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달러/원 환율이 높은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되면서, 이를 둘러싼 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대체로 사실에 근거한 타당한 분석이 많지만, 일부에서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에 따라 환율의 원인과 해법을 달리 해석하는 주장도 눈에 띈다.
유권자로서 특정 정파를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이며, 그 자체로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다만 언론인의 경우, 직업적 책무보다 개인적 정치 성향이 기사에 과도하게 반영될 가능성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각 언론사 내부의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는 1987년 한국경제신문 영문 주간지 창간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1994년 로이터통신 특파원으로 자리를 옮겨 이후 약 30여 년간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을 취재해 왔다. 그 과정에서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한국 금융시장을 극심한 위기로 몰아넣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그 극복 과정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전달해 왔다.
원화 가치가 단기간에 급락했던 1997년 외환위기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되돌아보면, 두 사례 모두 해외 충격이 직접적인 계기였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위기를 증폭시킨 국내 요인과 구조적 취약성의 성격은 상당히 달랐다.
두 시기의 원화 급락을 둘러싼 국내 요인을 돌아 보면 부분적이나마 현재 환율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억을 더듬어 당시의 국내적 요인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997년》
- 재벌 집단 차원에서 높은 차입 비율(부채비율 300-500% 수준), 지속적 수익성 악화
- 은행 자율성 부재, 정치적/정책적 영향력 속 재벌 위주 익스포저 과다
- 당시 신용등급 상승 속 단기 외화 차입 기반 장기 원화 대출 증가
- 은행은 물론 재벌 기업들 문제 발생 시 정부가 막아줄 것이라는 암묵적 기대
- 금융 자율화 기조 속 외화 차입 확대, 그에 상응하는 규제와 감독 미흡
- 국제수지 악화에도 국내 과잉투자 지속, 재벌 수익성 악화, 반도체 가격 하락
- 외환보유액 총액과는 별개로 “가용”외환보유액 절대적 부족
- 경제 및 자본시장 정책에 대한 투명성, 신뢰성 부족 및 악화
《2008-2009년》
- 은행권의 초단기 외화차입 과다(지불능력보다는 유동성의 문제)
- 중공업 등 해외 매출채권의 헤지 증가로 은행권의 달러 익스포저 과다
- 직전 기간 해외 단기 자본의 국내 포트폴리오 투자 급증
- 외화 유동성 및 외화 차입 리스크 관리 취약
- 한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 과중, 특히 경기민감도 높은 업종에 수출 집중
- 외환보유액 절대액은 문제 없었으나 당국의 단기 외화 공급 의지와 수단 부족
- 1997년 트라우마 때문에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한 공포 과도
위 두 사례와 비교할 때 최근 달러/원 환율 수준이 높게 유지되는 국내적 배경 요인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수 있다.
- 여전히 경기민감 업종 및 일부 변동성 큰 제품에 한국 수출 집중
- 국내 증시보다 해외 증시로 투자 지속 증가
- 한-미 금리 차 지속
- 과도한 가계부채 수준에 한은 통화정책 제약되리라는 생각
- 한국 당국이 환율 상승보다 하락을 더 경계한다는 오래된 인식
- 인구 구조 변화 속 장기 성장 기대감 지속 약화(성장 전략 부재)
- 아시아 신흥국 중 자본 자유화 정도 커 자주 리스크 프록시로 이용돼
- 국내 경제 성장 잠재력을 억누르는 구조적 문제 해결 실패
한편,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의 FRED 시스템이 제공하는 실질실효환율 지수를 보면 최근 원화 가치 하락은 넓게 보면 달러 가치 상승 추세와 달리 진행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물론 국내 요인이 있지만, 원화 가치 하락을 순수하게 국내적 요인에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과도해 보인다.
- 고령화 진전으로 장기자금 규모는 확대되었으나, 국내 성장동력 약화로 해외자산 선호 강화
- 시장은 미국의 중기 균형금리를 약 4%, 한국은 2% 중반으로 인식
- AI 투자 확대에 따른 미국 주식시장 투자 증가로 단기적 달러 수요 급증
- 순환적 요인 완화 가능성(미국 금리인하, 일본 정상화, WGBI 편입 등)
- 다만 해외투자 확대라는 구조적 요인이 지속되는 한 환율 하락 폭은 제한적일 가능성
- 향후 환율은 높아진 구조적 기저 위에서 순환적 요인이 방향성과 변동성을 좌우할 전망
- 단기외채 비율은 과거 위기 대비 크게 낮아져 구조적 리스크 완화
- 통상환경 불확실성 하에서 환율 상승은 관세 인상에 따른 충격을 일부 흡수
- 환율 수준 자체보다 변동 속도와 변동성 관리가 중요
- 급격한 변동이 없을 경우 경제주체가 비용·가격 조정을 통해 충격을 흡수할 시간 확보 가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