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 글 제목을 수정함.)
(※ 유경원 상명대학교 금융경제학과 교수가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하는 주간 보고서에 기고한 글이다. 길이가 좀 길지만 전문을 소개한다. 제발 정치 및 정책 담당자들은 대상도 애매한 '국민'이나 '국가 경제'를 들먹이기 전에 금융소비자, 정책소비자를 신경 쓰기 바란다. 간단한 온라인 결제 시스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는 현재 당국에게 큰 실망을 느낀다. 웬만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들어 보면 해결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당국은 무슨 일이 생기면 각종 연구용역 발주, 위원회 구성, 회의 개최 등을 통해 시간과 돈, 그리고 에너지를 탕진하고 결국 더 복잡한 대안을 내놓기 일쑤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아래 인용한 칼럼 원래 제목은 『최근 경제·사회 이슈와 가계금융의 중요성』이다. 이 글에서도 지적하듯 당국이나 이익집단은 이런 저런 이유로 통계를 공유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정보를 공유하고 민간과 대책을 함께 모색하면 훌륭한 대책이 마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A.Deaton 교수, 가계소비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
지난 10월 12일 노벨상 위원회는 2015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프린스턴 대학의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교수를 선정하였다. 통상 노벨 경제학상이 선정된 이후 공적에 대한 간단한 기사가 소개되는 반면, 이번 디턴 교수의 공적에 대한 평가는 국내 언론매체마다 상이한 뉘앙스로 소개되어 논란이 이는 듯 보인다. 디턴 교수의 공적을 언론에서는 피케티 교수와의 대립된 시각으로 이야기하여 성장과 분배 논쟁이 다시 제기되는 듯 하다. 하지만 필자는 디턴 교수의 기여는 노벨상 위원회에서도 밝혔다시피 가계소비에 대한 실증연구가 핵심이라고 판단된다. 최근 가계부문의 경제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디턴 교수의 연구는 현재 경제·사회 이슈 및 적용 가능한 정책 수립에 있어 긴요한 가계부문 실증연구의 토대를 형성한 기여가 인정된 것이라 사료된다.
▣ 최근 경제·사회이슈와 가계금융의 대두
최근 고령화의 빠른 진전, 경제 불확실성의 증대 등 가계를 둘러싼 경제·사회 환경이 복잡해짐에 따라 가계 소득, 소비, 자산보유의 불확실성이 커져 가계의 금융지식과 이를 토대로 한 적절한 의사결정이 장·단기 가계 복지(well-being)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경제 구조가 고도화됨에 따라 가계부문의 금융 정보 및 지식의 격차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로 인해 부와 소득, 교육 등에 있어 격차가 보다 확대되어 사회통합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빈곤의 악순환과 구조화를 예방하고 ,확대되고 있는 사회갈등 요인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계부문의 금융역량(financial capability) 내지 금융이해도(financial sophistication) 강화가 긴요하다. 복잡한 금융 및 경제 환경 속에서 금융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가계부문의 재무결정과 위험관리에 특화한 연구 필요성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이러한 필요성에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는 그동안 경제이론이 지나치게 精緻化된 합리적 기대 모형을 토대로 소비자 행동을 설명하거나 재무 관련 이론들이 기업재무(corporate finance) 내지 자산가격(asset pricing) 쪽에 치우쳐 최근 잦아지고 있는 가계관련 경제위기에 대한 예측과 해결방안 제시에 있어 경제학 및 재무분야의 무력성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최근 들어 경제의 핵심 주체 중 하나인 가계의 저축, 투자, 부채, 위험관리 등 다양한 금융행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기존 경제이론이나 재무이론과 차별화된 학제간 융·복합 성격의 ‘가계금융(household finance)’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새로운 학문분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계부채발 금융위기를 경험한 선진 각국에서는 가계부문의 재무의사 결정의 사회·경제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질적인(heterogeneous) 가계의 금융 및 위험관리 행태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를 수행하여 가계부문의 합리적인 경제·금융활동에 도움을 주는 방안을 제시하는 연구 및 정책 노력이 확대되고 있다.
2006년 전미재무학회(American Finance Association) 회장 취임연설을 통해 미국의 John Campbell 교수는 가계재무 부문에 초점을 맞춘 ‘가계금융’이 재무학 내지 금융경제학의 중요한 분야로서 연구될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Household Finance, The Journal of Finance, August, 2006.). 이후 가계금융 분야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리면서 재무학 내지 금융경제학의 새로운 영역으로 많은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지만 국내외적으로 기업재무 분야에 비해 관심과 연구 성과가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가계금융은 가계가 삶의 만족과 같은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간간 자원배분 및 위험관리와 같은 금융수단들(financial instruments)을 어떻게 사용할 지가 주 관심 주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재무가 주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 등 지배구조 관련 이슈 내지 기업의 자본구조에 대한 논의가 주 관심사인 반면, ‘가계금융’은 앞서 언급한 가계의 재무의사 결정이 핵심관심사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기업재무의 주 대상이 어느 정도 동질적인 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반면, 가계금융은 가계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이질성을 고려해야 하며 특히 주된 관심 대상은 부유한 가구 보다는 서민가구의 의사결정이라 할 수 있어 정책측면이 보다 강조된 분야라 할 수 있다.
