승률이
수렴한 반면 성장률의 편차는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힘들다. 즉 이 시기의 물가안정과 물가상승률의 수렴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덕분이라기보다는 세계화로 인한 교역 증가와 생산의 국제화에 크게 힘입은 것일 수 있다.
위기 이후 중국이 소비주도적 성장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미국 또한 제조업의 부활과 더불어 무역수지 불균형의 완화를 모색하고 있는 만큼, 상품교역의 증가를 의미하는 세계화의 진전은 다소 주춤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세계화로 인해 한 나라의 물가가 해외요인에 크게 영향받는 현상도 다소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매우 높은 대외교역 비중을 가진 우리나라의 사정은 또 다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원화 기준 수입물가의 움직임을 거의 그대로 추종하여 왔다는 사실은 수입 원자재에 대한 한국경제의 높은 의존도를 보여주며, 또한 환율이 국내 물가의 결정에서 매우 큰 영향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아울러 이는 국내 수요측 요인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물가의 결정과정과 통화정책적 대응에 대한 기존의 통념은 일종의 폐쇄경제 모형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물가와 실업률 간의 상충관계를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 역시 이러한 틀에 머물러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국내물가에 대한 해외 요인의 영향력이 높다고 할 수 있는 만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이러한 요인들을 감안하여 수행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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