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상대로라면 올해 세입액은 최소 296조 원 정도에 그친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세입이 미달하면 정부는 예산 지출을 계획대로 할 수 없게 되고 경제에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세출조정이 필요 없다고 밝히고 있다. 매년 실제 예정된 예산 지출 가운데 실제 집해되지 않는 규모가 작년 기준으로 6조 원 가까이 되는데, 올해의 경우 최대한 이 불용액을 발생시키지 않도록 미리 챙겨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불용액이 조금 발생하더라도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우선 올해 예상 세입액 296조 원은 작년 실적인 282조 원에 비하면 약 5%나 많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이유는 올해 세입 예산이 작년보다 7.5%나 높게 설정됐기 때문이다. 실질 경제성장률 예상이 2%대 초반이었고 물가상승률도 낮았는데 세입 증가 목표는 처음부터 높게 책정됐던 것이다.
또한 세입이 목표에 미달하더라도 정부로서는 공기업이나 기금 등을 통해 여전히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는 있다. 따라서 필자가 보기에 미국에서 발생했던 이른바 재정절벽 -- 재정지출이 갑자기 뚝 끊기는 --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또한 한국의 재정 규율은 대체로 엄격함이 유지되고 있고 이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상태다. 따라서 매년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는다면 올해 세수 부족 사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세수 부족 사태, 누구 책임인가
이렇게 놓고 보면 세수 부족 시인이 언론에서 취급한 것만큼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로서는 예산 편성 능력이 의심받는 심각한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예산이야말로 국가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경제 부처로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 만큼 분명 이번 사태는 기획재정부 관계자 모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기획재정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직후 부랴부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지만 기본적으로 이는 작년 이명박 정부가 작성한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책임이 전적으로 현 정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책임 소재 여부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도덕성이다.
이번이야 같은 정당이 정권을 이어 받았기에 문제가 "예측력"에 집중되는 데 그쳤던 것이지 만일 야당이 정권을 이어받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이는 정치적 도의와 책임감 면에서 큰 문제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획재정부 실무 책임자들의 "도의적" 책임이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이와는 별도로 필자는 언론이 크게 다루지 않고 있지만 국회의 책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국회의원들은 항상 "헌법기관"이니 "국민의 대표"니 하며 온갖 특혜를 누리고 있다. 또 예산결산위원회는 사실상 막강한 규모와 중요성을 지닌 위원회다. 여당과 야당 모두 예결위에 주요 인사를 모두 참여시키고 있다. 예결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그야 말로 국정 전반에 걸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권한이 주어져 있고 실제로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올 정도로 허술하게 짜여진 예산을 국회가 통과시켰다는 점을 아무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 세수 부족 시인으로 정부가 얻은 것도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필자는 정부로서도 올해 세수 부족 사태로부터 얻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 부총리가 세수 부족을 시인한 것이 꼭 이런 이점을 의식한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정부는 일찌감치 세수 부족 사태를 시인함으로써 경제 상황에 대한 투명한 접근 자세만큼은 대내외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 지난 정부 초기인 2009년 초 금융시장 불안을 일거에 잠재운 것도 신임 재정부 장관의 대폭적인 성장률 하향조정 발표였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많은 신흥국 정부에 요구하는 것도 투명성이다. 투명성이란 통계를 사실대로 공개하는 것 이외에도 현실에 대한 당국자들의 진솔한 진단 여부도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올해 세수 부족 사태로부터 정부가 얻은 것이 또 있다. 앞으로 진행될 복지 정책 논의에서 정부가 과도한 복지 확대를 반대하는 논지를 펼 때 국민들에게 재정 부담의 중요성을 훨씬 쉽게 설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 확대는 국민들에게는 결코 마다하기 힘든 달콤한 것이다. 심지어 많은 국민들은 복지를 확대하면 결국 자신들의 세금도 늘어나야만 한다는 단순한 상식도 부인하기 일쑤다. 마치 나는 확대된 복지 혜택만 즐기면 되고 늘어나는 세금 부담은 다른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 세수 부족 사태를 통해 국민들은 이제 우리 나라의 재정 상황에 대해 어느 때보다 잘 알게 되었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사태로 구겨진 체면 만큼이나 얻은 것도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