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나 자연재해, 혹은 팬데믹 같은 사례를 제외하고 경제 부문에서의 위기는 통상 금융위기로 이어진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금융의 기능이 확대되고 심화되면서 점점 더 그런 가능성은 커진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관세 정책을 발표한 뒤 전 세계 금융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이번 정책은 경제 활동이 대외 교역에 크게 의존하는 나라들에게 특히 피해를 많이 주겠지만, 현대 시장경제 체제에서 교역이 중요하지 않은 나라는 북한 같은 폐쇄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게다가 트럼프의 이번 정책이 특히 우려스러운 점은 유럽에 대해서도 적대적일 정도의 관세 공격을 감행했다는 점이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관한 기록을 바탕으로 쓴 책들을 보면 미국과 영국, 나아가 미국과 유럽 사이의 금융의 연계성은 매우 중요하다(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관련 서적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트럼프가 유럽에도 충격을 줄 관세 공격을 감행했다는 점은 놀랍기도 하고 그의 무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트럼프의 관세 공격이 시작되자 전 세계 금융 및 통화 당국은 분주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위기가 온다면 금융 부문부터 조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금융센터가 발간한 보고서(『트럼프發 관세전쟁 이후 글로벌 금융당국의 대응 점검』)가 최근 세계 주요 금융당국의 움직임을 정리하고 있어서 주요 내용을소개한다.
글로벌 금융당국은 △금융시스템 회복력 및 자본적정성 △유동성 상황 △실물경제 영향 △그림자금융 부문 전이 위험 등을 면밀히 감시하는 가운데, 일부 국가에서는 정책 금리 인하, 외환시장 개입, 유동성 투입 및 실물경제 지원 강화 등의 정책 조치를 단행
[금융시스템 회복력 및 자본적정성 점검 강화]
○ 영란은행(BOE) 금융정책위원회(FPC)는 4.9일 무역갈등으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과 잠재적 피해의 심각성이 높아졌다면서, 글로벌 무역 구조의 전환이 경제성장을 약화시켜 금융시스템의 회복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
○ 중국 인민은행, 국부펀드 및 금융당국은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인한 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으로부터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다중의 완충장치를 마련
○ 한편 전문가들은 중국 은행들의 자본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견. 중국 정부가 부동산發 금융 위기 방지를 위해 대형 은행에 투입한 대규모 자본(5,200억위안)이 관세로 인한 경제 충격 으로부터 은행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평가(Bloomberg)
○ 일본 재무성의 국제담당 차관인 Atsushi Mimura는 일본은행(BOJ) 및 금융서비스청(FSA)과 긴급 회의를 가진 후 시장에서 심각한 변동성을 목격하고 있다면서, 긴장감을 가지고 시장의 움직임을 주시하겠다고 발언(4.9일)
[유동성 상황 점검]
○ 유럽중앙은행(ECB)은 시장 매도세가 장기화되는 경우 실물경제 피해로 연결될 가능성을 우려해 감독 수준을 강화. 아울러 은행권에 예금 및 기타 형태의 자금조달 상황을 평소 보다 더 자주 확인할 것을 요청
○ BOE는 상업 은행들에게 유동성 현황을 주시하고 잠재적인 자금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공개하라고 지시
○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FINMA)은 4.8일 아직 유동성이 부족하지 않지만, 향후 관련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 등을 고려해 시장 상황을 면밀히 주시 중이라고 발표
[통화정책 대응(정책금리 조정, 외환시장 개입 등)]
○ 인민은행은 수출기업 보호를 위해 위안화를 절하 고시하는 한편, 급격한 위안화 변동을 방지하기 위해 국유은행들에 달러 매입 축소를 지시하는 등 약세 속도를 조절
○ 일본은행의 Ueda 총재는 4.16일 관세가 일본 경제에 타격을 줄 경우 통화정책 조치를 취해야 할 수도 있다고 발언. 4월 말 회의에서 금리 인상이 일시 중지될 가능성이 확대
○ 대만중앙은행은 4.9일 미국 관세의 영향과 자국 경제 및 금융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할 것이며 통화정책을 적시에 조정할 것이라고 설명
○ 인도네시아중앙은행(BI)은 4.7일 루피아화 가치 급락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현물환 및 국내 NDF 등) 및 채권시장에 적극적으로(aggressively) 개입하겠다고 발표
○ 인도중앙은행은 4.10일 미국의 관세부과로 인한 성장 위험 등을 고려해 정책금리를 인하 (6.25% → 6%)하고, 정책 기조를 중립에서 완화적으로 전환하며 추가 인하 가능성 시사
○ 싱가포르통화청은 4.13일 관세 우려로 올해 성장이 정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0~2%) 하며, 싱가포르달러화의 명목실효환율S$NEER 절상 속도를 완화하겠다고 발표
○ 말레이시아중앙은행 총재 Abdul Rasheed는 9일 통화정책이 무역전쟁을 해결할 수 없으며 최선의 도구도 아니라고 설명. 다만, 링깃화의 변동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과도한 변동성을 억제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입장
○ ECB는 4.17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주요 정책금리를 25bp씩 인하. 물가가 안정되는 가운데, 무역 갈등으로 향후 경제 전망이 악화되고 있다고 평가
○ 한편 멕시코중앙은행은 3.27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정책금리를 9%로 50bp 인하하면서 물가 안정에 진전이 있었으나, 무역 긴장 및 경제 약화로 인해 불확실성이 고조되었음을 강조. 아울러 5월 회의에서 같은 규모의 금리인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설명
[실물경제 영향 평가 및 은행 지원(신용 공여) 장려]
○ BOE 금융정책위원회(FPC)는 경제 및 금융여건이 예상보다 심각하게 악화되더라도 영국 은행들이 가계 및 기업 차주들을 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
○ 홍콩통화청(HKMA)은 은행 부문과 함께 더 많은 중소기업들이 은행 자금을 조달하고, 운영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부문별 지원 대책을 발표
○ 태국 재무부 차관은 4.9일 정부가 미국 관세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대미 수출입 기업을 대상으로 THB50억 상당의 장기 저리대출(soft loan)을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
○ 베트남중앙은행(SBV)에 따르면, 호치민시 은행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광범위한 거시경제 안정 조치의 일환으로 기업들이 미국의 관세 타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4.10일)
[비은행금융기관(사모펀드 등) 전이 위험 주시]
○ BOE는 핵심 시장에서 레버리지 트레이딩 전략의 비중이 높은 회사들과 사모펀드 부문의 위험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설명
○ 스위스 FINMA의 Stefan Walter 청장은 정책 시차를 고려할 때 헤지펀드, 사모 펀드, 신용 펀드 등 이른바 비은행금융기관부문의 상황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
평가 및 시사점: 트럼프發 무역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글로벌 금융당국은 은행 및 경제 영향을 주시하며 필요시 추가 조치를 취할 가능성. 국내 은행권도 상황 변화에 따른 적절한 대비책 마련이 필요
○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시장 예상보다 정책금리를 빠르게 인하하거나, 일본은행처럼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있는 상황. 특히 아태지역 일부 중앙은행들의 통화 완화가 가속될 소지
○ 트럼프發 무역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글로벌 은행산업의 수익성과 자산건전성이 타격을 받으면서 은행들의 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 -
○ 한국도 관세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 금융당국과 은행권에서도 해외의 대응 조치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시의적절한 금융 및 경제 안정 조치들을 지속해나갈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