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30

(斷想) 한국 경제는 침체에 빠져 있나?

(※ 사견임)

요즘 경제 기사를 보면 용어를 정확하지 않게 쓰는 경우가 너무 많아 읽으면서 낯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경기)침체"다. 제목만 검색해 보아도 "침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기사는 1주일 사이 100건이 넘는다. 본문 전체를 검색하면 수천 건에 이른다. 그야말로 마구잡이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기사를 보면 한국 경제가 침체에 빠져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너무나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 "그렇게 말하는 근거가 뭐냐?"고 물으면 바보 취급이라도 당할 기세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한국 경제는 침체에 빠져 있지 않다. 각종 사전에 따르면 침체 혹은 경기침체는 경기후퇴(recession) 혹은 불황과 같은 뜻을 지닌다. 세계적으로 경기후퇴는 계절조정 기준으로 2개분기 이상 연속해서 국내총생산이 감소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한국 경제가 마지막으로 경기침체를 기록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분기였다. 이후 국내총생산이 1회 감소한 것은 2000년 4분기, 2003년 1분기, 2008년 4분기 등 모두 3차례다. 2000년 이후만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경기침체를 한 번도 겪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호주, 폴란드, 슬로바키아공화국 등 4개 뿐이다. 이 기간 중 경기침체를 가장 많이 겪은 나라는 일본(6회), 이탈리아(5회), 덴마크ㆍ핀란드ㆍ그리스ㆍ아일랜드ㆍ네덜란드ㆍ포르투칼(각4회) 등이다. 가장 많은 분기 국내총생산 감소를 겪은 나라는 그리스(30분기), 포르투갈ㆍ핀란드(각26분기), 일본(25분기) 등이다.

이렇게 통계를 들이대면 한국 경제성장률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낮아져서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금융위기 기간 중인 2008-2009년을 제외하고 직전 6년간 연평균 5.0%에서 이후 연평균 3.6%로 1.4%포인트 떨어졌다. 하지만 3.6%는 OECD 회원국 가운데 5번째 높은 것이다. 위기 이전 6년 평균 성장률이 8번째로 높았으니 다른 나라들보다 특히 심한 상태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대략 3.0% 전후라는 분석이 많다. 결국 현재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에 부합하거나 약간 낮은 수준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과거의 4~5% 성장과 비교하면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사실과 다른 용어를 사용해 표현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한국의 성장률이 과거보다 낮은 것은 경제가 성숙 단계에 이른 점, 생산활동인구 증가율이 급격히 낮아진 점, 세계 무역이 둔화된 점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내수부진 지속"이라는 표현도 기사 안에서 정확하게 어떤 의미로 "부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인지 밝히지 않는 한 대부분 잘못 사용되고 있다. 최근 4년간 내수 성장률은 꾸준히 가팔라지고 있다. 급기야 2015년과 2016년에는 내수 성장률이 전체 경제성장률을 앞질러 성장을 견인했다. 어떤 차원에서 내수가 부진하다고 하는지 미리 개념을 정의하지 않는 한 내수부진이라는 표현은 최소한 최근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이런 거시경제지표 관련 표현 이외에 주택시장 관련 기사를 보면 현실과 맞지 않는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주택가격 급등, 급락, 거품, 붕괴 등의 표현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상황을 과장되게 표현하려는 의도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런 기사는 정확성 문제를 떠나 진실보도라는 큰 원칙을 저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 통계를 보면 한국의 실질 주택가격 상승률은 심각하게 높은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년간 높은 상승률을 바탕으로 막연하게 한국 주택가격이 급등했다고 표현하는 기사를 볼 수 있다. 물론 급등의 개념을 기사 안에 명시했다면 뭐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 설명하는 기사는 찾기 힘들다.


이런 통계를 보여주면 망설이지 않고 "소득은 정체돼 있는데 그것과 비교하면 주택가격 상승은 높은 것"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가처분소득과 비교한 주택가격 지표를 주요국과 비교해 보면 이 측면에서도 한국의 주택가격 상승률은 높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소득 증가율보다도 주택가격 상승률이 낮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아래 그래프는 가계가처분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을 2000년 100으로 놓고 2015년 현재 수준을 나타낸 것이다. 즉 한국의 PIR은 15년 사이 오히려 낮아졌다.


잘못된 선입견, 제한적인 특수한 개인적 경험에 기초한 이런 오류는 가끔 일부 용어 설명집에서도 발견된다. 일반인들이 용어 검색시 자주 사용하는 네이버 백과사전 메뉴로 "피용자보수"를 검색하면 박문각의 시사상식사전에 다음과 같은 정의가 들어 있다고 소개되고 있다.
피용자보수 [ 被傭者報酬 , compensation of employees ] // 국민소득계정 및 가계와 민간비영리단체의 경상계정과 자본조달계정 중의 한 항목으로서 민간기업과 정부기업 등에 고용되어 노동을 제공한 대가로 지급받은 현금, 현물 등 일체의 보수를 말한다. // 전체 국민경제에 있어서 생산을 통해 얻은 소득은 이에 경제활동에 참여한 각 경제주체에 분배되는데, 이 중에서 노동을 제공한 경제주체에 배분되는 부분을 피용자보수라 하고, 자본 및 경영을 제공함으로써 생산활동을 하는 경제주체에 배분되는 부분을 (기업)영업잉여라 한다. 피용자보수가 높을수록 국민경제 주체에 의해 생산된 소득 중 노동제공자에 지급된 보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국민경제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피용자보수율은 노동소득분배율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취업률 및 임금상승률과도 관련이 있다. // 한편,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한 후 점차 안정성을 되찾으면서 기업의 영업잉여 증가율은 급증한 데 비해, 피용자보수 증가율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기업들이 경제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을 은행 등에 쌓아두기만 하고, 피고용인에 지급하는 임금비중은 높이지 않은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직접 통계를 찾아 보니 위의 표현과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국민처분가능소득 가운데 피용자보수 비중은 2010년 감소한 것을 제외하면 꾸준히 높아지고 있고 영업잉여 비중은 2009년과 2010년을 제외하면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위 사전 편찬자가 어떤 통계를 참조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가능한 한 통계를 직접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일반인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주변에서 들리는 말에 기초해 감정적으로 이런 저런 표현을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언론까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아니, 언론이기 때문에, 언론만큼은 사실이 아닌 선입견을 단호히 배척해야 한다. "서울"을 "경기도"라고 표기하면 오보다. "국무총리"를 "국방부 장관"이라고 표기하면 당장 정정기사를 내보낼 것이다. 하지만 앞에 지적한, 더 심각한 오보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냥 넘어가고 있다.

금융시장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특종 보도를 하는 것은 기자로서는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특종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보도다. 진실을 알지 못하고 진실보도를 할 수는 없다. 최고의 전문가가 읽어봐도 사실과 다른 내용이 없는 기사가 최고의 기사다. 최고의 전문가가 읽는 기사를 목표로 할 것인가, 일반인이 봐도 오류 투성이인 기사를 목표로 할 것인가?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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