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경제는 오랫동안 디플레이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인구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주요 7개국(G7)의 핵심 일원이며, 엔화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가장 신뢰받는 안전자산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해외 충격에 따른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를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그런 우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이처럼 일본 자산이 누리는 독특한 지위를 달러 자산에 붙이는 표현처럼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으로 부를 수 있다. 일본이 보유한 막대한 부채와 구조적 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에서 예외적인 신뢰와 혜택을 누리는 현상을 역사적·경제적 맥락에서 설명하려는 연구는 그동안 적지 않게 축적돼 왔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하버드대학교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타케시 타시로 연구원이 공동 집필한 워킹페이퍼가 최근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의 지속되는 과도한 특권에 대한 고찰(Perspectives on Japan’s Continuing Exorbitant Privilege)』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일본이 어떻게 이런 특권을 가능하게 했는지, 최근 글로벌 금융 환경 변화가 이 특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특권이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지를 들여다 본 글이다.
이 글에서는 해당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소개하고, 보고서 전문 링크를 글의 맨 아래에 공유한다.
서론: 과도한 특권은 종말을 맞고 있는가?
과도한 특권은 특정 국가가 낮은 비용으로 차입하고 더 높은 수익률로 해외에 투자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주로 미국과 달러에 적용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엔화는 준비자산으로서의 비중은 작지만, 오랫동안 유사한 혜택을 누려왔다. 일본의 경우 다음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나타난다:
- 대외 대차대조표에서의 양(+)의 초과수익
- 일본국채(JGB)를 안전하고 유동적인 자산으로 평가하는 해외 투자자의 강한 수요
- 글로벌 위험회피 국면에서 국채 수익률이 하락하는 안전자산 특성
일본은 더 이상 세계 최대 순채권국이 아니다
2024년 일본의 순대외자산(Net International Investment Position, NIIP)은 엔화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독일이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최대 순채권국이 되었다. 저자들은 이를 일본의 대외 경쟁력 약화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변화는 주로 엔화 약세에 따른 환율 평가효과와 독일의 자산 축적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의 대외 포지션: 규모 확대, 위험 노출 증가, 글로벌 통합 심화
지난 10여 년간 일본의 대외 대차대조표는 GDP 대비 약 80%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동시에 자산 구성은 직접투자와 주식 비중이 확대되면서, 기대수익률은 상승했으나 시장 변동성과 환율 위험에 대한 노출도 커졌다. 엔화 약세는 외화 표시 자산의 엔화 가치 상승을 통해 NIIP를 기계적으로 확대시켰으며, 이로 인해 대외 포지션 지표는 환율 변동에 더욱 민감해졌다.
과도한 특권과 수익률 격차
일본은 과거에 비해 규모는 줄었지만 여전히 대외 자산 수익률이 대외 부채 수익률을 상회하는 양(+)의 초과수익을 유지하고 있다. 평가손익을 포함한 총수익률 기준에서는 환율 변동과 자산가격 변화에 따라 변동성이 크게 나타난다. 반면, 평가손익을 제외한 소득 기준(income-only) 수익률을 보면 초과수익은 작지만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통화 구성의 변화
자산 측면에서 일본의 대외 포트폴리오는 점점 달러화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지난 10년간 달러 표시 자산 비중이 크게 상승했다. 반면 부채 측면에서는 여전히 엔화 표시 부채가 압도적이다. 이러한 비대칭적 통화 구조는 일본이 자국 통화로 저비용 차입을 유지하면서 해외에서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강화한다. 양자적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달러 자산 확대는 미국의 대외 대차대조표에서 주식 부채의 평가가치 상승과 대응되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산 유형별 수익률 격차
자산 유형별 분석 결과, 일본의 과도한 특권은 주로 채권 포트폴리오에서 발생한다. 직접투자는 변동성이 크고 순기준으로 음(-)의 수익률을 보이며, 포트폴리오 주식 수익률은 낮은 배당수익률과 구성 변화로 인해 최근 약화되었다. 기타 투자는 소폭이지만 안정적인 기여를 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일본이 매우 낮은 엔화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의 해외 채권에 투자함으로써 지속적인 채권 소득 격차를 창출한다는 점이다.
결론
소득 기준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의 과도한 특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일본은 대외 대차대조표에서 지속적인 양(+)의 초과수익을 얻고 있으며, 이는 주로 채권 소득 격차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러한 특권은 제도적 신뢰성, 글로벌 투자자에 대한 개방성, 그리고 안전자산 공급자로서의 역할에 기반한다. 그러나 높은 정부부채, 인플레이션 압력, 금융 시스템의 잠재적 불안정성은 중요한 제약 요인이다. 이러한 위험이 효과적으로 관리된다면, 달러 중심 국제통화질서가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엔화는 대체 안전자산(substitute safe asset)으로서의 역할을 유지하거나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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