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을 통해 좋은 생각을 많이 나누어주고 계신 나성섭 아시아개발은행 디렉터의 최근 글을 공유합니다. 글 말미에 이와 관련한 제 생각도 덧붙입니다.)
1. 최근 한국경제에 대한 분석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하고 있다. 경제 동력은 떨어졌는데, 이를 대처할 수 있는 임전 태세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의 성장 동력이 떨어지는 이유로는 급속한 노령화, 사회 복지 등에 대한 분배 압력, 소수 기업에의 과도의 경제 의존성 등이 대개 단골 메뉴로 도마에 오른다.
2. 개인적으로 나는 이러한 진단들이 모두 맞는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진단들은 너무 리스크만 강조한 나머지 균형적 시각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한국 경제의 맥박을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부정적 요인뿐만 아니라, 긍정적 기회 요인도 함께 보아야 하지 않을까?
3. 그렇다면 한국 경제의 기회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풍부한 양질의 노동력이다. 한국의 노동력의 질과 일에 대한 충성도는 대단하다. 과도한 교육비 부담과 취업문제 등이 큰 문제가 되고 있지만, 지구 어느 나라에 우리 젊은이들처럼 90% 이상이 대학 졸업하고 온갖 스펙 다 쌓고 있는가. 여기에 웬만하면 해외 어학 연수 갔다 와서 외국어 및 문화에 적응력이 높다. 해외에 있는 유학생 숫자도 중국 다음으로 많다 . 또 강성노조에 불만도 많지만, 일에 대한 충성도가 아직도 높아 OECD 최장 노동이 가능하다. 빠른 제품 주기와 납기를 기반으로 하는 삼성 등 한국 기업의 힘은, 밤새워 일하는 양질 인력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이다. 고용주 입장에서 이런 양질의 노동력을 키우려면,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하는 데, 한국에는 이런 인력이 공급과잉 상태다 (물론 지역별, 업종별 미스매치이 일부 산업에 심각하게 대두되곤 있지만).
둘째, “빨리 빨리”로 요약되는 신속성이다. 특히 일단 결정된 일을 일사분란하게 신속하게 집행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이는 짜장면시키면 금방 안다. 자장면을 신속 정확하게 배달 못하면, 중국집 금방 망한다. 한국처럼 여권을 인터넷 신청한지 4일 만에 발급하는 나라 별로 없다. 여기다 IMF 위기 이후 행정 전산화와 지방 분권화의 진행과 함께 사회 전반에 걸쳐 투명성, 효율성에 엄청난 개선이 있었다. 단 이러한 신속한 경영/행정 실행 능력을 경영/행정 시스템 전반의 효율성과 혼동하지 마시라. 잘못된 의사결정을 건설적으로 교정 (correction)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동쪽으로 가야 될 일을 서쪽으로 가는 경우가 왕왕 있으니까.
셋째, “하면 된다”는 진취적 도전 정신이다. 일제 강점기, 토지 개혁, 한국 전쟁과 함께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사회 경제적 수직적 계층 이동이 실현되었다. 특히 전전 세대와 베이비부머들은 계층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엄청나게 일한다. (물론 투자 대비 리턴은 전보다 훨씬 낮아졌지만). 해외를 나가보면, 어떤 오지를 가더라도, 열심히 일해 자수성가한 한국 사람이 있다 .
넷째, 문제가 많네 해도, 한국의 사회 기반시설 (도로, 항만, 공항, 통신 등)은 대단하다. 설명이 필요 없이 미국이나 영국 공항에 갔다 오면 금방 안다.
다섯째, 경제의 개방성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도에 따른 위험을 걱정한다. 그러나 크게 보았을 때, 이런 개방성은 경제에는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이다. 개방성은 역설적으로 기업들이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생존 경쟁을 하게 하여 한국경제의 체력을 강화시키고 경제가 갈리고파스 섬의 날지 못하는 가마우지 신세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긍정적 면도 많다.
