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로 출연해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 경제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인 시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 같아서 놀랐다. 진짜 놀란 이유는 비관적이어서가 아니라 자극적인 표현에 집착한 나머지 분석적 근거가 부족한 일부 언론 보도를 그대로 믿는 풍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방송에서 답한 내용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질문 내용이 아주 자극적인 기사 제목들을 모은 것 같다. 비관적이냐 낙관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극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예로 든 기사들은 내용을 보면 사실 우리가 모르는 내용이 아니거나 표현에 대한 근거가 빠진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런 기사나 글을 접할 때는 우선 그것이 어떤 구체적인 위험을 미리 알리려는 경고의 의미인지 아니면 막연한 공포심을 자극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든지 하려는 다른 의도가 있는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 나는 상당수의 글이 자극적 인상을 주려는 목적이 더 강하다고 본다. 우리(회사)를 포함해 외신들은 앞에 소개한 내용도 있고 훨씬 중립적인 견해도 있고 다양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보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이 다르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따져봐야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일단 우리끼리 견해를 허심탄회하게 교환하고 건설적인 논의를 한 뒤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바로 그 중요한 과정이 없다고 본다. 서로 주장만 한다. 구조개혁을 막으려는 쪽에서는 경제가 위기 국면이라서 지금 못하겠다고 하고 구조개혁을 하려는 쪽에서는 지금 당장 위기는 아니며 문제를 방치하면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러니 지금 개혁을 해야 한다. 이런 식이다. 따라서 국내와 국외 견해가 얼마나 다른지 나로서는 말하기 힘들다. 참고로 밖에서의 평가는 중립적인 편이다. 한국은 일부 지표로는 선진국 혹은 고소득국가에 속하고 또 일부 지표로는 신흥국에 들어가 있다. 양쪽 모두를 살펴봐도 분명 한국이 당장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에 속하지는 않는다. 진짜 문제는 사실에 기초한 정보를 신뢰감 있게 전달하는 경로가 많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언론 보도는 특정 보고서를 무비판적이며 일방적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있고 또 바로 몇 시간 뒤에 정부 견해를 무비판적, 일방적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국민들은 스스로 정보를 찾아다니고 그렇게 찾은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전망은 대략 2% 초반부터 3% 초반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인구 구조 변화는 자주 강조하면서 성장률 둔화는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있는 것 같다. 인구구조 변화와 세계 성장률 둔화 등을 감안하면 한국의 성장률도 둔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마치 집값이 비싸니까 더 떨어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급여는 많이 오르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것은 경제가 큰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경우라고 하겠는데 그렇다면 내 급여의 삭감도 불가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집값은 떨어지고 내 가정의 살림살이는 나아지는 상황을 요구한다. 그런 일은 일반적으로는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언론이나 학자들이 자주, 그리고 신뢰할만한 논리를 가지고 올바른 판단에 도움이 될 정보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성장률 얘기를 하면서 낮은 성장률을 걱정하는데 사실 성장률이 조금 낮고 높고는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아니다. 성장의 내용과 경제의 지속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프로그램 내내 이런 식의 문답이 이어졌다. 방송을 마치고 기분이 편치 않았다. 경제 현상을 냉철하고 분석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들보다 이런 저런 험악한 표현을 들먹이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시대인 것 같다. 참고로 페이스북 사용자 J S Kim 님이 포스팅한 다음 글을 소개하면서 내 글을 마치려 한다.
《주류와 비주류 경제학자가 사는 법, 우리가 속는 법》
“한국경제는 가계부채 폭탄, 부동산 거품, 인구절벽, 수출둔화 등으로 인해 절대절명의 순간에 놓여 있다. 이제 위기는 피할 수 없다.” 언론들은 이런 보도를 쏟아낸다. 이들이 의지하는 전문가들은 대부분 비주류 경제학자이다. 학계에서 일하고 있는 주류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칼럼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가능성”이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몇 가지 가능성을 소개한다.
