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주간 보고서에 실린 칼럼을 소개한다.)
▣ 대우조선해양 사건과 정책금융 개혁과제 // 윤석헌 숭실대학교 금융학부 교수
정부의 금융개혁 추진이 한창이다. 그런데 갑자기 대우조선해양 손실에 4조원대 지원이 발표되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개혁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민간금융 개혁에 앞서 국책은행 개혁이 필요하다거나 또는 국책은행조차 제대로 이끌지 못하면서 민간금융 개혁을 과연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겠는가 라는 의문들이 제기되는 것이다. 정책금융의 역할이 민간금융으로 하여금 그 역할을 좀 더 잘 수행하도록 도와주고 또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면, 정책금융의 개혁은 금융개혁의 중요한 꼭지가 아닐 수 없다. 이 번 대우조선해양 사건의 올바른 해결이 향후 금융개혁 성과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이다.
지난 2013년 4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변화된 경제ㆍ금융여건에 부합하고 창조경제 선도를 위해 TF를 꾸려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논의한 바 있었다. 그 결과 산업은행 민영화 정책을 중단하고 정책금융공사와 재통합시킴으로써 대형 정책은행이 탄생했다. 그런데 그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산은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의 금년 적자가 4.8조원으로 전망되고 2018년까지 부족자금이 10조원을 넘게 되었는지 국민들은 놀랍기 짝이 없다. 그간 산은과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일까.
정책금융기관에 의한 기업구조조정의 문제점
최근 한국경제의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아 조선, 철강, 해운, 건설, 중화학 등 국가 기간산업 중심으로 기업구조조정이 현안과제로 등장하면서 정책금융기관, 특히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은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산은이 기업구조조정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130개에 달하는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나, 산은을 통한 정부의 관치금융을 기대하는 이해당사자들이 많은 것이 더 큰 이유일 수 있다. 대기업 구조조정과 파산이 계열사와 하청업자 등에 큰 손실을 끼칠 뿐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 처리가 국부 및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산은의 기업구조조정 역할을 통한 정부의 개입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시장을 살린다는 의미가 있겠으나 문제점 또한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첫째, 기업구조조정 시장에서 민간금융회사들을 구축(驅逐)함으로써 금융발전에 부정적 영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IMF 체제 이후 우리나라 대출시장에서 주채권 은행은 대부분 정부소유은행인 우리은행과 산은이 맡아 왔다. 이유가 무엇일까? 혹자는 민간은행들이 위험한 기업대출을 포기하고 안전한 주택담보대출로 전환했기 때문이고 아울러 자본시장에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가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정부가 기업구조조정을 계속 주도할 목적으로 정부소유은행들의 주채권은행 역할을 유도했다는 추론이 오히려 설득력이 높아 보인다. 닭과 달걀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기는 어렵지만 민간 구조조정시장이 자라나지 못하는 현상이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정부소유은행들의 구조조정 추진은 정치권과 정부정책의 영향에 노출되어 구조조정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좀비기업을 양산하게 되고 더 나가서 국책은행까지 좀비은행으로 만들 개연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관치금융 관행 하에서 정치권과 정부의 개입으로 구조조정이 정치논리로 변질되어 결국 국민부담의 확대를 초래하는 것이다.
셋째, 기업구조조정의 성패는 경제와 산업 그리고 기업의 경영역량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분석능력에 달려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사적 정보일 가능성이 높다. 즉 정부의 정보가 오히려 열위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이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국가 위기상황에 처한 경우라면 물론 정부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위기상황이 아니라면 정부 개입은 중장기적으로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정책금융의 개혁과제와 정부의 역할
이러한 상황에서 향후 정책금융의 개혁과제는 무엇인가. 우선 현안과제인 기업구조조정에서, 위기상황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정부가 스스로 전면에 나서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잡는 것은 문제를 정치적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높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대우조선해양이 100% 정부소유인 상황에서 정부가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산은 등 주채권은행이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할 것이고 정부는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부실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상황에서 외부영향과 부서 이해득실을 배제하고 전문가들로 하여금 경제성만을 토대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의사결정과정의 투명성 및 책임성 확보가 필요해 보인다.
이제 정책금융기관들의 일반적인 개혁과제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국책은행은 규모 축소가 필요하다. 한국의 정책금융 규모는 전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높은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정책금융의 규모가 큰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정책금융에서 자금의 가용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규모가 과다해지면서 비효율성이 더불어 확대된다는 것이다. 비대한 정책금융이 민간금융을 구축하여 금융발전을 억제하는 문제가 있고, 비효율적 정책금융 자체의 문제도 있다. 향후 정책금융은 규모와 자금보다 정보와 판단을 중시하는 ‘스마트 금융’으로 발전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둘째, 정책금융기관의 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특히 최근 산은과 수은에서 드러나고 있는 부실과 비리의 배경에 정치권과 관료 낙하산들에 의한 취약한 지배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금융기관 자체의 지배구조 확립은 물론 금융시장에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지난 7월 국회를 통과한 금융회사지배구조개선법 또는 이를 넘어서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스스로 시행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외국인 금융전문가를 CEO로 영입하는 방안을 고려해볼만 하다.
셋째, 정책금융기관들 상호간 업무영역 조정과 더불어 특히 민간 금융회사들과의 시장마찰을 피하는 방향으로의 조정이 필요하다. 우선 산은은 대기업들이 더 이상 은행권에 의존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견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온렌딩(on-lending)과 코파이낸스(co-finance) 등으로 민간 금융기관들과 협력하여 혁신상품과 거래형 금융(transaction banking) 서비스 등을 개발ㆍ제공하는 ‘스마트 뱅킹’ 개척ㆍ활성화 추구가 바람직해 보인다. 아울러 정책금융의 주역으로 차세대 성장산업 발굴과 지원에 전력하고 이를 위한 정책금융 관련 연구조사 기능 활성화도 필요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기업구조조정 업무는 시장으로 보내고 정책금융의 콘트롤 타워가 되어 방향설정과 실효성 제고방안 모색 등 브레인 역할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한편 수은은 향후 중소기업들이 해외진출을 도와주는 데서 새로운 역할을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책금융기관 개혁을 위해 조직의 정체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고 구체적인 목표 제시도 필요한데, 이는 물론 정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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