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책은 "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입니다. 이 책을 소개하게 된 이유는 제가 가진 경제에 대한 철학을 여러분과 공유하는데, 이 책이 꽤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간단하게 제 생각을 밝혀보겠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경제성장이 '잠재성장률 수준'을 밑도는 이른바 저성장의 구간에는 케인지안의 입장을 지지합니다. 케인지안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경제가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 불황에 처할 때에는, 특히 경제전반에 과잉설비가 넘치는 반면 수요가 충분하지 않아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의 상황에는 정부가 적극 개입하여 경제를 정상궤도로 돌려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케인즈는 대공황 당시 아래와 같이 재치있는 경구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정부가 낡은 가방에 돈을 가득 담아 쓰레기로 가득 찬 폐광 여러 곳에 깊이 파묻은 다음 자유방임 원칙에 따라 기업들이 이것을 마음대로 퍼가도록 놔둔다고 하자. 기업들은 돈을 파 가기 위해 앞다퉈 사람들을 고용할 것이고, 이에 힘입어 실업은 사라질 것이며, 사회 전체의 실질 소득과 부 역시 이전보다 훨씬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돈을 파묻고 파가라고 하는 것보다 (정부가) 주택 같은 것을 건설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주택 같은 것을 건설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앞에서처럼 뭔가 하는 것이 낫다. 물론 이상과 같은 케인즈의 주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습니다. 하나는 도덕적인 것이죠.
돈을 어떻게 그런데 쓰냐는 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면의 비판은 청산주의자로부터 시작됩니다. 경제가 이 모양 이꼴이 된 것은 경제 내에 버블이 존재했기 때문이며, 이 버블을 깨끗하게 씻어내기 위해서는 가혹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거죠..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지금도 무척 많습니다. 예전에 도덕적인 비판을 하는 분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그분을 위한 변명 2009년 경제위기와 4ㄷ강 이야기")한 바 있으니, 오늘은 청산주의자의 주장에 대해 이야기흘 해보겠습니다.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청산주의자의 주장에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습니다.
청산주의의 첫 번째 문제는 디플레이션의 위험을 과소 평가하는 데 있습니다. 1990년 이후의 일본 경제 상황만 봐도,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 수준을 거의 15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소 13차례의 재정정책, 그리고 거의 15년째 지속되는 제로금리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는 요지부동입니다.
결국 한번 디플레이션 기대가 형성되면, 이걸 깨뜨리기 어려운 데다.. 더 나아가 실질금리(명목금리소비자물가상승률)가 높은 수준에 도달하더라도.. 이걸 내릴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디플레이션을 통해 '경제의 과잉'을 청산한다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다시 경제를 '정상적' 국면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기가 힘들다는 문제가 부각됩니다. 결국, 이 과정에서 경제는 끊임없이 후퇴되며 '버블의 청산'을 넘어서 경제의 활력을 질식시켜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높습니다.
청산주의의 두 번째 문제는 잘못된 징벌이라는 겁니다. 즉, 버블을 일으킨 사람들은 부유층, 그리고 남들보다 정보가 빠른 권력층인데.. 버블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이와 상관없는 저소득층의 사람들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30년대 대공황 당시의 미국 농민들입니다.
청산주의자들은 신용이 지나치게 풀렸고 은행들이 전국에 필요이상으로 넘쳐났으므로, 시스템이 위축되도록 내버려 두는 게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것은 농민들이었습니다. 일단 은행시스템의 붕괴로 인해 농장/주택을 짓기 위해 빌린 대출의 회수가 시작된 데다, 디플레이션으로 농산물 가격까지 급락해.. 하루 하루의 끼니도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었기 때문이죠. 농민들이 농장을 건설하고 농산물을 생산한게 '방종'한 짓이었을까요?
특히나 불황에 막 학교를 졸업한 사회의 초년생들은? 그들은 이제 막 사회에 나왔기에 '과잉'과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실업자의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걸까요?
이상과 같은 이유로 현대 거시경제학계에서 '청산이론'은 일종의 사이비 과학 취급을 받습니다. 물론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정적으로'만 보면 꽤나 괜찮은 해결책으로 볼 수 있으며.. 또 부유층들의 입장에서는 '벼락부자'를 손봐주고 싶다는 충동을 가질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런류의 주장은 상당한 지지를 받는게 현실입니다.
★★★
따라서 저는 불황에는(정확하게는 마이너스의 GDP Gap이 존재하는 시기에는) 케인지언으로 자부합니다. 그러나, 경제가 호황을 누릴 때에는 저는 매우 청산주의자처럼 생각하고 또 행동합니다. 2000년 정보통신 거품 국면, 그리고 2008년 글로벌 부동산 버블 국면이 대표적인 시기이겠죠?
