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6

(보고서) 남북 통일문화의 공존도시 중국 ‘단동’

(※ 산은경제연구소가 발간한 정은이 경상대학교 교수의 『시장화를 통한 북한 주민의 남한화 유도방안』이라는 보고서 중 일부를 소개. 보고서 전체는 여기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남북 통일문화의 공존도시 중국 ‘단동’》

(전략) 북한에서 시장을 통해 남한의 상품을 알리고 확대시키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북한에서 시장을 확대시키고 남한에 대한 북한 주민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남북한 통합의 측면에서 중요하며 그러한 의미에서 남한과 북한의 통일문화를 발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 상황에서 남한의 문화는 지금껏 중국을 통해 많이 유입되었으며, 더욱이 남한과 북한문화가 공존하는 중국 단동에 대한 고찰은 매우 중요하다.

1. 북ㆍ중 무역과 한류

1) 중국 최대의 북ㆍ중 무역 도시: 신의주와 단동

평안북도의 중심은 원래 ‘의주(義州)로’, ‘신의주’는 후에 개발된 새로운(新) 의주다. 즉, 북ㆍ중 접경도시 신의주와 중국 단동은 1920년 전후 일본에 의해 하나의 권역으로 개발되었다. 이는 신의주와 단동의 도로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그림3 참조>. 바꿔 말하면, 이 두 도시의 도로형태가 바둑판 모양으로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은 양 도시가 계획적으로 함께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일본이 양 도시를 잇는 압록강철교를 건설하면서 양 도시가 본격적으로개발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양 도시 간 문화ㆍ경제적 교류는 예부터 빈번했으며, 실질적인 국경선은 매우 선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당시 1930년대 신의주의 인구 구성만 보아도 일본인과 중국인의 비중이 매우 높았으며, 현재에도 조사결과, 쪽바리거리(일본인거리), 떼거리(차이나타운: 중국인거리) 등이 잔존하며, 신의주와 단동 간 실질적인 국경선은 노태우의 북방정책이 실시되면서 비로소 만들어졌다.

따라서 양 도시는 민간교역을 비롯하여 모든 경제적 교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늘날에도 북ㆍ중 무역의 중심지는 바로 단동이다. 단동 세관 근처에 가면 이 지역 하나가 북한을 상대로 하는 상점들로 집중되어 있다.

동북 3성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상해, 수조 등 남방에서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북한에 팔기위해 이곳에 지사를 두고 있다. 이는 약 400개 정도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단동 세관에 가면 매일같이 북한 노동자들의 유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단동에 체류 중인 북한 노동자들도 1만 8천명을 넘는다.

이는 통계로도 입증한다. 중국 단동은 북ㆍ중 무역 전체의 30-40% 이상을 차지한다. 여기에 밀무역 등 비공식무역을 합하면 요녕성에서도 경제순위가 14위에 불과한 단동 한 도시에서 이러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단동이 매우 중요한 입지에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에서도 무역의 중심지는 평양이지만 그 중 많은 회사가 신의주에 지사를 두고 있다. 설령, 평양과 북경에서 합의가 이루어져도 실무적인 일은 대체로 신의주와 단동 양 도시에서 이루어지며 물류가 이곳 단동을 통과한다. 즉 이 양 도시는 중국과 북한에게 통신, 통항, 등 3통(通)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통상공간이다.

2) 단동에서 부는 ‘한류(韓流)’ 열풍

이와 같이 중국단동은 예부터 북한과 매우 친숙한 도시다. 따라서 몇년 전만 해도 단동 사람들은 남한과 북한을 잘 구별하지 못하였다. 남한 사람을 보아도 모두 북한 사람이라고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중국의 다른 도시와 달리 상대적으로 단동은 ‘친조(親朝)’의 도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류 열풍이 중국대륙에 불면서 점차 단동에서도 한국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단동의 인구가 약 240만 명이며, 그 중 도시 인구가 70만 명 전후인데 이곳에 코리아타운(한국성)이 형성될 정도로 단동에서 한국의 위상은 높아갔다. 이곳 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각종 한국 상품을 파는 상가ㆍ병원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진출 업종이 미장원, 식당, 한국어교실, 택배회사, 사우나, 번역회사, 병원, 화장품상점, 한국식품마트, 노래방, 가구점, 건강원, 전자 기계점, 복장, 부동산, 장식, 온돌판매, 세탁소, 커피숍, 떡방, 커익점, 한국위성 등 매우 다양하다<표5 참조>.


한편, 최근 1, 2년 사이 중국 최대의 부동산 그룹 ‘완다(万達)’가 단동에 거대한 쇼핑몰을 건설했는데 그 입지도 바로 한국성이다. 완다광장 안에는 한국연예인을 광고모델로 하는 곳이 적지 않으며 롯데마트와 한국 다이소가 진출해 있다.

2. 남한 상품의 자연스런 북한 유입

1) 접목 공간: 한국과 조선의 거리 및 세관 상점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동에는 북한과 한국을 구별하여 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동시 도시의 간판을 보면 조선어 한국어 교실이 따로 표기되어 있으며, 식당도 한국식당과 북한식당을 각각 다르게 구별하여 표기한다. 이는 단동에 북한과 남한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단동에서 무역이 활발한 세관에 가면 중심지에 한국과 조선(북한)의 거리를 의미하는 ‘한리여우펑칭지예’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바로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한다.

이는 단동이라는 공간이 북한 사람에게는 한국의 것을 배우고, 남한 사람에게는 북한의 것을 배울 수 있는 최적의 공간임을 입증한다. 실제로 단동을 방문한 외국인 중 한국인과 북한사람이 각각 50%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과 남한은 단동에서 비중이 높다(그림6).


