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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어 안쓰는 기사가 잘 쓴 기사다

기자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글(☞ "모르면 자료 그대로가 아니라 안 쓰는 게 맞다")을 최근 게시한 이후 같은 생각을 한다는 반응도 있었고 "얼마나 잘 하길래 동료들끼리 흉을 보냐"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기자가 되려 하거나 지금 막 기자의 길로 들어선 후배님들에게는 도움이 됐을 것으로 믿는다. 그런 믿음에 용기를 내 오늘은 전문용어와 유행어를 기사에 남용하는 현상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려 한다.

요즘 언론 기사를 보면 많은 유행어가 등장한다. 전문용어는 아닌 것 같은데 이미 너무 자주 그리고 일상생활에서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어 마치 전문용어처럼 돼 버린 경우도 많다. 과거에는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지고 널리 사용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복잡한 토론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요즘은 새로운 유행어가 생겨나 이것이 바로 용어 처럼 취급받는 것이 자유로와진 편이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경제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푸어"라는 말이 있다.

이 말과 관련된 원조격 단어를 찾아 보니 "워킹푸어(working poor)"가 있다. 우리 말로 "근로빈곤"이라고도 하는 이 용어는 일하는 빈곤층을 뜻하고,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1990년대 중반 등장했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들은 월급이 나오는 일자리가 있어 얼핏 보기엔 중산층 같지만, 고용도 불안하고 저축도 없어 언제라도 극빈층으로 추락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여기서 착안해 속속 무엇이든 뒤에 "푸어"라는 말을 붙여 이를 대단한 용어처럼 남용하는 사례가 많이 보이고 있어 문제다. 특히 "하우스푸어"라는 단어가 유행하게 된 이후 요즘은 "렌트푸어"라는 말도 사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베이비푸어"라는 영어인지 한글인지 모를 단어도 눈에 띈다. 처음에는 소규모 온라인 매체나 잡지 등에서 사용되더니 점차 전국규모 방송이나 심지어 공영매체에서도 사용되는 것 같다.

물론 기사를 작성하다 보면 피치 못하게 전문용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GDP라든지 인플레이션이라는 용어르 사용하지 않고는 기사를 작성하기 힘든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좋은 기사일수록 전문용어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기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쉽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더구나 용어로 정립되지도 않은 유행어를 섞어 기사를 쓰는 것은 지나친 편의주의거나 무지함의 증거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실례로 "하우스푸어"라는 단어를 살펴 보자. 온라인 시사상식 검색을 해 보니 대략 "부동산 시장 침체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아파트를 내 놓아도 거래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면 집을 팔 수도 없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달마다 막대한 이자 비용을 감수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말로 지칭하려는 사람들 혹은 현상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가 생각된다.

집을 구매할 때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하고 결정한다. 앞으로 집값이 오를 경우, 집값이 내릴 경우, 집값은 올랐지만 다른 물가가 더 오를 경우, 집값이 내리면서 처분하기도 쉽지 않을 경우 등 많은 경우를 감안하고 결정해야 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모두 정상적인 상황이다. 예를 들어 3년 뒤 중고 시장에서 새차값의 50%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새차를 구매했지만 실제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이들을 특별히 어떤 용어로 부르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높은 신뢰도를 유지하고 있는 매체들의 경우 공통점이 있다. 전문용어라도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구나 급조되고 정의도 모호하며 자칫 가치판단의 오류가 개입될 수 있는 유행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이들 유행어는 분명 편리한 기능이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부작용이 너무 크다. 나 스스로도 유행어 뒤에 숨지 않고 조금 더 고민하고 조금 더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조금 더 양심적인 기자가 되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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