특히 2008년에는 모 은행의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었는데, 당시 방송에 출연해 금리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하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부동산 시장에 버블의 징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하루 빨리 꺼뜨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제에 버블이 존재하면 왜 나쁜가?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버블은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금융기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혀 경제전반에 많은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의 149 페이지 부분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민스키는 불안정성을 가속화하는 금융 구조를 3가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는 헤지금융으로, 기업이나 개인이 현금수익으로 모은 현금지급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돈을 잘 굴려서 현금지급 의무액보다 얻어진 수익이 많으면 그 만큼 돈을 버는 셈이다(정상적인 경제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두 번째는 투기금융으로, 헤지금융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개념이다. 기업이나 개인이 현금수익으로 원금을 상환할 수는 없지만 빌린 자금, 즉 부채에 대한 이자를 지급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구입한 자산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노리는 투자를 의미한다(2000년대 중반 한국의 부동산 붐이 여기에 해당했겠죠?).
세 번째는 폰지금융으로, 투기금융과 마찬가지로 장래의 수익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기업이나 개인이 현금수익으로 원금이나 이자를 지급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한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장래의 수익이 대폭 커지지 않으면 기업이나 개인으로 그대로 파산해 버리든가, 도중에 계약을 지킬 수 없게 되고 만다.이상의 간명한 설명에서 보듯, 투기금융 혹은 폰지금융이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우세해질 때에는 버블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버블은 왜 오래 지속되지 않는가? 그 이유를 아래의 '그림'을 통해 설명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기업의 최고 경영자라면 주가수익배율(PER)이 4배에 불과한 기업을 주식시장에 공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주식의 수익률(주당순이익/주가×100)은 25%인 반면, 은행 대출금리는 월등히 낮아 대출 받아 자금을 조달하는 게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주가가 높아질수록 주식공급은 증가합니다. 왜냐하면 주가가 오를 수록 시장 대출금리보다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처럼 어떤 회사의 주가가 PER100배에 거래되고 시중의 회사채 금리가 6% 수준이라면, 이 회사는 무한정 주식을 발행(=증자)하려 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기업주식의 기대수익률은 1%(=주당순이익/주가×100=1%)에 불과하니, 이 돈을 이용해 채권에 투자하는 게 매우 합리적인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1999년을 전후한 정보통신 붐 당시 일부 기업들이 증자로 유입된 돈을 빌딩매입에 투자했던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버블은 오래 유지될 수 없으며, 버블이 무너진 다음에는 급격한 폭락이 찾아올 수 밖에 없죠.
결국 자산가격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면, 연쇄적인 위기가 발생하게 됩니다. 2008년 베어스턴스와 리만브라더스에서 시작된 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했던 것처럼, 금융시스템이 한순간에 붕괴되는 위험에 처하게 되죠. 그리고 이런 위험을 이겨내기 위해서 정부는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고, 이는 결과적으로 후대에 많은 부담을 지우게 됩니다.
따라서 버블의 징후가 보일 때에는 강력한 긴축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버블을 청산'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단 버블이 청소되는 과정에서 경제가 얼어붙으면, 이때에는 강력한 경기부양정책(=케인즈주의 처방)이 시행되어 버블 청산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덜어주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
이런 연유로 인해, 저는 '두 개의 팔을 가진 경제학자'로 살아가려 합니다. ㅎ 누군가 저에게 '케인지안인가요?'라고 물으면, 저는 불황에는 단호하게 "예'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특히 자산시장에 버블의 징후가 있을 때에는 저는 '긴축정책이 필요한 시기이며, 버블을 꺼뜨리는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라며 청산주의적으로 보이는 입장을 취할 겁니다. 이런 밸런스를 가지는 것은 물론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1993년 이후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며 1997년 외환위기와 2000년 정보통신 거품, 그리고 2002년의 카드버블과 2008년의 서브프라임 위기. 더 나아가 2015년의 중국 증시 폭락사태를 보면서.. 어떤 한쪽 편향의 외곬수의 생각으로는 경제를 제대로 분석할 수 없고, 또 무능력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보다 균형적인 시각을 갖는데, 오늘 소개하는 책("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이 꽤 도움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일본 사람이 쓴 책 답게 정리는 뛰어나나.. 대신 인상적인 부분은 많지 않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약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꽤 괜찮은 책이라 생각되어 추천하는 바입니다. 즐거운 독서, 행복한 인생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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