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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책소개) 압축성장의 고고학

(※ 오석태 님의 글을 공유한다.)


압축성장의 고고학

작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장덕진|김현...
출판 한울아카데미
발매 2015.10.15.

▶ 새삼 확인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대표저자 장덕진 교수의 인터뷰 기사에 낚였다. 기대만 못한 책이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회조사의 방법 및 결과의 설명이 (물론 줄인다고 줄였겠지만) 지루한 느낌을 주었다. 책에 소개된 연구 결과가 담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함의가 내가 읽었던 다른 책들에 비해 특별하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물론, 아예 나쁜 책이었다거나 이 책을 읽었던 것이 시간 낭비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평소 알거나 느끼고 있었던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한다는 의미에서 '평타' 정도는 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은 대표저자의 소개글과 여덟 개의 논문, 이렇게 총 아홉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개글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요약 정리해 본다.

첫째, '반세기에 걸친 결혼, 출산, 태아 사망의 변화'에서 연구자가 가장 주목하는 결과는 과거 사회에서 이혼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나타난 것이다. 이는 사회 통념은 물론 이혼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기존의 자료와도 맞지 않는다. 일단 이 조사가 '현재의 기혼자들'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한계에 주목하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아무래도 과거에 비해 지금이 이혼여성이나 배우자 사별여성이 독신 생활을 하기 여러 모로 편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5년 이천읍의 기혼여성 중 재혼 및 삼혼을 합친 비율이 7.5%'라는 결과는 내가 어렴풋이 가지고 있었던 '과거 전통 사회의 가족이 더 불안정했다(재혼이 많았다)'는 생각과 일치한다. 외할아버지에게 첩실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이까지 낳았던 모양이지만 곧 외할아버지와 헤어지고 재가를 했다고 한다. 재혼여성의 절반 정도는 사별 혹은 행방불명으로 초혼이 소멸되었는데, 이는 '과부의 수절'이라는 유교적 덕목이 그다지 광범위하게 지켜지지는 않았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옛날(6-70년대)이라고 해서 유교적-전통적-이상적인 가정이 탄탄하게 유지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 밖에는 과거 1965년 대비 2005년의 평균 자연유산 비율이 0.119명에서 0.264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연구자는 이 결과를 믿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지만, 찾아보니 최근들어 자연유산이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도 나온다. 지하철 '핑크존'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진다.

둘째, '한국의 고등교육 팽창과 교육 불평등'은 사회조사에 대한 해석이라기보다는 교육에 있어서 '업적주의' 혹은 '학력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을 소개한 글이다. 부르디외의 '문화자본'과 '아비투스' 개념은 이미 내게 무척이나 친숙하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를 과연 언제 실제로 읽을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학력주의가 특히 더 기승을 부리는 것은 '지위 상승의 (연대 없는) 평등주의'에 기인하며, '조선조 말 신분 체제가 와해되는 과정이 지배계급의 혁파와 새로운 사회적 주도세력의 등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양반 지향화를 통해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상준의 '맹자의 땀 성왕의 피'에 등장했던 '온 나라가 양반 되기,' 그레고리 헨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등이 다시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아마 이 논문에서 가장 논쟁적일 부분이 등장한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1990년대 중반 이후의 고등교육 팽창은 상층 계급의 엘리트들을 위한 기회를 지키기 위해 대중화된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를 교육기관으로서 축적된 인적 사회적 자본이 없는 신설 대학으로 유도하는 우회로 만들기 과정으로 보는 입장이 더 타당해 보인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고등교육을 이수한 많은 사람들에게 질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가 주어지는 우리의 현실이다. 나는 이 주장을 '한국에서 특히 강한 지위 상승의 욕구를 잠시 만족시키기 위해 대학 졸업장을 남발하였다' 정도로 해석한다. '보편화된 대학 교육 체제에서 과거에 형성된 서열 체제는 강화되고 대학 졸업장의 가치는 양극화되고 있다'는 주장 역시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떠올렸던 생각과 일치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리하며, 영원히 속지는 않는다. 연구자는 4년제 대학 진학률이 2004년 59%를 정점으로 2014년 현재 46.6%까지 떨어져 있음을 지적한다. 진학률 통계 기준 수정에 의해 약 5%p 정도의 차이가 설명된다는 점을 감안해도 큰 폭의 하락이다. '하층계급에 의한 교육투자의 철회'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증거로 해석할 수도 있다. 결국 한국의 고등교육기관은 인구 구조 변화, 하층 계급의 외면, 거기다 (어쩌면) 산업 구조의 변화라는 '삼각 파도'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세째, '한국 노인의 삶의 변화'에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1960년에 이미 전라남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일부 지역에서 고령화가 시작되었으며 이미 1980년대에 수도권, 직할시, 신흥 공업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고령화사회로 진입했다'는 주장은 경제 발전에 따른 인구의 도시 집중에 의한 현상으로 그리 놀라울 것이 없다고 본다. 노인 집단의 불평등 격차가 다른 인구 집단보다 크고, 고령 인구의 노동시장 참여율 증가는 주로 남성들에게 국한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노년층의 사회 계층에 따른 건강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결과 역시 많이들 접했던 얘기다.

