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한국 직장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단어는 야근과 회식이다. 회식도 자발적으로 조직된 경우를 제외하면 직장인 입장에서는 업무의 연속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결국 야근과 다름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정시 퇴근"이라는 것은 많은 직장인들에게는 책에나 나오는 단어라는 둥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둥 하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생산직 근로자들이야 야근한 만큼 생산량이 쌓이겠지만 사무직의 경우 꼭 그렇지만도 않다. 상사가 퇴근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무언가 하고 있는데 하급 직원이 시간에 맞춰 퇴근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겉으론 먼저 들어가라고 하는 상사도 있고 회사 규칙에도 정시 퇴근을 장려하는 문구가 있어도 실제 분위기상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happy_lstarl) |
즉, 한국에서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운명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모두가 조금씩 희생해서 일하다 보면 회사는 높은 성과를 거두고 그 혜택을 직원들에게 다시 돌려줄 수 있다는 논리를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직장 상사와 하급 직원의 관계를 계약관계를 넘어 윗사람-아랫사람 관계인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도 아직 남아있다.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fox0080/) |
하지만 그런 것이 한국적인 특성과 관련돼 있다 해도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한국 임금근로자들의 평균근속기간은 7년이 채 안되며 비정규직의 경우 2년 반, 그리고 시간제 근로자들의 경우 1년 반에 그치고 있다. 이들에게 운명공동체니 희생을 통한 공동 목표 추구니 하는 말은 큰 의미가 없다. 물론 추가 근로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또 선택권이 있다면 그나마 소득이 늘어나니 어느 정도 보상은 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계약서에도 없고 선택권도 없으며 사전에 계획된 것도 아닌, 그야 말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갑자기 야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퇴근시간을 넘겨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해서 그에 비례한 만큼의 부가가치를 창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시 퇴근을 보장한다면 서둘러서 할 만한 일도 꼭 필요 없는 야근을 앞두고 있다면 천천히 해서 야근 시간에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한국의 노동생산성 개선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데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연간 근로시간이 멕시코 다음으로 높으며 평균보다 약 400시간 많다. 하지만 근로시간 1시간당 창출하는 부가가치(GDP 기준)는 멕시코 다음으로 낮은 국가에 속한다. 돌려 말하면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근로시간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노동생산성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필요하지 않고 선택권도 없는 야근은 더 많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출산율이 떨어져 국가적 문제라고 하지만 이렇게 퇴근 시간이 보장돼 있지 않은 경우 맞벌이 부부라면 유아 보육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상황이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장려하는 정책을 펴도 효과를 내기 힘들다.
그런데 퇴근시간을 넘겨 자리를 지키는 것을 좋은 근무 태도라고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부서장이 낮에 끝내야 할 일을 늦게 남아서 처리하는 동안 부하직원들도 눈치를 보느라 퇴근하지 못한다면 전체적으로 막대한 낭비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 부서장은 자신이 야근하는 동안 자리를 지키는 부하직원들을 높이 평가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 이 부서장은 능력이 부족한 것이며 자신의 능력 부족을 감추기 위해 회사 기물을 사용하고 수당 등을 통한 초과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과 함께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을 장려함으로써 야근이 회사에 더 많은 기여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원치 않는 야근을 강요하는 것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희생"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것이며, 설령 숭고하고 긴박한 목적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 희생과 봉사를 기대하고 업무 성과에 크게 반영하지 말아야 한다. 평가받기 위한 희생과 인정받는 목적의 봉사는 희생도 봉사도 아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합리적인 성과를 요구해야 한다. "우린 옛날에 이 정도 야근은 차라리 축복이었다"는 식의 말은 더 이상 무용담이어서는 안된다. 정시에 퇴근하더라도 합리적으로 설정된 성과를 달성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맞다. 아니 일찍 처리하고 조금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칭찬을 받거나 승진해야 한다.
이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얼마 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오전 7시30분 본회의를 열고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최종 의결하고 합의문에 서명했다. 서명식에 이어 김대환 위원장은 모두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노력한 것을 치하했다.
이번에 합의한 내용 가운데는 한국의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 주요 목표 중 하나로 돼 있다. 아침 7시30분부터 열리는 다분히 의례적인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수많은 직원들이 문자 그대로 밤새 일했을 것이며 수십명의 기자들도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왔을 것이다. 나는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정말 애 많이 썼구나"라는 생각보다 "왜 2시간쯤 뒤에 회의를 열면 안될까?"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것은, 강요된 것이라면, 자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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