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저는 한국 경제의 약인가 독인가?
우리나라의 수출이 7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7월 수출은 466억 달러로 작년 동월 대비 3.3%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되었다. 7월까지 총수출은 3,153억 달러 전년 동기 대비 약 5% 감소하였다. 중견 무역국가로서 경제성장을 수출에 크게 의지해 온 우리나라로서는 수출 감소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 수출부진 요인 중 엔저를 보는 시각은 다양
2015년 들어 우리나라의 수출이 부진한 이유로 엔저도 빠지지 않고 거론되고 있다. 2012년 12월 아베내각 출범이후 일본 정부는 양적 완화와 금융정책 완화로 시장에 많은 양의 화폐를 공급하여 현재까지 엔저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2013년 초 달러당 88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5개월 만에 100엔을 돌파하더니 급기야 작년 말에는 120엔을 기록했고, 최근에는 달러당 125엔 전후에 있다. 약 2년 반동안 약 40% 이상 꾸준히 평가절하된 것이다. 원/엔 환율도 같은 기간 1,206원에서 2015년 6월 885원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다소 상승해 엔당 970원대에 있다. 원/엔 환율도 같은 기간 20% 이상 오른 것이다.
이러한 엔저를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우선 엔화가치가 떨어지면 그 만큼 일본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올라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일본의 수출품이 우리나라의 수출품과 많이 겹치기 때문에 엔저는 우리나라의 수출에 악영향을 준다고 본다. 그러나 일본으로부터 들어오는 중간부품과 소재를 생각하면 엔저가 전적으로 우리 수출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일본으로부터 수입은 상당부분 최종 수출품을 만들기 위한 중간부품 및 소재이기 때문에 이를 수입 가공하여 수출하는 경우 엔저는 오히려 생산비를 낮추어 우리 제품의 수출가격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엔저효과는 상품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고 그 순효과는 수출입 모두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 과거 플라자 합의는 일본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
이러한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이 일본경제에 미친 효과는 상당했다. 엔고현상으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였고, 내수부양과 수출경쟁력 향상을 위해 일본정부가 시행한 저금리정책이 부동산 투기로 이어져 거품경제가 양산되고, 이후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금리를 인상하자 부동산가격이 급락하고 이를 담보로 했던 기업과 은행이 무더기로 도산하면서 디플레이션과 함께 소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다.
▣ 그러나 이번 엔저의 경우 아직은 그 부정적 영향이 제한적
지난 2년 반 동안의 엔저 영향을 살펴보기 위하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와 일본간 수출경합도(ESI: Export Similarity Index)가 높은 상품의 수출추이를 분석해 보았다. 우리나라와 일본간 수출경합도는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석유제품과 선박, 수송기계 등에서 일본과의 수출경합이 치열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최근 들어서는 비전기기계류, 금속, 화학제품 등에서도 일본과의 경합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의 경합도가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한일, 양국의 수출추이를 보면 양국 모두의 수출이 감소하는 가운데 최근 들어 일본의 수출 감소폭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수출경합도가 가장 높은 석유제품의 경우 우리나라는 수출은 2013년부터 감소하여 2014년엔 전년대비 3.8% 감소하였다. 그리고 2015년 1/4분기에는 감소율이 40%대로 확대되었다. 일본의 상황도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 2012년 40%대 수출 감소에서 2013년 반짝 수출이 증가하더니 2014년에는 다시 수출이 15%이상 감소했다. 한일 양국 모두 엔저보다는 국제유가의 하락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된다.
그러나 우려되던 자동차를 포함하는 수송기계는 예상대로 일본보다 우리나라의 수출 감소폭이 컸다. 우리나라의 수송기계 수출은 2015년 들어 감소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8% 가까운 감소를 보이고 있다. 반면 일본은 2013년부터 수출이 감소해 왔으며, 최근에는 감소폭이 줄어 5% 안팎의 감소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이러한 수출 감소 효과를 전적으로 엔저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엔저 보다는 우리 자동차 주요 시장인 신흥국(러시아, 중동, 중남미 등)에서의 경기 침체에 따른 수입 물량 축소(물량기준 21%)가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섬유류 역시 중국의 수요 감소와 원료가격의 하락 등의 영향이 엔저보다 더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수출은 2015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15년 1~5월 수출 감소율은 약 5.7%임에 비해 같은 기간 일본의 수출 감소율은 7.8%로 우리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벡터자기회귀(VAR)모형을 통해 엔화가치가 우리나라의 경상수지와 엔/원 변동이 우리나라 주요 수출품에 주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도 앞에서의 분석결과와 큰 차이 없다. 엔화가치의 하락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상수지에 주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엔/원의 하락이 우리나라의 13대 주요 품목의 수출에 주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엔화가 원화보다 상대적으로 더 절하될 경우 13개 품목 가운데 5개 품목(반도체, 철강, 액정디바이스, 무선통신기기, 석유제품)만의 수출이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러한 분석결과들은 지금까지 엔저가 우리나라의 수출에 주는 부정적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제한적이었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 그러나 향후 엔저가 지속될 경우 적절한 대응조치가 필요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2000~2015년 1/4분기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앞으로 엔저가 계속 될 경우 엔저가 우리나라의 수출에 주는 악영향은 급작스럽게 커질 수 있다. 즉 지금까지는 기업들의 생산성 제고 및 원가절감 등을 통해서 엔저에 대응,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는 수준과 기간이었지만 앞으로 엔저가 계속된다면 기업들의 감내 한계를 벗어나 부정적 영향이 우후죽순 격으로 급격히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특히 엔저의 영향이 클 것으로 우려되는 자동차와 1차 금속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한편 엔저로 인해 일본 기업의 수익성이 좋아지고 이를 기초로 R&D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경우 일본의 생산성은 더욱 올라가고 경쟁력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우리나라도 엔저의 장기 지속성에 대비한 적절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먼저 원화를 인위적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환율조작국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마당에 원화를 조정하게 되면 미국 등 선진국들의 큰 반발을 살 수 있다.
근본적인 대응은 우리 제품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어야 하므로 정부의 대대적인 R&D 투자가 필요하다.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기업차원에서 이전과 같은 R&D 투자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반면 수출경쟁력 제고의 근본은 R&D를 통한 생산성제고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제조업 수출의 80%를 담당하는 산업단지의 경쟁력을 높이되, 무엇보다도 노후화된 산업단지의 인프라를 개선, 확충시키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기업의 적극적인 수출촉진 마케팅을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 무역협회를 중심으로 기업의 수출마케팅과 신시장개척을 도와주는 한편 기존에 체결한 FTA를 활용해 수출을 증대시키는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