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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직접민주주의 폐단 크다...국민투표 폐지 국민투표 필요할 판

(※ 로이터브레이킹뷰즈 칼럼을 전문번역해 소개함.)

(사진 출처: reuters.com)
몇년 전 고향 마을에서 자치예산 승인을 하는 데 3개월 사이 무려 다섯 차례나 투표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주민들은 투표에 염증을 느끼게 됐고 다섯 번째 투표 때는 71%의 유권자가 기권했다. 결국 전체 유권자의 1%도 안 되는 156명이 1억600만달러 지출안을 결정했다.

이 사례는 직접민주주의의 폐단, 즉 소수의 횡포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미국 헌법을 기초한 지도자들이 대의민주주의를 택한 것이다. 또 이런 점 때문에 어제 영국에서 치러진 것 같은 국민투표가 문제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는 어제 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투표가 대의제도를 저해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1788년 뉴욕에서 열린 제헌회의에서 "순수 민주주의가 실현가능하다면 가장 완벽한 정부 형태가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정치에서 그런 일은 불가능한 것으로 이미 입증됐다"고 지적했다.

기업 경영에서도 주주민주주의가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주주들은 이사회를 구성할 대표를 선출한다. 대대적 합병의 경우 대개 주주총회에 회부되지만 고객에게 빵을 얼마나 대접할 것이냐 하는 문제처럼 사소한 일까지 주주총회가 결정하는 것에 대해서 기업들은 반대 입장이다.
 
주주들은 이사를 선출하고 이사들은 경영진을 선임하고 경영진이 주요 결정을 내리도록 하자는 것이 대원칙이다. 지나치게 사소한 일까지 주주총회에 회부한다면 일은 지나치게 번거로와지고 경영진은 책임감을 잃게 된다. 주주활동주의의 악폐 가운데 하나가 바로 회사가 지나치게 협소한 부문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정 운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투표에 의한 결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영국에서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짐에 따라 네덜란드나 프랑스에서도 이를 따라하려는 움직임이 일 가능성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10월 실시하려는 국민투표 결과 정부 붕괴 위험도 있다. 콜롬비아와 FARC 게릴라단체가 50년간 이어진 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지만 이 또한 국민투표를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행위가 결국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구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가 복잡한 재정지출 정책을 펴지 않고 경제정책의 책임을 중앙은행 같이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기관에 떠넘기고 있다. 브렉시트처럼 미묘한 사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일은 결국 선출직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경제에도 좋지 않다. 경제든 무역이든, 재정이든 국방이든 정책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일은 아무리 얌전한 경우라도 소란을 피할 수 없다. 그런 토론이 의회에서 진행되는 동안 금융시장 변동성 증대, 투자 위축, 고용 부진, 설비 발주 연기 등을 촉발할 수 있다.
     
하지만 단 하루, 단 한 번의 찬반투표에 중대한 문제의 운명을 맡기는 행위는 리스크를 그보다 훨씬 키우게 된다. 변덕스럽기 마련인 기분 때문에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고, 함께 검토돼야 할 사안인데도 분리해 처리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박한 포퓰리즘과 특수이해당사자들이 결과를 좌우할 위험도 크다. 특히 투표율이 낮을 경우 이런 위험은 더욱 커진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있었던 이른바 주민발의제 사례가 이런 문제를 잘 나타내준다. 지난 1978년 주민투표 결과 63%의 찬성으로 통과된 재산세 상한제에 관한 주민발의 13호로 주 재정은 악화일로를 겪게 된다. 다른 세목의 세율을 인상한다거나 지출을 삭감하는 것은 주민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당시 결정은 캘리포니아 의회에서는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오늘날까지 어떤 정치인도 그 문제를 개정하자는 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데이비드 카메론 영국 총리가 EU 잔류 여부를 꼭 국민투표에 부쳐야 했던 것은 아니다. 국민투표 실시 자체도 정치적인 결정이었으며 직접 관련성 여부는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최근 영국에 대한 투자는 둔화됐고 금융시장도 피해를 입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마테오 렌지 총리는 헌법 개혁안을 10월에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며 부결시 사퇴하겠다고 약속했다. 렌지 총리는 지금까지 이탈리아 정치 안정과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해 왔는데 그가 만에 하나 사퇴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유럽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

콜롬비아의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은 최근 세계경제포럼 연설을 통해 FARC 좌파 게릴라 단체와 분쟁이 끝나면 외국인 직접투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대규모 투자 결정은 국민투표 결과를 확인해야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콜롬비아 국민 다수의 입장에서는 FARC와의 화해를 머리로는 받아들일지 몰라도 가슴으로는 그럴 수 없다고 여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영국에서 치러진 국민투표 결과가 꼭 정부에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정치권 전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미국 기업들의 경우 임원 급여에 대한 주주들의 투표 결과가 구속력은 없지만 이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직접민주주의 폐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주주총회에서 한 쪽 견해가 과반수 찬성이 나오지 않더라도 근소한 차이로 패할 경우 이사회는 요구 사항을 무시하지 못하고 일정 부분 반영할 수 밖에 없다. 국민투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카메론 총리는 이번 투표 결과 잔류표가 과반수라고 해도 탈퇴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향후 EU와의 관계에서 고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사정은 탈퇴표가 과반수를 차지해도 마찬가지다.
     
* 칼럼 원문: Power to the representa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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