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30

(논평) 한국 노동시장 구조개선 문제는 아는데 답은 못찾는 상황

(※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이 동아시아재단에 기고한 글을 공유. 보고서 원제는 『표류하는 한국의 노동문제』)

한국에서 노동문제만큼 논쟁적이면서, 다면적인 특성을 갖고 있고, 또 갈등적인 현안도 없을 것이다. 사실 다른 나라에서도 노동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개발 시대의 유산과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의 시장 자유화 확대에 따른 문제가 중첩되면서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의 분단 현상이 매우 심각하다. 더욱이 그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서 노와 사, 진보와 보수 진영 간의 인식이 너무나도 다르다.

▣ 경영계와 노동계의 서로 다른 지향점

우리나라의 상당수 경영자들과 파워 엘리트들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로 미국식 경제시스템을 전제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식 노동시장은 자유로운 채용과 해고를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유연한 인력 운용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경영계와 많은 관료들은 일부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만 약화된다면 유연한 노동시장 구축을 통한 고용 증가가 가능하다고 인식한다. 실제로 미국은 매우 유연한 노동시장을 통해 실업률을 낮추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는 성공적이었지만, 노동자 내부의 격차, 그리고 노동 대 자본의 격차는 점점 더 확대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노동계는 이에 반해 유럽식 노사관계 시스템을 본받고 싶어한다. 독일이나 스웨덴식 산별노조 건설과 산별교섭, 그리고 프랑스식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소수의 노조원을 대표하는 산별노조가 합의한 내용이 비조합원들에도 전면적으로 적용되는 것)를 통하여 노동과 자본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직무 중심의 조절된 노동시장에서 노동자간 격차가 확대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이렇듯 경영계와 노동계의 지향점은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있어서 미래 발전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의 발전 경로를 보았을 때 구조적, 제도적 기반은 일본식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기업별 노사관계 시스템이 형성되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가 일상화되어 있으며, 사회적 대화는 불충분하다. 그렇지만 기업 내적으로는 경영성과에 연동된 고용과 임금을 설정하기 용이하며, 노동조합 역시 조합원들과의 접촉면이 넓고 깊게 형성될 수 있다.

▣ 역사적 유산을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적 제약

우리나라는 1980년 전두환 정권이 기업별 노조를 강제한 이후 구조적으로 기업별 노사관계 시스템이 고착되어 오다가,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 위기와 노사간 세력 불균형, 기업규모 간 격차 확대를 경험한 이후 조직구조를 기업별에서 산별로 전환하려는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어 왔다. 이에 따라 통계상으로는 2010년대 들어서 초기업단위 노조에 속한 조합원 수의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그러나 조직 구조와 달리 단체교섭에서는 여전히 기업단위 교섭이 일반적인데, 그것은 산별노조 전환에 따라 수반되는 교섭권, 체결권, 파업권, 예산과 인력 등을 산별 중앙에 위임하고 집중하는 데에 대기업 노조들이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으며, 이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조적 기반을 유럽형으로 바꾸는 것이 수월치 않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사용자들의 경우도 흥미롭다. 일본형 구조 하에서 암묵적으로 종신고용, 가족적 경영, 연공임금, 기업별 노조 등을 전제로 해왔으면서도, 일본의 경영자들과는 달리 구조조정기에는 고용조정에 적극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즉 한편으로는 일본식으로 종업원들의 충성을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필요 없을 때는 자르고 마는 미국식 시스템을 차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미국식 노동시장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들의 저항과 반발로 엄청난 갈등 비용을 치러야할 것이다. 그들은 노동시장 유연화가 곧 근로조건의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거꾸로 노동계가 원하듯 유럽식 산별교섭을 구축하는 것도 경영계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해 있다. 2000년대 초중반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비롯하여 몇몇 산별교섭 시도가 있었지만, 기존의 기업별 교섭에 상층 교섭이 추가되는 다중 교섭과 중복 파업에 따른 나쁜 기억만 남겼을 뿐이다.

결국 일본식의 구조적 기반, 경영계의 미국식 지향, 그리고 노동계의 유럽식 지향 속에서 한국 노사관계 시스템은 표류하고 있다. 이렇게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기업 내 인력 활용의 생산성과 효율성, 그리고 노사관계 제도의 안정성도 떨어지는 여건 하에서 여기까지 경제를 성장시켜 온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해법 찾기

그렇다면 방법은 없는가? 이렇게 문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르고,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는 미래사회의 모습이 다를수록 사회적 대화를 통한 공감대 형성과 대화와 타협이 절실해진다. 그렇지만, 개발 독재 시기는 당연히 이러한 사회적 대화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노사는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조차 10여년의 시간을 필요로 하였다.

