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나 경제부처 각료들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흔히 듣게 되는 것이 "체감경기"다. 표현 방식이나 정확한 단어는 조금씩 달라도 국민들이 경제 상황에 대해 느끼는 것을 뜻하는 취지로 이 단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단어가 우리 나라에서 필요 이상으로 자주,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 한다. 가장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이 단어는 어디까지나 경제 용어가 아니며 그 개념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체감경기라고 하면 누구나 그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즉, 일반 국민들이 자신들이 처해 있는 경제 상황에 대해 갖고 있는 느낌을 뜻한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이 때 일반국민이 누구를 뜻하며 또 여기서 경제 상황이라면 어떤 부분을 말하는지는 그야말로 각기 다르고 또 각자 처해 있는 상황도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실례로 어제까지 잘 나가던 중소기업 경영자는 수입이 줄어들면 상황이 나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분명 오래 다니던 직장에서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사람과 비교하면 아주 행복한 상황이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체감경기는 안좋다고 할 것이다. 필자는 물론 오랜 동안 사람들 사이에 이미 널리 사용돼 온 이런 표현을 모호하다고 해서 공직자들이 절대 사용해선 안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행정부 각료들은 행정가이면서도 동시에 정치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이 일반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감안해 행동하고 발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경제 통계처럼 전문적인 경제 부문에 대한 발언을 한다든지 하는 경우까지 이런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한국은행이나 통계청 처럼 일반인들의 실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전문적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7월25일 한국은행에서는 2/4분기 중 국내총생산 속보치를 발표한 뒤 이에 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은 국민계정부장이 개최한 것이다. 국민계정부라는 말 자체가 나타내듯 이날 기자회견의 주제가 되는 것은 국내총생산에 대한 것이었다. 이 통계는 경제통계 가운데에도 아주 전문적인 성질의 것이다. 따라서 웬만한 내용은 우리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개념과는 처음부터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도 체감경기가 언급됐다.
몇 가지 발언 내용을 소개하면 "일부 국민들께서 느끼는 체감 경기는 상당히 안좋은 걸로" "국민들께서 느끼는 체감경기와 실질 소득 지표로 나오는 성장률과는 괴리가 있을 걸로" "일부 실물지표와 우리 지표와 다른 모습을 나타내는 건...감안해주시기 바란다" 등이다. 어차피 전문 경제 통계를 다루는 기자회견에서 이런 표현들이 왜 필요했는지 납득할 수 없다. 한국은행은 정치적 조직이 아니고 자신들도 정치적 중립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
한국은행의 통계가 비슷한 성질 혹은 비슷한 용어의 다른 통계와 큰 차이를 보인다면 이를 설명하면 그 뿐이다. 그러나 굳이 "일부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가 안좋은 것을 한국은행이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필요하다면 그런 것은 다른 정치적 부처, 예컨대 청와대나 여당 등에서 다른 자리에서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최근 운영상 개선의 여지는 충분히 남아 있지만 과거와 비교할 때 중앙은행 독립성이라는 구호에 집착하기보다는 합리적 중앙은행을 지향할 때라는 글을 게시한 바 있다 (☞ "한국은행 독립성의 우상을 넘어" 참조).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이제는 "중앙은행 독립성"이라는 애매한 구호에 집착하지 말고 더욱 전문성 있고 합리적인 중앙은행을 지향해야 할 때라는 지적을 하려는 것이다.
한국에는 5천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이 있다. 수많은 기업과 사업체가 있다. 모두가 경기를 좋게 느끼는 상황은 드물 것이다. 일부 국민은 경기가 안좋다고 하고 일부 국민은 괜찮다고 한다. 다수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은행이나 통계청에서는 각종 설문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이를 지수화 해 발표한다. 굳이 가장 전문적인 통계를 설명하는 자리에서까지 "체감 경기"를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