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사견임)
사생활에 있어 선입견은 거짓으로 판명될 경우 이를 시정하면 그만일 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많은 직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선입견을 배격하고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실을 확인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사실을 보도하는 기자는 그런 직업 가운데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마치 아침이면 해가 뜬다는 말 만큼이나 당연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성장률이 4%에 육박하는데 경제가 어렵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그것은 경제지표가 체감경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럼 체감경기는 무엇인지 재차 물으면 "주변 사람 중에 경기가 나아졌다는 사람 못봤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성장률이 높아져도 예컨대 가계소득이 그만큼 늘지 않으면 사람들은 경제성장을 피부로 느끼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특정 "주변 사람들"은 과연 언제쯤 경기가 나아졌다고 말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몇년간 경제 얘기가 나오면 단골메뉴로 따라오는 것이 내수침체라는 표현이다.
부동산투기 열풍이 불던 10여 년 전 많은 사람들이 빚을 내서 주택 구매에 나섰고 이후 주택가격이 급락하면서 빚만 떠안은 사람이 많고 이 때문에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민간소비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를 잇는다. 그런데 이 또한 다분히 선입견이 개입된 표현이다. 주택가격은 급락하지 않았으며 민간소비는 침체에 빠져 있지 않다.
주택가격은 일부 급등 지역을 제외하고 횡보 추세에 있으며 민간소비는 부진하기는 하지만 "침체"에 빠져 있지 않다. 내수는 민간소비, 건설투자, 설비투자 등을 지칭한다. 그런데 장기 추세로 보면 민간소비도 저조하지만 더욱 부진한 것은 건설투자다. 더우기 기업들이 투자를 안한다고 하지만 설비투자는 장기추세로 보면 "침체"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한편 민간소비, 그 중 가계소비가 부진한 이유를 말할 때 가계부채 문제를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높은 가계부채가 소비 여력을 제한하는 큰 요인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상승률만 놓고 보면 세금과 연금 등 비소비지출이 최근 20여 년 동안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것이 가처분소득을 제약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한편,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을 설명하는 가운데 높은 통신비와 사교육비 때문에 등허리가 휜다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통신비는 분명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사교육비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 두 항목은 엄연히 소비지출에 속한다. 즉 소비활동의 일환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사교육비와 통신비 때문에 소비 여력이 없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 스스로 소득 가운데 통신비와 사교육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면 그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이 만족스럽다거나 민간소비가 활발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계부채 문제가 소비를 제약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문맥이나 경제지표의 흐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그저 "습관적으로" 어떤 문구를 삽입한다든지 하는 관행이 언론에서만큼은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아래 그림을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음)
(가계소득과 비소비지출액을 1990년 각각 100으로 놓고 이후 변화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1997-1998 외환위기 이후 그 격차는 벌어졌으며 더구나 2004년 경부터 개선 속도도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다.) |
(GDP와 민간소비, 건설투자, 설비투자 액수를 1983년 각각 100으로 놓고 이후 변화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민간소비와 건설투자 모두 GDP 증가 속도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더구나 건설투자의 부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