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한 『재정포럼 2015년 8월호』에 소개된 칼럼.)
▣ 이재수의 난과 세폐(稅弊), 그리고 교폐(敎弊) ▣
조선 말기인 1901년 5월 이재수의 난(亂)이 있었다. 제주도 서남쪽 끝 삼봉산 근처 대정(大靜)마을에서 봉세관(捧稅官, 현재의 세무서장)과 그 추종세력의 부당한 증세와 행패에 맞서서 발생한 조세저항 운동이다. 그해 8월 11일자 미국 시카고 트리뷴지는 “조선왕실의 부당한 증세에 제주도민이 반발하였고 그 과정에서 300여 명의 천주교인이 학살되었으며 이를 진압하기 위해 프랑스 군함 2척과 조선인 병사가 제주항에 도착했다”고 보도하였다.
대정마을은 조선 시대에 귀양 온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였던 곳으로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이 9년간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으로 당시 제주도민의 절반 이상이 왕실에 소속된 관노비 신세였다. 난의 주동자 이재수 역시 관노비였다. 이 마을 입구에는 ‘제주대정삼의사비(濟州大靜三義士碑)’가 서 있다. 여기서 삼의사(三義士)란 민란의 세 우두머리인 강우백, 이재수 및 오대현을 말한다.
민간의 조세부담 능력 고려하지 않은 세금 공세와 조세저항
이들은 왜 민란을 일으켰을까? 바로 ‘세폐’(稅弊, 세금의 폐해)와 ‘교폐’(敎弊, 종교의 폐해)가 선량한 민간인의 반감과 저항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먼저 세폐를 살펴보자. 제주도는 땅이 척박하여 지세(地稅)는 과세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왕실에 진귀한 물품이나 지방의 토산물 따위를 바치는 진상(進上)은 남아 있었다. 진상이란 조선시대의 3대 세목인 조(租)·용(庸)·조(調) 중 마지막 조를 일컫는 말이다. 당시 진상 품목으로는 말, 귤, 한약재료, 표고버섯, 말총갓, 노루나 사슴의 육포 등 그 대상과 분량이 너무 많았다.
1900년대 초기는 조선이 망하기 직전이었다. 재정이 허약하면 천하의 어느 정권도 지탱하기 어려운 법이다. 조선 왕실은 거덜 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특별히 봉세관으로 강봉헌을 파견했는데, 그는 진상 외에도 ‘목장세’(牧場稅)와 ‘화전세’(火田稅), ‘목장전세’(牧場田稅)를 신설하였다. 목장세는 목장에서 말을 도축한다고 하여 부과하는 것이고, 화전세는 목장의 일부를 개간하여 농사짓는다고 해서 부과했으며, 땅이 있으니 전세까지 내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이중과세’도 아닌 ‘일물삼세’(一物三稅)가 된 것이다.
나라의 녹을 먹는 봉세관으로선 나름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꾀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민간의 조세부담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세금 공세는 조세저항 민란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나라가 망할 무렵에는 탐관오리가 설치는 법. 왕실에서 10을 요구하면 20, 30을 마련하곤 했다. 진상을 빌미삼아 토색질을 한 것이다. 나라에 바치는 물건은 꼬챙이에 꿸 만큼 적은데 관리들에게 주어야 하는 물건은 마차에 실어야 될 만큼 많다는 뜻의 ‘진상은 꼬챙이에 꿰고 인정은 바리로 싣는다’는 속담이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또 다른 원인으로 교폐(敎弊)를 들 수 있다. 당시 고종은 외국인 선교사나 신부에게 ‘여아대(如我待, 왕을 대하듯 하라)’라는 글귀가 적힌 칙령을 주었다. 이를 지니고 있으면 치외법권적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 있는 자에게 불성실한 인간들이 들끓는 법이다. 프랑스 신부의 ‘치외법권적’ 위치를 이용하여 한 몫 챙기려는 자들이 제주도 성당에 나타났다. 불량 신도들이었다. 이들이 법을 위반해도 관가에서는 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 ‘여아대(如我待)’라는 왕의 칙령이 적힌 패스포드의 눈치를 보았던 것이다. 심지어 제주 관리들조차 천주교에 들어가 보신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관가는 불량 신도들을 세금징수원으로 고용하였다. 시쳇말로 관청이 권력기관에 ‘알아서 기는 것’과 유사했다.
세폐와 교폐가 불러 일으킨 ‘이재수의 난’
나아가 제주도에서 수산업을 하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제주도민의 반감을 프랑스에 전가하기 위해 무기 등을 공급하여 민란을 부채질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인들은 꽤나 간교했던 모양이다. 또한 천주교의 전래로 인해 입지가 좁아진 무속인들이 천주교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린 점도 이재수의 난을 촉발시킨 원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이런 저런 폭정과 횡포를 참다못한 제주도민이 이재수를 위시하여 떨쳐 일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선량한 천주교인이 수백명 사망하였다(선량한 천주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재수의 난은 또 다른 천주교 박해 사건일 것이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프랑스 함대가 출동하고 조정에서도 군대를 파견하여 같은 해 10월 난은 진압되었다.
이재수는 서울에 압송되어 서울 청파동에서 참수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10여 년 전에 ‘이재수의 난’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고, 현오영 작가가 ‘변방에 우짖는 새’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종교와 세금의 문제는 결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중세 봉건시대 내내 이 문제로 시끄러웠음은 서양 역사가 말하고 있다. 작금 논쟁이 되고 있는 종교인 과세 여부는 세폐와 교폐가 중첩되어 나타난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종교인 과세를 반대하는 측은 정부의 종교인 과세 시도가 세폐 즉, 세금 만능주의적 사고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반대로 종교인 과세를 주장하는 측은 종교의 치외법권적 자세 즉, 교폐를 꼬집고 있다. 아무튼 결론은 국회에서 나겠지만, 그곳은 워낙 논리보다는 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곳이어서 그리 기대할 게 못된다. 종교인들의 표가 많고 막강하기 때문 이다.
예수님은 어떠했을까. 성전에 들어올 때 납부하여야 하는 ‘성전세’ 문제로 시끄러웠을 때 예수님은 ‘그냥 납부하라’고 하셨다(마태복음 17 : 27). 괜스레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we may not offend them). 예수님은 그 관리들을 포함한 전 인류의 구원에 목표가 있었기에 행여 세금 문제로 인해 그 목표가 차질을 빗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리라.
간단하지 않은 종교와 세금 문제
종교가 내심 돈 많이 벌고(세금 덜 내고) 복 많이 받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다. 사업자와 하등 다를 게 없다. 성실납세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납세를 거부하는 종교인들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세상에 민폐를 끼치는 존재이다. 그리고 또한 정치에 빌붙어 치외법권적 위치를 누리려고 하는 교폐적 행태라고도 볼 수 있다.
110여 년 전 세폐와 교폐가 이재수의 난의 원인이었고 그 결과 무고한 시민과 교인 수백명이 죽었다면, 현재 종교인 납세 논란은 이미 결론이 나 있어야 했다. 몇몇 치졸한 종교인답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신실한 종교인들조차 사회 비난과 조소와 걱정거리가 된 것은 지극히 유감이다. 종교가 빠지는 타락 중에서 가장 질이 나쁜 것은 정치나 권력자에 의지하는 데서 생겨난다. 종교인 소득에 대한 비과세는 종교인이 주장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 구성원들이 종교인들의 헌신적인 봉사에 고마워하고 감동하여 종교인 소득에 대해 과세하지 말라는 청원에 따라 비과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논란인 종교인 소득에 대한 비과세는 이를 주장하는 자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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