IMF 직후인 1998년 2월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재벌 개혁과 각종 노동권 신장, 그리고 정리해고와 파견근로를 도입하는 대타협이 이루어짐으로써, 우리나라에서도 진정한 사회적 대화의 시대가 열린 것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렇지만, 경제위기를 극복하게 되면서 각 주체들은 과거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더 많아졌으며, 관료들의 사회적 대화 기피 현상까지 겹쳐지면서 노사정위원회는 종종 기능부전 상태에 빠졌다. 심지어 1999년 이후 양대 노총 중 하나인 민주노총은 공식적 대화 공간인 노사정위원회에 한번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한국노총 중심으로 사회적 대화가 근근이 이어져 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그마저도 정부가 주도하는 사회적 대화로 인하여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해 있다. 노사 자율주의를 존중하기보다는 강력한 개발 국가의 잔상이 남아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노동시장 양극화 극복을 위하여

이렇듯 미시적으로나, 거시적으로나 노사관계가 갈등으로 점철된 가운데, 노동시장은 양극화의 몸살을 앓게 되었다. 그것은 기업별 노사관계 시스템 하에서 대-중소기업간 격차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일본의 경우 대체로 대-중소기업간 부가가치 생산성의 격차에 비례하는 임금격차가 나타나고, 또 경제주체들이 그 정도의 격차는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중소기업간 격차에 대한 수용성의 정도가 매우 낮다. 왜냐하면 대기업들은 재벌에 대한 특혜와 독점 이윤으로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고,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의 하청 단가 인하 속에서 지불능력 제약으로 더 많은 임금을 주고 싶어도 못주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생산성과 임금 사이의 상관성이 떨어지고, 재벌과 대기업 노조의 부당한 힘에 의해서 격차가 확대된다고 인식되기 때문에 공정한 노동시장에 대한 공감대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00년대 이후 널리 확산된 아웃소싱 현상은 대기업과 공기업 등 양질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그 결과 약 10% 정도의 소수만이 1차 노동시장의 고임금, 고복지를 누릴 뿐이고, 대다수는 중소기업에서 낮은 임금을 감수하거나, 비정규직과 실업 사이를 전전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시장의 이중화는 곧 자본에 대한 노동 소득 전반의 약화로 이어졌다.

이제 이러한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 주체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지식인 사회는 미국식, 일본식, 유럽식 모델을 소개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노동문제의 연원과 실태를 꼼꼼히 따져서 방향을 제시하는, 즉, 현장 중심의 연구와 우리 실정에 맞는 정책 대안 개발에 능동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접근을 시도한다면 우리나라의 최대 노동 문제로 일컬어지는 비정규직 이슈도 사실은 대-중소기업간 격차 문제와 연동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의 80% 이상이 분포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원하청 구조 하에서 겪는 지불 능력의 제약과 기업별 노사관계 시스템 하에서 대기업 노조와 달리 조직적 힘을 갖기 어려운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상대적으로 취약한 근로조건은 기술혁신과 숙련 향상을 강조한다고만 해결될 수 없는 경제적, 사회적 한계이다.

하나의 제도와 관행이 형성되기까지 여러 요인이 중첩되어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적, 제도적 한계를 돌파하는 것은 수월치 않으며, 단기적으로 해결되기는 더더욱 어렵다. 현단계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현재의 문제를 정확히 지적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여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대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쉽이다.

사회통합적 성장을 위한 리더쉽의 방향 제시 속에서 노사 당사자들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조화시키려는 지혜가 요구된다. 미국식, 유럽식, 일본식이라는 이념형을 넘어서서 현실적인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 이외에 다른 해법이 있을 수 없다.

〓〓〓〓〓〓〓〓〓〓〓〓〓〓〓〓〓〓

※ 위 글과 관련해 한국에서 노동시장 구조 및 관행 개선의 필요성이 절박하다는 점을 잘 나타내는 그래프 2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의 1인당 GDP의 미국 대비 비율 변화 추이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한국의 1인당 GDP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증가해 왔다. 하지만 일본을 앞지르기 직전인 현시점에서 개선 추세가 주춤하고 있다. 수출주도형 경제 구조의 문제라느니 가계부채의 문제라느니 하는 지적이 많다. 하나씩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더 기조적으로 심각한 문제는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근로시간 1시간당 산출하는 GDP 액수를 미국과 비교해 비율로 나타낸 그림이다. 한국은 2014년 현재 2000년보다 소폭 개선되기는 했다. 하지만 절대 수준은 국제적으로도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인당 GDP는 빠르게 증가했는데 시간당 부가가치는 왜 늘지 않았는가? 그것은 결국 세계 최장시간 근로에서 찾을 수 있다. 즉 OECD에서 3번째로 많은 시간 일하지만 시간당 생산성은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말이다.)


= = = = ★ ★ = = = =

▶ 블로그 글 검색 ◀

▶ 지난 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