4. 이러한 기회요인들의 이점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으나, 인구 변화 추세를 보았을 때 항후 10년, 즉 베이부머들이 노인인구에 편입되면서 노동인구의 감소가 가속화될 2020년대 중반까지는 이들 기회요인이 리스크 요인보다 크게 작용하지 않을 까.
5. 앞으로 10년 우리에겐 중요한 시기이다. 2만 불 국민소득을 넘어 4만 불 시대로 가기 위해선 넘어야할 고지가 많다. 크게 봐서 한국경제는 이의 개방성으로 말미암아 위험도 있지만, 좋건 싫건 치열한 글로벌 생존 경쟁을 해야 할 운명이기 떄문에 갈리코파스 섬의 가마우지가 될 위험은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양질의 노동력, 신속성, 진취성,사회 기반 시설 등의 기회요인들을 잘 아우러 활용하기 위해선 향후 10년 20년의 비전과 밑 그림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쉽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의 상황은 자동차, 도로, 운전자는 좋은 데, 내비게이터가 시원치 않은 상황이다.
6. 과거에는 내비게이터 역활을 정부가 하였는데, 민간, 정치권, 시민단체 등의 영향력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의 역활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부만 해바라기 처럼 바라봐야 뾰쪽한 답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민간과 정치권은 그의 영향력이 크게 증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이들은 정부의 역할을 분담할 새로운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민관정의 협조없이는 내비게이터를 만들수도 만들어봐야 작동되지도 않는다. 문제는 이들 민관정 3대 주체를 포용하여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합리적 의사 조정 결정 메카니즘이 미비하고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국회의 기능이 강화되면서 국회 주도 경제정책의 발의가 활성화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균형성과 전문성에 대한 의문이 많다. 정부와 정치권간에 체크와 밸런스는 상실되어 요즘은 국회의원들이 고위 공직자에게 직접 정책적 지시를 내리는 상황이 되었다. 민간기업은 자기 앞길만 생각할 뿐,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 하고 있다. 요즘 경제정책의 리더쉽을 강화하기 위해 대통령 재선제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으나 바른 방향인지 의문이 든다. 민관정이 내비게이터 역활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현재의 의사결정 조정 메카니즘을 정비하는 것이 요망된다.
= = = 아래는 제 생각입니다 = = =
며칠 전 나는 한국은행에서 실시하는 초 ㆍ중등학교 교사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보도를 오래 해 온 외신기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강연을 했다. 강연 내용은 자연스럽게 "한국 경제의 과제"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강연을 정리하며 나는 한국 경제의 강점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편치 않은 느낌을 갖게 됐다.
이런 저런 장점을 설명하는 내 목소리도 자신이 적었고 듣는 분들도 크게 감명을 받는 표정이 아니었다. 강연 이후 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턴가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비판이나 심지어 비하에 열중하는 한편 과거에 대한 업적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마치 어떤 옳지 못한 의도를 갖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받곤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이런 현상에 대해 교육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의 장점을 올바로 파악해 정리한 다음 이를 대중 앞에 설명하는 교육을 소흘히 하는 것 같다. 겸손이라는 전통적인 덕목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올바로 파악하는 연습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통 "비판"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비판과 비하는 다르다.
아주 오래 전 외국에 있는 동료 기자들과 함께 단기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모두 초면인지라 강사는 짧은 시간 안에 옆사람을 인터뷰한 다음 그 사람의 강점을 중심으로 발표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결국 본인이 본인의 강점을 잘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내 강점을 상대에게 설명하는데 주저한 나와는 달리 자신의 강점을 내게 열심히, 장황하게 설명하는 외국인을 보며 놀라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자신의 장점도 한 번 꼼꼼히 생각하고 정리해보지 않은 사람이 남을 비판할 때 그 사람의 장점을 먼저 파악하는 데 얼마나 노력을 기울일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