뉴욕대 나심 탈레브 교수는 항공 여행을 앞둔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다음과 같이 물어 보았다. “비행기 사고시 보상금을 지급받는 사망보험을 얼마에 구매하겠는가?”, “테러로 인한 비행기 사고 대비 사망보험을 얼마에 구매하겠는가?” 두번째 그룹의 사람들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고 대답한다. 흥미로운 것은 첫 질문이 테러의 가능성도 이미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확실한 언어에 관심을 기울인다. 모호한 가능성에 대비해서 반응하지 않는다. 선명하게 상상되는 상황에 대해서 반응한다. 다른 예로, 교통사고 사망의 가능성은 광우병으로 인한 사망률 보다 훨씬 높지만, 우리는 광우병에 대해 더 공포감을 갖는다.
학계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확률적으로 생각한다. 과학적 방법론을 유지하는 것은 학자의 생명이다. 언론에 등장하는 비주류 경제학자들은 확률적 상황을 어느 정도 무시해야 한다.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다. 어떤 이가 죽음을 담보로 하는 도박에 참여한다. 여섯 총알이 들어갈 수 있는 총에 한 발을 장전하고, 자기의 머리에 총을 겨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사망 가능성이 1/6이라고 건조하게 표현한다. 비주류 경제학자들은 끔찍한 사망 장면을 묘사한다.
안타깝게도 그는 사망했다. 비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왜 몰랐느냐고 말한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1/6의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실현된 것 뿐이라고 표현한다. 또 다른 이가 도박에 참여한다. 비주류 경제학자들은 다시 암담한 미래를 예견한다. 과거의 역사와 경험에서 배우지 못했느냐고 묻는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다시 1/6을 말한다. 다행히 그는 죽지 않았다. 이후로도 많은 이들이 도박에 참여했다. 참여한 이들 중, 1/6은 죽고, 5/6은 살았다. 대중들은 끔찍했던 몇 번의 장면들과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높은 예측력을 기억한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확률적 사고가 완벽한 것만은 아니다. 2008년 경제위기 예측 실패에 대해서는 여러 층위의 논의가 있지만, 적절한 비유 하나는 이렇다. 멀리 보이는 집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 보통 사람들은 '불이야'를 외치고 소방서에 전화를 한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과연 그것이 불에 의한 연기인지, 그냥 수증기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불에 의한 연기라 하더라도, 화재인지 난로 연기인지 확인해야 한다. 화재가 확인되어도 직접 진화가 가능한지, 소방서에 꼭 전화를 해야 하는지, 화재로 인한 손실과 소방서 출동으로 인한 비용을 비교도 해보아야 한다. 결국 확률분포를 확인하는 사이에 집은 전소되고 말았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견지하는 과학성은 비합리적인 시장의 반응도 종종 무시한다. 미국 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최근 자서전을 출간하고, 이런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경제위기가 시작되었을 때, 위기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중들이 이 정도로 패닉을 보일지 예상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경제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비합리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탓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확률적 사고를 견지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을 탓해야 하는가. 주류 경제학자가 직접 목숨을 건 도박에 참여한다. 까짓거 1/6의 확률이라면 해볼만 하다. 총을 머리에 겨눈다. 헉! 주가 폭락으로 화가 난 총포사 주인은 여섯 발의 총알을 이미 장전해 두었지만, 주류 경제학자는 모르고 있다. 반면 비주류 경제학자들은 총포사 주인과 친분이 있다. 비주류 경제학자들이 비합리적 시장에 대해 더 나은 통찰과 직관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이들의 과장스런 표현이 실제 위기 확률에 대한 신호 기능일 수 있다.
이러한 줄다리기 가운데 우리가 서 있다. 주류와 비주류는 서로를 무시하는 경향이 크지만, 우리는 주류와 비주류를 보완적으로 읽어낼 필요가 있다. 속지 않고 살기 쉽지 않다. 아뿔사! 오직 자유시장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살아가는 시장주의 경제학자들도 있다. 자유시장에서 구매한 총이라면, 절대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확률적 사고도 하지 않고, 비합리적으로 움직이는 시장의 현실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들이 가장 잘 먹고 잘 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