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책일 수록 이런 저런 핑계로 쉽게 끝내지 못하는데 이 책은 퇴근 후 틈틈이 읽었는데도 사실상 1주일 정도 만에 끝낼 수 있을 정도로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본의 소유, 상속 및 그로 인한 이득에 관한 개인간, 국가간 및 시대별 불평등을 강조하고 그 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단순한 형태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뿐 아니라 저자가 자신의 논리를 제기하기 위해 수세기간의 몇 나라 통계를 철저히 분석했다고 자신하는 점, 그런 자신감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자료와 그림 자료를 인터넷에 공개한 점, 각주와 보충 설명을 책의 후반부에 정교하게 배치한 점 등도 책을 무난히 읽는 데 도움이 됐다. 한편 영어 번역본의 꼼꼼함 역시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나는 이 책의 줄거리를 상세히 소개할 자신은 없다. 다만 책의 앞부분부터 끝까지 저자는 자본수익률 증가가 경제성장률 증가보다 빠른 상황이 지속되면서 연간 부가가치 산출량(국민총생산) 대비 자본총량의 배율이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며 개인간 자본 및 자본소득의 불평등도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 정도만 소개하고자 한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현대 자본주의의 대표적 문제점이라고 지적하고 이를 해소할 방법은 자본 소유 내지 자본 이득에 대해 심한 누진세를 적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과정에서 교조적, 정치적 용어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면서 일상적 표현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저자의 자세도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나 영국의 대처 수상, 그리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등의 실명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들에 대한 섣부른 가치평가나 정치적 논평은 하지 않는 점도 좋게 보인다. 자신의 논지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일견 상대가 됨직한 학자나 학파 혹은 정파나 인물을 공공연하게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학자들의 글을 읽을 때가 있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글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비전공자로서 책을 읽는 내내 의아하게 생각한 점은 있었다. 우선 자본의 불평등이 존재하며 그 정도가 심화되고 있어서 문제라는 기본 인식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불평등을 완화한다면 어디까지 완화해야 하는 것인지 그 판단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해 보인다. 모든 사람이 기계적으로 평등한 상태를 추구하자는 말은 아닐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또한 불평등이 문제라서 이를 해소해야 하며 그 방법은 세계 각국이 자본에 관한 모든 정보를 일제히 공유하고 이를 공개한 뒤 여기에 대대적으로 누진세를 부과해서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심하게 이상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얼핏 듣기에는 하향평준화를 주장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설령 불평등 정도가 완화된다고 해도 그로 인한 부작용은 어떤 것이 생길 수 있으며 그런 부작용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피케티의 유년기에 대한 정보가 없지만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유럽 선진국 수준의 민주적 절차에 대해 나름대로 높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자본에 대한 통계를 완전히 공개하고 국가간에 공유하며 여기에 높은 수준의 누진세를 부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이상론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논의과 정치권 토론 과정을 통해 상당한 투명성 제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선진국과 미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이같은 생각이야말로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것이라고 하겠다. 세계 2대 경제국인 중국은 여전히 직접선거를 실시하지 않으며 유럽처럼 의회 내에서 수시로 토론을 갖지도 않는다.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은 여전히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한국 등 이제 막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 하는 나라들조차 각종 제도가 미비한 상태다. 한국보다 뒤쳐진 나라도 아주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저자가 관념에만 치우치지 않고 통계에 기초해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과 주장하는 내용이 철저히 미래지향적이라는 점이다. 1980년대 이후 소득 대비 자본 비율이 점점 확대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지나치듯 정책의 문제를 지적하기는 하지만 이를 비판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래라는 점, 그리고 미래에 희망을 갖고 그 희망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어느 쪽인가에 집중하는 피케티의 자세에 경의를 표한다.
참고로 파리경제대학 피케티 페이지와 기타 자료 링크를 소개한다:
▣ Paris School of Economics Piketty page ☞ http://piketty.pse.ens.fr/en/
▣ Related materials ☞ http://piketty.pse.ens.fr/en/capital21c2
▣ 네이버 네티즌 리뷰 모음 ☞ http://book.naver.com/bookdb/review.nhn?bid=8006242
▣ 피케티의 2014년 3월 프리젠테이션 ☞ http://piketty.pse.ens.fr/files/Piketty2014Capital21c.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