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8

(스크랩) 계속할 수 있을까 - 중국인 상대 관광가이드 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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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광통역안내사이다. 언어는 중국어이다. 충분한 계획 없이 10년 다닌 회사를 사직할 때, 그래도 기대고 있던 자격증이 1999년에 취득한 이 통역안내사 자격증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꽤 하는 중국어, 10년의 교육회사 수석팀장의 경력으로 재취업도 가능하리라 생각했으나, 두 달여의 구직활동 결과, 한국 사회에서 마흔 다섯의 재취업은 불가능하단 걸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16년 된 자격증을 들고 여행사를 찾았고, 관광가이드가 될 수 있었다. 정확히는 견습가이드이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견습가이드의 눈으로 본 가이드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진 출처: 헤럴드경제)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 중인 대만과 중국의 인바운드 관광(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 가이드의 80~90%는 화교와 조선족이다. 한국인 가이드의 비중은 현저히 낮다. 이들 화교, 조선족 가이드들은 대부분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이 없는 소위, 무자격 가이드들이다. 최근 언론에서는 무자격 가이드들의 부정확한 혹은 중화주의에 편향된 한국역사, 사회문화에 대한 지식과 편견들로 인해 중국 관광객들이 한국에 대해 그릇된 인상을 갖게 된다며 자격관리 강화 등을 대책으로 내놓는 가이드 관련 보도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저간의 여행업계 분위기에 힘입어, 나이도 많고 경험도 없지만 나는 여행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입사’가 아니었다. 입사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는 연락도 받았으나, 내가 받은 건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담당자의 명함 한 장이 전부였다. 가이드는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등과 마찬가지로 근로자가 아니었다. 따라서 가이드에겐 급여란 게 없고, 퇴직금이란 게 없다. 퇴직금은커녕 ‘퇴직’조차도 없다. 여행사 담당자의 단체여행 배정 전화가 오면 ‘입사’이고, 그게 없으면 ‘퇴직’인 것이다.

여행사마다 차이는 있으나 가이드의 수입은 ‘쇼핑수수료’가 유일하다. 4박5일의 일정 중 4일째는 대개 쇼핑이다. 서울 서대문구의 연희동, 연남동, 종로구의 부암동 일대에는 인삼매장, 화장품매장, 간기능식품매장(이것이 한국특산품인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자수정 보석상, 김, 김치, 잡화를 파는 외국인 전용매장 등이 즐비하다. 관광객들이 지불한 물건 값의 5~8%가 가이드의 수입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조건이라면 업계에선 좋은 여행사에 속한다.

이에 못 미치는 보통 수준의 여행사에는 월급이 없는 대신, 벌금이 있다. 쇼핑이 관광객 1인당 기준금액에 못 미칠 경우, 그 차액의 절반을 가이드가 페널티로 내야 한다. 여행사도 나름의 사정은 있다. 한국의 인바운드 여행사는 관광객을 모으는 중국 현지 여행사에다 실제 경비에도 한참이나(30만원 정도/인) 모자라는 금액으로 덤핑 여행상품을 팔고, 이 손실금은 쇼핑에서 만회하고, 이익도 남기는 구조이다. 그러니 쇼핑실적이 나쁠 경우, 그 손실금을 가이드의 책임으로 전가하려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다. 덤핑 여행상품이 근절되지 않는 이상 이 “싼 게 비지떡 체험관광”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 이 보통 수준에도 못 미치는 나쁜 여행사는 여기에다 여행객들을 인솔하며 발생하는 식대, 숙박료, 입장권료 등의 실제 경비조차 전액 미리 주지 않는다. 예상 경비의 70%만 전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30%는 가이드가 자비로 선지출하고 추후에 회사로 와서 후정산 받으라는 것이다. 여행객 수가 25명 정도인 단체의 경우, 이 30%의 금액은 150만원 정도가 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가이드들이 게을러 경비정산을 무작정 미룬다는 것이 여행사의 항변이다.

가이드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이뿐이 아니다. 관광버스 기사에게 주는 경비와 일비가 있다. 경비는 주차비, 통행료 등으로 실비정산 항목이지만, 일비는 기사의 수고비로 가이드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대략 하루 2만 원 정도인데, 5일 일정이면 10만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회사 소속으로 급여가 나오는 회사버스 기사에게 가이드가 왜 이 일비를 줘야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관례라 한다. 그리고 기사에게 대접하는 일과 중의 커피나 음료수, 일과 후의 식사나 술값도 모두 가이드의 몫이다.

여기에 가이드 방으로 제공되는 방은 하나뿐이라 여성 가이드들은 버스기사와의 혼숙도 각오해야 한다. 이런 배정자체가 여행사의 여성가이드들에 대한 성희롱 행위로 규정되어 있으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게 싫은 여성가이드는 자비로 방을 하나 빌리는 수밖에 없다.

