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는 지난 6월 1일 대법관을 포함한 전국의 연방 판사 881명을 뽑는 직선제 투표가 실시되었으며, 2027년에는 추가로 1,880명의 판사가 선출될 예정이다. 이번 투표의 일환으로 치러진 대법관 선거에서는 최다 득표로 대법원장에 지명된 원주민 출신 우고 아길라르를 포함하여 9명이 선출됐다. 또, 신설된 사법징계재판소 외에도 연방 사법부 선거재판소 고등법원, 연방 사법부 선거재판소 지방법원, 연방순회법원, 지방법원 판사가 각각 선출됐다.
오브라도르(AMLO) 전 대통령은 본인이 추진한 개혁안이 사법부에 의해 잇달아 무효화되자 야권 및 법조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퇴임 직전 판사 직선제를 포함하여 사법부 개혁을 위한 법적 근거로 개헌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국민 다수 역시 사법부를 ‘부패하고 폐쇄적인 엘리트 권력’으로 인식하였으며, 이는 사법 개혁의 사회적 명분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당시 통과된 주요 개헌 내용은 △판사 직선제, △대법관 수 축소 및 임기 단축, △사법징계재판소 신설, △법관 임기 제한 및 자격 요건 명시, △익명 판사제(faceless judges) 도입, △법관의 기존 복리후생 및 급여 축소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 사법개혁 내용과 선거 결과, 그리고 각계의 반응을 정리한 보고서(『멕시코 사법부 개혁 내용과 판사 직선제 결과에 대한 평가 및 시사점』)을 발간했다. 본 블로그에서는 "평가 및 시사점" 부분을 소개하고 보고서 전문을 볼 수 있는 링크를 하단에 공유한다.
평가 부분에서도 나타났듯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이 하는 일을 가로막는다는 등의 논리 하나만으로 분풀이하듯 추진한 제도 변화가 과연 어떤 결과를 나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평가 및 시사점》
■ 여권에서는 개헌 이후 8개월 만에 실시된 멕시코의 최초 판사 직선제를 성공적으로 평가함.
- 여권 및 사법 개혁 찬성 측은 기존 사법부의 부패, 연고주의, 불투명성 해소를 위한 대안이자 합법적 절차를 거친 국민의 선택이며, 일반 변호사들에게 사법부 진입 기회를 넓혀준 조치로 평가함.
- 헤라르도 페르난데스 상원의장은 저조한 투표율보다는, 국민이 직접 법관을 선택할 기회를 가진 데 의의 를 두어야 한다고 평가함.
■ 미주기구(OAS)는 6월 6일 예비 보고서를 발표하여 낮은 투표율, 부정선거 가능성, 선거를 둘러싼 심각한 양극화 등을 지적함.
- 13.02%라는 저조한 투표율을 보인 가운데 무효표와 백지투표 수도 20%를 상회함.
- 사법징계재판소 법관 투표율 12.99%, 연방 사법부 선거재판소 고등법원 법관 투표율 12.98%, 연방사법부 선거재판소 지방법원 투표율 10.14%, 연방순회법원 법관 투표율 12.93%, 지방법원 법관 투표율 12.94% 등 저조한 투표율을 기록함.
- 셰인바움 대통령은 야당의 낮은 투표율 관련 비판에 대해 ‘참여 유권자 수가 2024년 총선에서 야당이 얻은 득표수보다 많았다’고 강조하였으나, 야당 전체 득표수는 약 2,150만 표로 사법부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 수인 약 1,300만 명을 상회한다는 점에서 이견이 존재함.
- OAS는 행정부 및 여권 추천 후보인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성된 투표 안내서 및 참고지(cheat sheets) 사용 등으로 선거의 공정성이 의심되고, 단기에 준비된 선거절차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평가함.
- 또한 한 국가의 사법부 전체가 보통 선거로 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이러한 모델을 역내 다른 국가들이 도입하는 것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밝힘.
- 셰인바움 대통령은 OAS의 사법부 선거 관련 언급에 대해 OAS는 국가 주권에 대해 언급할 수 없으며, 멕시코는 주권적으로 사법 제도를 결정한 것이라고 강조함.
■ OAS 등을 포함하여 개혁을 반대했던 측은 사법부의 정치화와 독립성 훼손 가능성에 대해 우려함.
- 여당 Morena와 관계가 깊은 인사들이 대거 선출되면서 사법부의 독립성과 삼권분립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됨.
- 당선이 확정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9인 대부분이 행정부 및 여당이 장악한 입법부에서 추천 또는 후원하는 후보들로 나타남.
- 하원을 범여권이 차지하고 있는 강력한 여당 체제에서 여당과 유착된 판사들로 사법부가 구성되면 삼권분립의 기능이 무력화될 수 있음을 우려하여 기존 판사들이 개헌에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실패함.
■ 멕시코 중앙은행, 국제신용평가사, 국내 경제계 등은 투자 안정성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우려를 표명함.
- 투자자들의 권리를 보호할 법적 틀이 흔들리고 국가 상황을 둘러싼 불확실성까지 높아져 투자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음.
- Moody’s는 2024년 11월, 사법부 개혁으로 인한 제도적 불확실성과 리스크 증대를 이유로 멕시코의 국가 신용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하향 조정하였으며, 사법부 개혁이 사법부의 견제와 균형을 약화시키고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함.
- 멕시코 중앙은행은 법률 제도 변화가 민간 투자 심리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경고하였으며, 투자 유치와 경제성장률에 대한 시장의 신뢰 역시 일부 약화됨.
- 재계는 사법부의 정치화, 부패 조장, 견제와 균형 훼손을 우려하고 있으며, 미국과 캐나다 정부 역시 USMCA에 대한 영향, 특히 국경 간 투자 안정성 저하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음.
- 특히 2026년 USMCA 재검토를 앞두고 사법 개혁에 따른 법치주의 훼손 우려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으며, 이는 멕시코를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이 낮은 경제 파트너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음.
- 사법부의 독립성 약화 가능성은 외국인 투자자 보호의 법적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분쟁 해결 절차에 대한 신뢰를 저해함에 따라, 향후 USMCA 협상 과정에서 투자에 대한 사실상의 비관세장벽으로 인식될 소지가 있음.
■ 조직범죄단체(카르텔)의 선거 개입 및 사법부 침투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음.
- 멕시코의 정치권, 특히 지방선거를 통한 제도는 범죄단체와의 유착으로 얼룩져 있어 선거 과정에서의 폭력 및 살인과 선거 이후 반대 정치인에 대한 테러가 일상화되어 있음.
- 정치권-범죄단체 유착을 단죄할 수 있는 사법부가 오염될 경우 치안 악화가 예상되는바, 조직범죄단체와의 유착을 의심받는 법조인의 판사 선거 출마에 대한 우려 여론도 있었음.
- 과거 불법 마약 밀매 조직인 시날로아 카르텔 수장인 호아킨 구스만(엘 차포)을 변호한 이력이 있는 실비아 델가도(Silvia Delgado)가 치와와주 판사로 당선되는 등 사법부와 조직범죄단체 간 유착 가능성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됨.
※ 보고서 원문 보기 🔗 멕시코 사법부 개혁 내용과 판사 직선제 결과에 대한 평가 및 시사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