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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인과관계의 허울에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인간의 논리력

(※ 사견입니다.)

나는 최근 "책 소개"의 형식을 빌어 거짓인 줄 뻔히 알 수 있는데도 우리가 보통 속아넘어가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관련 글 ▶ "(책소개) unSpun: 왜 우리는 알고 보면 뻔한 거짓말에 잘 속는 것일까?") 그런데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이 꼭 거짓말에만 속아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서양 과학을 교육받은 많은 사람들은 보통 인과관계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무슨 이야기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상대적으로 높은 신뢰도를 느끼게 된다. 교육수준이 비교적 높은 한국인들은 특히 "인과관계"에 대한 경계가 허술한 편이다. 무슨 말을 하든 "~때문에"라든지 "~라서"라는 식의 말을 들으면 말하는 사람에 대한 경계를 늦추게 된다.

이런 인간 사고체계의 허점을 특히 잘 파고드는 것이 상품광고와 정치인들의 언술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경계심은 대체로 높은 편이어서 여기서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많은 신뢰를 받고 있는 언론사의 기사에서도 인과관계의 형식을 빈 허술한 문장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발견돼 이를 지적하려 한다.

오늘 어떤 기사의 시작 부분을 소개한다.
"전남 여수산단의 석유화학 기초제품 생산 회사인 여천NCC가 현행법상의 이중적인 개발 부담금 때문에 5천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보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천NCC 외에도 여수산단의 4개 대기업이 같은 이유로 수조 원의 투자를 유보 중인 것으로 알려져 규제 개혁 여부가 주목된다."
얼핏 보면 상당히 논리적인 문장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장의 허점은 마치 "개발 부담금"이 문제의 전부라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을 한 회사측의 말이 사실이며 부담금이 문제의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해도 기자는 그것이 문제의 전부라는 인식을 독자가 갖게 만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업체 입장에서 "부담금"은  일종의 비용이다. 그러나 투자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비용은 고려사항 가운데 중요하기는 해도 고려사항의 전부는 아니다. 예컨대 비용이 높아도 기대수익이 더 크거나 다른 이점이 있다면 투자를 진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위 기사를 쓸 때는 다른 여건에 대한 조사가 더 필요했으며 그 결과도 기사에 함께 제시해야 한다.

주식시장 기사에서 흔히 접하는 말 중에 "외국인 매도로(때문에) 주가가 하락했다"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여기서 "~로(때문에)"의 표현은 논리적으로 완벽하지 못하다. 이것이 완벽하려면 외국인투자자들이 매도할 때마다 주가는 하락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외국인들이 매도해도 내국인들이 더 많이 매수하면 주가는 상승할 수도 있다.

즉 외국인 매도는 매도의 "주체"를 나타내고 매수 유인보다 강한 매도 유인의 "결과물"이지 주가 하락 요인 자체는 될 수 없다. 좀 더 주가 하락의 이유를 제시하려면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매도의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물론 매번 이렇게 까다롭게 따지면서 시황 기사를 쓸 수는 없다. 하지만 독자들은 "~때문에"라는 말 때문에 논리적 경계감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남의 말이나 글을 대할 때는 물론 자신이 글을 쓸 때도 인과관계를 동원할 때는 과연 내가 제시하는 인과관계가 정확한가를 좀 더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남을 속이는 일은 올바른 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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