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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개) 금융권의 "정신적 포로"가 된 미국 연준에게 필요한 것

올 가을 미국 정치권의 대립에 따른 정부 중단 사태로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그러면서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중요한 의미를 띄는 사건이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것은 바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후임자 선임이었다. 재닛 옐런 현 부의장이 선임되면서 일단락되긴 했지만 이것은 사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문제에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한 루이지 징갈레스(Luigi Zingales) 시카고대학 경영대학원 교수의 칼럼을 소개한다.

연준 의장 후보 선임을 둘러싼 올해의 논란은 한 가지 중요한 의미를 띈다. 다른 때 같으면 따분한 경제학자들이나 관심을 가질 정도로 단순한 절차였을 이 문제가 올해 대대적인 정치적 긴장을 초래했고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는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대립을 불러왔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대립과 갈등이 예비후보들의 인플레이션 정책에 대한 견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금융산업 규제에 대한 입장과 관련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승인권을 가진 미국 상원의원들 입장에서 인플레이션 정책보다 금융산업 규제가 왜 그토록 중요해진 것일까?


이런 상황이 초래된 것은 뭐니뭐니 해도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다는 점과 버냉키 의장이 그 위기 극복 과정에서 취한 일련의 정책들 때문이다. 금융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를 막고 미국 경제의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연준은 제로 금리 정책, 대대적인 자산 매입 프로그램, 은행들의 지급준비금 예치에 대한 이자 지급 등 수많은 파격적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정책은 일부 긍정적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막대한, 바람직하지 않은 부의 재분배를 초래했다. 즉 힘없는 예금자에서 은행으로, "깡통 주택" 보유자로부터 부유한 투자자들로, 그리고 연금 가입자들로부터 금융투자자들로 부가 재분배된 것이다.

지난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초고도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앙은행 지배구조 면에서 강력한 원칙으로 자리잡게 되었지만, 앞에 설명한 바람직하지 않은 부의 재분배가 벌어지게 되면서 전문가들은 이제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이 과연 절체절명의 원칙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들여다봐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됐다.

당시 브레튼우즈 고정환율 체제가 붕괴하면서 정치권에서는 중앙은행들에 대해 확장적 정책을 펼 것과 심지어 재정적자 보전도 맡아야 한다는 압력을 가했다. 그러한 정치적 압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자신의 대통령선거 유세 기간 중 아서 번즈 연준 의장에게 신용완화정책을 펴라고 압력을 가한 것을 들 수 있다.

장기적으로 그러한 정치적 압력은 결국 그 압력을 행사한 당사자들의 신뢰도에 흠결을 남기게 됐다. 그런 이유로 중앙은행들은 이후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물의 대표적 사례로는 바로 유럽중앙은행(ECB)의 통치구조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독립은 동시에 정치적 책임감의 회피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기도 했다. 일단 정치적 자유가 제공되자 중앙은행 당국자들은 자신들과 가장 유사한 세력인 금융업계 및 금융학자들에게 인정받으려는 경향을 띄게 되는 일종의 "정신적 포로(intellectual capture)"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말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중국으로부터 경쟁이 심해지면서 임금과 물가는 억제됐다. 중앙은행으로서는 "파티를 즐기려는데 밥그릇을 뺏는"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가 이제는 소비자물가 급등이 아니고 자산가격 급등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바로 그 정신적 포로 현상이 문제가 된 것이다.

지난 1996년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준 의장은 이른바 자산가격의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당시 주류 학계와 업계로부터 신랄한 비난을 받았고, 그 이후 다시는, 심지어 인터넷 버블 시기에도 그는 자산가격 버블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중앙은행 총재들로서는 금융산업이 자산가격 상승으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는 점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연준 의장이 금융산업 출신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사상적 배경은 업계의 지적 배경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 포로 문제에 덧붙여 미국의 경우에는 12개 연방준비은행의 운영 구조가 심하게 낙후돼 있다는 추가적인 문제가 있다. 

이들 연방은행들의 수장은 이사회가 선출하는데, 각 이사회는 다시 지역 업계, 특히 지역 금융산업계를 대변한다. 따라서 예컨대 뉴욕연방은행 이사회 명단을 보면 흡사 금융권 업계 인명록을 보는 듯하다. 평생 금융업계 사고체계 안에서 살고 숨쉬고 먹고 마시며 지내 온 금융산업자들로부터 이들 연준 위원들이 독립성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겠는가?

옐런 부의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지명된 만큼, 이제 이 문제가 초점이 돼야 한다. 금융업계의 압력에 맞서 이의 부작용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압력 뿐이다. 결국 금융업계의 압력과 정치권의 압력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가 압도적 위치를 차지할 경우 연준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없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정치적 독립이라는 논리 때문에 중앙은행은 (금융산업 쪽으로의) 정신적 포로 상태에 빠지게 된 만큼, 이제는 정치적 압력과 금융산업의 압력 사이에 균형을 되찾는 일이 시급해졌다.

영문 칼럼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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