네째, '도시화 과정에서 이웃 공동체 참여의 변화와 그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분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으면서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은 '한국의 고소득 고학력자들은 (이웃 연결망에 대한 참여가 높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지난 반세기 동안 이웃과 친족으로부터 이탈하여 구체적 실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배타적 연고형 조직(동창회 등)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학벌이 좋지 못한 사람들을 사회적 자본으로부터 배제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저자는 머리글에서 한국인의 인맥자산 지니계수가 0.815라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도 인용한다. 솔직히 나 자신부터 이웃과 교류가 별로 없다.

연구자는 '고학력 중상층들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사회경제적 지위가 유사한 이웃들과 살게 되면서 그들을 지위 경쟁의 대상으로 보게 되어 교류가 어려워졌을 수 있다'는 해석을 시도한다. 고학력 중상층들이 같은 지역에 모여 사는 것은 전세계 공통의 현상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서 특히 이웃 참여가 적은 것은 결국 '아파트 공화국'이기 때문일까? 고학력 계층의 이웃 참여가 다른 계층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던 1970년대는 아직 아파트가 지배적인 주거 형태가 아니었던 것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 집부터 그러했다.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한 것은 1987년이었다.) 아파트의 물리적 특성이 이웃간의 교류를 방해하는가?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이웃 공동체와 거리를 두면 이웃 공동체가 여러 가지 문제를 집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은 한국에서 지방자치, 소위 '풀뿌리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쉽지 않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역시 '내탓이오 내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를 외칠 뿐이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까? 아파트 건축을 금지하면 되나?

다섯째, '산업화 이후 한국 노동 체제 변동과 노동자 의식 변화'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과거와 현재에 걸쳐 일관적으로 관찰되는 '돈'에 대한 집착이다. 연구자는 '노동자의 임금수준에 대한 만족도가 극도로, 그리고 일관되게 낮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노동 운동은 (노동 환경의 개선보다는) 임금 인상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한편,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일하는 이유가 주로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가 73%, 더 좋은 직장이 나타나면 언제든 옮길 수 있다는 노동자가 58%이며, 다만 연공급이 아닌 능력급을 64%가 지지하는 것은 나름 긍정적 신호일 수도 있다.

한편, 사회조사의 결과는 아니지만, 노조 조직률이 이미 1989년을 정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하여 외환위기가 일어난 1997년에는 이미 1987년 이전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 꽤 놀라웠다. 저소득 계층에서 1인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이 사라지고 이 계층 여성의 70% 이상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가 지급되는 저임금 저숙련 부문에서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는 현상은 다시 한 번 확인할 가치가 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직후와 현재(2007년)의 비교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부분이 바로 노조에 대한 인식이다. 87년 직후에는 전체의 절반 이상이 노조 활동에 긍정적이었고, 심지어 '경제 성장을 위한 노조의 중요성에 인식을 같이한' 비율이 61%나 되었다. '노조가 성장을 촉진한다' '작업장 민주화와 성장이 노동조합을 통해 동시에 실현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과반수의 노동자가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현재는 노동자 중 11%만이 노동조합을 신뢰하며, 무려 44%의 노동자가 경제성장을 위해 노조 활동이 자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보수화된 것은 아니다. 77%가 빈부 격차가 늘고 있다고 말하며, 67%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노동자들은 성장은 고사하고 빈부 격차의 해소를 위해서도 노동조합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연대가 사라진 자리에는 냉소와 개별화만 남았다. 80년대 말, 지금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인 노조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다시 찾아야 할까. 저자는 '청년유니온'을 새로운 노동운동의 한 예로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과거에 그런 '노조 신뢰'의 시기가 잠시나마 있었다는 것은 긍정적이기도 하다.

여섯째, '사회적 위험을 통해 조망한 한국 사회복지의 과거와 현재'는 1968년에 비해 2010년의 '사회적 위험'이 크게 늘었으며, 구체적으로 보면 실직의 위험이 확 줄어들고 노인 돌봄 위험도 약간 감소한 반면 나머지 장애, 질병, 노령, 여성(여성가구주) 위험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실직의 위험은 과거가 훨씬 더 심각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 조사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사실은 1968년의 전체 가구주 중 초졸 이하가 절반이었다는 것이다. 일제시대 말기인 1930년대부터 국민학교 취학률이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당시 가구주의 평균 연령이 40대(1920년대 출생한 사람)임를 생각해 보면 그다지 충격적인 결과는 아니다. 지난 4-50년 사이에 한국 사회는 정말 급격한 변화를 겪었음을 새삼 확인한다.

일곱째, '정보사회로의 이행, 일상과 사회 변화'에서는 인터넷 사용 시간과 제도에 대한 신뢰가 부정적인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에 주목한다. 제도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 인터넷 사용 시간이 늘었다기보다는, 인터넷 사용 시간이 길어진 것이 제도에 대한 (그렇지않아도 낮은) 신뢰도를 더 낮추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된다.

마지막,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서 본 사회발전연구소 조사 연구의 변화'에서는 1960-70년대 가족계획, 인구이동, 주거, 도시 적용 등이던 주요 키워드가 2000년대들어 신뢰로 바뀐 점을 지적한다. 신뢰/사회적 자본이 참 많은 곳에 등장한다. 그래서 내가 다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은 1996년 발간 직후 샀지만 거의 20년을 안 읽고 있었던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트러스트'이다.

[출처] 압축성장의 고고학 (장덕진 외)|작성자 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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