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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생활의 발견 - 한국은행 편

(이 글은 지난 5월9일 한국은행 금통위의 금리 인하 결정에 대해 페이스북에 작성한 글입니다)


생활의 발견 - 한국은행 편

"저,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오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2.50%로, 전월보다 0.25%포인트 내리기로 결정했다. 로이터통신의 사전 설문조사에서는 총 26명의 전문가 가운데 16명이 기준금리 동결을, 그리고 나머지 10명이 인하를 전망했다. 과반수 의견을 기준으로 하면 예상을 벗어난 것이다. 

물론 인하를 전망한 사람도 10명이나 된 것에 비추어 보면 전혀 뜻밖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난 달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 반대 논리를 장황하고 자신있게 설명한 것에 비추어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이 다 해소되지는 않았다. 한국은행이 이날 배포한 자료 3건과 김중수 총재의 기자회견은 이러한 궁금증을 덜어주는 데 미흡했다.


◇ 무엇이 달라졌나

한국은행의 자료와 김중수 총재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경제성장세나 인플레이션 쪽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경제성장 경로는 상방 및 하방 위험이 조금 더 커졌지만 균형돼 있다. 인플레이션은 당초 전망보다 약간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지난 달 총재를 제외하고 3-3 으로 나뉘었던 동결-인하 의견이 이달 1-5로 바뀐 것(총재는 다수 견해가 성립되면 여기에 따른다)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밖의 사정을 보면,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호주와 유럽중앙은행, 그리고 인도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했으며 원/엔 환율이 더 하락했다는 것 등 세 가지 상황이 새로 생겼다. 그래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는 것이 김 총재의 공식 설명이었다.

◇ 4-3과 1-6은 "한 끗" 차이?

김중수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를 내려야 하는 이유와 내릴 필요가 없는 이유가 팽팽한 상태며, 이는 지난 달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표결 결과는 1-6이었다고 공개했다. 그러면 지난 달 4-3으로 동결 우세였다가 이달 1-6으로 인하 우세가 된 것이 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일까?

금통위 위원 7명 가운데 의장은 김 총재이고 박원식 부총재는 당연직으로 통상 총재와 뜻을 같이 한다. 두 사람 사이에 표결이 엇갈리는 것은 실질적으로 일어나기 힘들다. 즉 할인점에서 흔히 상품을 2개씩 묶어서 판매하는 1+1과 같은 경우다. 문제는 총재의 경우 나머지 위원들 사이에 과반 의견이 성립할 경우 거기에 따른다는 점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5명 사이에 2-3의 경우 총재는 어느 쪽을 선택하든 결과를 바꿀 수 있다 (2명이 함께 움직이므로 4-3 또는 2-5를 만들 수 있다). 다음, 1-4 또는 0-5일 경우 어느 쪽에 2명이 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에 총재가 먼저 인하 쪽으로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면 나머지 5명 가운데 1-4로 인하 주장이 과반이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난 달보다 입장이 바뀐 사람은 단 한 명이다. 왜냐 하면,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하고 동결을 주장했던 임승태ㆍ문우식 위원 중 한 사람이 사전 모임에서 인하로 입장을 바꿨다면 총재와 부총재도 결국 다수 쪽으로 표결했을 것이다. 이 설명대로라면 입장을 바꾼 사람은 1명인 셈이다.

◇ 생활의 발견..."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TV 코미디 프로그램 가운데 "생활의 발견" 코너가 있다. 손님들이 등장해 심각한 얘기를 시작하지만 결국 실생활의 문제, 즉 먹는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게 되는 장면을 보여 주며 웃음을 자아낸다. 극중 가게 종업원(또는 주인)이 중간에 등장해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며 복잡한 상황도 깔끔하게 정리해 주고는 퇴장한다. 그냥 "그러면 안된다"는 한 마디로 모든 게 정리된다. 현실 우선이다.

김중수 총재는 금리정책 회의를 주재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기회가 있지만 7명으로 구성된 금통위는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돼 있다. 위에 설명한 대로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5명의 위원 가운데 4명이 뜻을 모으면 그대로 결정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4월 박봉흠 위원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뒤 후임을 임명하지 않고 2년간 공석으로 남겨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4명 가운데 4명이 모두 총재의 견해에 반대할 가능성은 5명 가운데 4명이 그럴 경우보다 줄어들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활의 발견" 코너를 언급한 이유는 7명의 자리가 채워진 상태에서 총재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 얘기는 김 총재가 이 달 회의에서 주도적으로 인하를 주장하지 않았을 것을 전제로 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정작 문제는 지난 달 기자회견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한계를 알면서도 지난 달 기자회견에서 마치 자신이 금리 동결을 관철시킬 수 있으리라 자신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하겠다.

4년 전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2009년 10월 9일은 한글날이었지만 공휴일이 아닌 관계로 금통위는 기준금리 결정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성태 당시 총재는 치솟는 주택가격과 가팔라지는 경제회복세를 거론하면서 "낮아도 너무 낮은" 기준금리(당시 2.0%)를 곧 올려야 한다는 듯한 발언을 했다. 시장은 금리 인상을 점쳤다. 그러나 막상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그것도 만장일치였다(최소한 반대를 명시적으로 주장한 위원이 없었다). 결국 총재와 부총재는 이미 동결로 견해가 굳어진 상태였다면 거기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성태 총재는 이를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기준금리 정상화가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1년 여의 시간이 더 흐른 2010년 7월이었다. 결국 한국은행 총재는 소위 말하는 N분의1의 신분은 아닐 지 몰라도, 경우에 따라 그보다도 힘이 없을 수도 있다.

만일 김 총재가 주도적으로 인하로 입장을 바꾼 것이라면? "이러시면 안됩니다."

생활의 발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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