단동세관 주변에는 북한 무역상을 대상으로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반대로 장뇌삼, 각종 버섯 등 북한 농토산품을 판매하는 상점도 적지 않다. 이와 동시에 꼬마식품 등 한국마트에서 시작하여 동방상점 등 각종 기계를 판매하는 상점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국 제품만을 전문 판매하는 상점도 적지 않다(그림7 참조).

인터뷰조사결과, 이곳의 주 고객은 중국인이 아닌 북한 사람들이며 상점 주인은 이들 때문에 막대한 매상을 올리고 있다. 실제로 이곳 상점을 방문했을 때 한국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 한족 또는 북한사람이었으며 그 중 북한사람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한국식당도 마찬가지다.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방문하느냐 또는 당국의 정책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한국 식당의 매출이 달라진다. 미장원도 한번 머리를 자르는데 중국 돈 100위옌이 넘지만 대부분 북한 사람들이 주 고객이다.

따라서 이곳 한국 상점들은 어떻게 하면 북한 고객을 끌어들일 것인가에 대해 매우 고심하고 있다.


이는 한국 상품과 문화가 공식이든 비공식의 형태든 북한으로 유입이 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중국산보다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쿠쿠밥솥도 많이 북한으로 유입이 된다. 한국 글자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은박지를 살짝 붙이기만 하면 된다. 단동 세관 주변에 가면 전문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가게들이 있다. 북한 세관을 통과한 후 스티커를 떼면 된다.

2) ‘내륙기업’과 삼각무역(홈쇼핑의 상점까지)

기존 남북교역에서 주요 플레이어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이다. 이와 함께 2000년 전후 남북직교역이 가능해지면서 중국에 거점을 두고 남북교역을 하는 한국인 기업군이 등장했다. 이들은 일반교역에서 위탁가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진출했으며, 양상도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위탁가공이라면, 중국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북한에 가공만 위탁하는 단순위탁가공에서 중국현지에서 북한노동자를 고용해 생산하는 형태, 북한에 직접 설비와 자본을 가지고 들어가 현지 노동력과 토지를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중국을 거쳐 제3국으로 수출하는 삼각무역 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러한 북한 현지의 한국인 대북투자기업은 개성을 제외한 평양, 신의주, 남포 등 북한 전역을 무대로 진출했다하여 개성공단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내륙기업(內陸企業)’이라 불렸다. 특히 이 내륙기업은 개성공단에 비해 국가 지원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은 투자비용을 최대한 절약하여야 했다. 따라서 개성공단에 비해 고정비용이 상대적으로 낮다. 뿐만 아니라 내륙기업은 중국이라는 제3의 공간을 활용하여 3통(通)의 편익을 누리고, 자금결제에 있어서, 중국이라는 막강한 원료공급지 및 중국에 본거지를 둔 관계로 중국에 가까운 상업관행을 채택함으로써 남북교역에서 유연성을 제고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단동이라는 공간을 통해 직접 북한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하여 단가에 대한 교섭능력이 뛰어나 비용을 낮출 수 있었다. 따라서 예를 들어 임가공비가 오히려 개성공단보다 더 낮았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통해 원단을 비롯하여 한국산 물품이 많이 북한에 유입되었는데, 심지어 홈쇼핑의 제품도 판매가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자국산 커피믹스가 생산 판매되고 있다.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대중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한국의 영향이 컸다. 그러데 커피믹스의 포장과 디자인을 보면 한국산과 거의 같다고 할 정도로 매우 유사한다. 심지어 맛이 중국산보다는 한국산에 매우 가깝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원료와 기계, 기술이 한국산이며, 한국인 대북 업자의 영향이 매우 컸음을 뒷받침한다.

《결론: 방안 마련》

조사결과,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북한에서 시장은 매우 유용한 기제로 작동했다. 특히 시장은 남한 물품의 유입을 가능하게 하고, 확산시키고 남한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이러한 인식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로 기능했다. 이는 나아가 한국산을 모방하게 하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소비문화를 창조시켜 기업의 생산활동을 자극하는 파급효과도 가져왔다.

그러므로 북한에서 시장을 확대시키고 이를 통해 남한상품을 유입시키는 방안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ㆍ중 접경지역을 활용하는 방안은 매우 유용하다. 이곳은 남한과 북한의 문화가 공존 접목하는 제 3의 공간으로, 남한사람이 북한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북한사람이 한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큰 거부감이 없는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을 통해 지금까지도 한국산의 상품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단동은 자연스럽게 남한과 북한문과를 익히는 학습의 공간으로 활용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먹는 것, 입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가를 육성하는 측면에서도 매우 유용하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단동에 상주 또는 왕래하는 북한 무역대표들은 중국인 파트너에게 어떤 상품을 어떻게 하면 북한 시장에 더 잘 팔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문의를 해 온다. 이는 북한에서 시장이 그 만큼 발달하였음을 입증하며, 그 만큼 기업가의 정신이 싹트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인재를 육성하고, 경제인, 기업가를 양성하는 일은 매우 시기적절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남한은 최근 북한에서 변화, 북한주민, 무역일꾼 등의 수요를 파악하고 읽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북한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가 인식하고 이것을 보급해 주는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한다면 북한주민의 남한화에 매우 효과적이며 파급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개성공단과 같은 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일 뿐만 아니라 단동, 연변 등 남한과 북한의 문화가 공존하는 제3의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일도 현 시점에서는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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