가이드의 수입이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이런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일하고 있을까? 베테랑 가이드의 경우 4박5일 한 단체를 받으면,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200만원 정도를 번다고 한다. 지난 5월처럼 성수기에는 낮에 한 단체를 공항에서 보내고, 밤에 새로운 단체를 그 자리에서 받는(이를, 이들의 표현으로는 ‘치고 받기’라 부른다.) 경우가 계속되어 집에 들어가지 못한 날이 20일씩 계속 되면, 피로는 극에 달하지만, 한 달 수입은 많게는 1천만 원에 달하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이는 베테랑의 경우이고, 호객행위에 서툴거나 쇼핑 실적이 좋지 않아 여행단체 배정 자체가 적은 가이드들은 월수입이 1백만 원 내외의 그치는 경우도 많고, 벌금 몇 번 물다 이 바닥을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가이드들은 쇼핑에 목숨을 건다. 대만 관광객 대상의 여행상품은 그래도 상식범위 내의 쇼핑이나, 대륙 관광객 대상 여행상품의 ‘쇼핑포함’은 정상적인 도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4박5일 일정 중 이틀에 걸쳐 5곳의 면세점을 포함, 총 9곳의 매장을 방문했다. 이곳들은 필수 방문코스로, 이미 매장과 여행사간에 약정이 되어 있어, 가이드로서는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다. 안가거나 못가면 가이드는 회사에 적잖은 페널티를 물어야 한다. 여행사는 대륙 손님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매장에서만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서 손님들의 개별 자유쇼핑을 최대한 제한하고자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숙소를 최대한 ‘외딴 방’으로 잡는 것이다. 내가 함께 한 중국 허베이성(河北省)에서 온 여행단체의 숙소는 ‘임진각’ 부근이었다. 밭고랑 사이에 날림으로 지은 이 호텔 라운지의 벽과 바닥 장식은 시멘트 몰타르 마감이 전부였다. 그 라운지 끝에 있는 프론트 데스크 너머에선 부부가 개를 키우며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편의시설이라고는 그 호텔에서 운영하는 매점 하나뿐이었고, 간간히 다니는 군용차량과 군인들 외엔 인적도 드물었다. 다음 날, 아직 날도 어둑한 새벽, 자기 집에서 1천㎞도 더 떨어진 남의 밭고랑을 뒷짐 진 채 돌아보고 있는 초로의 관광객을 보고 있자 하니 죄책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었다. “누가 이런 싸구려 여행상품을 사라고 했나, 싼 게 비지떡이란 거 하나는 확실히 배우고 가겠지!”

다시 말하지만 나는 견습가이드이다. 약 석 달에 걸친 열 번의 견습기간 동안에는 무급이다. 관광경찰의 검문이 있거나, 경복궁 등 가이드증을 확인하는 매표소에는 내가 가이드라고 말하고 표를 사고, 단체를 인솔한다. 회사는 견습하는 동안 손님들의 질문에 절대 대답하지 말고, 투명인간처럼 지내라고 지시하였다. 화교, 조선족 가이드들과 다른 대답을 할 것을 우려해서다. 그래도 눈치껏 손님의 짐도 싣고 내리고, 식당예약, 식사서빙, 호텔 예약확인, 인원체크 등등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다시 처음에 언급한 한국인 가이드가 10~20% 뿐인 이유를 생각해 보자. 자격증 있는 한국인이 현업에서 일하기를 꺼리는 이유는 분명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과 대륙, 혹은 대만과의 역사, 문화, 경제, 생활양식, 사고방식 등등을 비교 설명하며, 재미있고 즐겁게 여행 스케줄을 소화시킬 만큼 중국어와 교양을 갖춘 구직자라면, 가이드 보다 안정적이고, 좋은 처우의 일자리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계속할 수 있을까? 견습일 수도, 보기에 따라서는 자격증 대여일 수도 있는, 이 무급의 견습 가이드 일조차 메르스 사태로 6월 중순부터는 올 스톱이다. 8월까지의 대만, 대륙 예약이 모두 취소되었다고 한다. 그저께는 아내의, 생활비가 거의 바닥났다는 말에, 주택담보대출을 한도 끝까지 추가 신청하였다. 재직증명서는 뗄 수 없었지만, 은행은 다른 몇 가지의 서류를 요구하는 것으로 갈음해 주었다.

얼마 전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었다. 하찮은 삶을, 그래도 계속해 보겠다는 주인공, 소라의 처연한 목소리를 흉내 내어, 나 또한 ‘계속해보겠습니다’ 뇌까려 보지만, 과연 계속할 수 있을지, 솔직히 두렵다.

▶ 출처: http://m.blog.naver.com/idy/22066721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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