▣ 새로운 학문으로서 가계금융의 특징
가계금융은 Campbell 교수의 정의에 따르자면 ‘가계가 이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금융수단 및 기제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부문별로 보면 ‘가계금융’은 금융회사 등 기관들이 가계의 금융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떠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 그리고 소비자들은 재무적 의사결정을 어떻게 내리는지, 마지막으로 정부는 금융서비스의 제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를 연구하는 분야로 정의될 수 있다. 즉 가계의 재무적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데 있어 가계금융은 가계특성의 이질성과 가계가 속해 있는 금융시스템을 고려하고 각 경제 주체와 시스템 내에서의 상호작용과 영향을 강조한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에서 이처럼 가계금융이 학문분야에서 뿐 아니라 정책 및 금융ㆍ비금융 기관 경영에 있어서 중요성이 급부상하게 된 배경으로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가계 재무의사결정의 경제적 중요성 증대이다. 전세계적으로 고령화에 대비한 사적연금체계 강화, 대출시장의 자유화 그리고 최근 선진국이 경험한 신용의 확대로 인해 가계는 과거에 비해 금융의사결정에 있어 보다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금융혁신으로 가계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확대되어 보다 많은 가계가 보다 쉽게, 보다 복잡한 금융 선택에 직면하게 되었다.
둘째, 연구 데이터의 가용성 증대이다. 앞서 언급한 디턴 교수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이 가능하게 된 것도 가계부문의 소비를 직접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미시데이터가 가능해진 데 기인한다. 1990년대 이전까지 Survey of Consumer Finance와 같은 가계 서베이 자료를 활용하여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동 자료는 시계열자료와 달리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료의 신뢰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정부의 조세, 신용카드 등 기관들의 객관화된 미시자료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게 됨에 따라 가계의 재무적 의사결정에 대한 보다객관화되고 실증적인 연구가 확대될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로 사회학적 요인이 제기되는데 그동안 한 세기 가까이 기업과 가계 관련 연구 주제가 성별과 지역에 따라서 철저히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대도시 소재 대학들은 기업에 집중하여 남성들로 하여금 기업들을 이끌도록 준비시킨 반면, 미국의 지방 거점 대학들은 가계를 연구하고 여성들로 하여금 가계를 이끌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최근 이와 같은 분리가 완화되어 미국의 주요 경영대학과 경제학과 대학원에서는 가계금융 분야를 핵심과목으로 지정하고 있으며 미국의 NBER 등 주요 연구기관들도 가계금융연구그룹(Consumer Finance Working Group)을 별도로 운영하는 등 가계금융 분야의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다.
▣ 가계금융 논의 활성화는 바람직한 서민금융정책 수립을 위해 긴요
통상적으로 가계는 다양한 금융 및 재무적 니즈가 존재하며 금융역량이 취약한 저소득 계층의 경우 그 필요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가계의 주요한 재무적 니즈라고 하는 것은 대출, 저축, 투자, 자산구성과 위험관리 등이 있는데 특히 취약계층은 소득수준이 낮다는 것뿐만 아니라 경기변동 등에 의한 소득의 변동성도 크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적절한 위험관리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수요적인 측면이나 공급적인 측면에서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취약계층의 경우 금융 및 재무 니즈가 보다 큼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적인 요인 등으로 인해 금융소외(financial exclusion)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경제적 취약성이 증대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러한 것이 최근의 가계부채, 소득 및 자산 분배 불평등, 빈곤 등 다양한 사회이슈로 분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경제사회이슈를 이해하고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가계(household) 관점에서 금융을 접근하고 가계의 다양한 금융행태, 즉 저축, 투자, 부채, 자산구성 및 위험관리 행태에 관한 연구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가계부문의 금융역량을 강화하여 합리적인 경제·금융 생활을 영위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 서민금융지원 확대 및 금융소비자 보호, 금융회사 및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움직임 등에 따라 가계부문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가계부문의 이질적인 속성과 위험관리 필요성 등을 감안한 연구 성과물은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가계 관련 주요 경제·사회 이슈들이 향후 가계부문의 금융역량의 차이로 인해 사회갈등으로 확산될 수 있고 거시경제 및 사회의 안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가계부문 금융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가계의 경제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며 이를 위한 가계금융 분야의 연구가 학계나 업권, 정책당국 전 영역에서 보다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국내의 경우 고령화의 빠른 진행과 세계화를 감안할 때 가계부문이 처한 경제적 현실은 보다 복잡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의사결정의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들의 합리적인 금융 및 경제생활이 가능하기 위한 새로운 분야의 연구 활성화가 긴요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미국에서와 같이 객관화된 가계부문 미시자료의 접근 가능성이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무엇보다도 큰 진전이 없는 정부의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부처 이기주의를 떠나 가계부문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 마련을 위해 하루 빨리 진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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