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인구와 투자의 미래(홍춘욱) 서평 (원문 링크: https://www.facebook.com/kiwon.lee.923/posts/10211020356776408)
모든 사람은 죽는다. 자연의 섭리를 피할 길은 없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건강한 노년을 즐기다 평온히 여생을 마무리하는 사람이 있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지병을 앓다가 가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늙어간다. 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여가와 개인의 가치가 소중해지면서 출산률이 꾸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고령화는 전부터 예상되었고, 이미 당도했고, 피할 수도 없다. 하지만 고령화를 맞이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고령화와 불황이 함께 찾아온 일본도 있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은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경제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논거와 데이터를 토대로 ‘어째서 일본만 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지’, ‘우리나라가 직면한 고령화 위험이 어느 수준인지’ 풀어놓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고령화 위험을 지나치게 우려하고 있다. 고령화가 경제 활력을 줄이고 노동인구 감소가 사회에 부담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 상황이 절망적인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데이터를 살펴보면 우리가 일본형 경기침체를 따라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리 사회는 고령화 위험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장기 국채금리를 뜯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 20년 금리는 현재 2.3% 수준이다. 장기국채 금리에는 국가의 장기 잠재성장률과 물가상승률에 대한 기대가 녹아있다.
쉽게 말해 한국 금융시장은 앞으로 20년 동안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의 합이 2.3% 내외라고 보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물가 목표가 2%인데 국채금리가 2.3%라면, 역산한 장기 잠재성장률은 0% 수준이다. 금융위기 이후 의도적인 금융억압으로 장기금리를 낮춘 영향도 있지만 미국의 30년 금리가 3%인 점을 고려하면 우리 금융시장은 한국의 앞날을 상당히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채권쟁이답게 저자의 주장을 경제 성장률과 물가 측면에서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성장과 물가는 금리를 결정하는 핵심요인이기 때문이다.
우선 인구감소를 성장률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미래는 그렇게 어둡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인구구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앞으로 불황을 피할 수 없다고 믿는다. 인구가 감소하면 경제성장률이 감소하고 자산가격이 떨어져서 경제가 망가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구감소로 인해 잠재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미신은 이미 깨졌다. 2005년 통계청 인구추계는 총인구가 2018년 4,934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감소한다고 예측했으나, 2015년 인구추계는 ‘인구정점’ 시기를 2031년 5,296만 명으로 수정했다. ‘인구정점’을 무려 14년이나 뒤로 늦췄다.
인구 정점이 뒤로 밀리는 이유는 기대수명 증가와 외국인 인구 유입 때문이다. “1970년에 45세인 남자의 기대여명은 23년이었다. 즉, 평균적으로 68세까지 살 것으로 예상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1990년이 되면 45세 남자의 기대여명은 27년으로, 2005년에는 또다시 32년으로 연장된 데 이어 2015년에는 36년이 되었다. 즉, 한국 중년 남성의 기대여명은 10년마다 3년씩 늘어난 셈이다”. “소득이 증가하고 의학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한국인은 예전보다 훨씬 오래 살게 되었으며, 이런 흐름은 당분간 변화할 가능성이 없다”.
외국인 인구 증가도 ‘인구절벽 지연’에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1998년 30.8만 명에서 2015년 190.0만 명으로 6배 넘게 증가했다”. 또 “전체 외국인 주민 171만 명 중에 66%인 114만 명이 ‘근로 목적’으로 한국에 이주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가능인구도 당장 경제에 부담을 주진 못할 것 같다. 통계청에 따르면 15~64세에 해당하는 생산가능인구는 당장 내년부터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베이비부머들이 은퇴를 미루고 여성 경제활동참여율이 높아지면서 노동인구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50세 이상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건강한 노인이 늘어나면서 은퇴를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도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현재 “한국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거의 10%P 이상 낮다”. 하지만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앞지르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 2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 이런 추세는 중요한 노동력 공급요인이 될 것이다.
노동생산성 측면은 어떨까? 많은 직종에서 나이와 생산성이 반비례한다. 나이가 들어 신체능력이 저하되면 육체노동 자체가 힘들다. 하지만 고도화된 산업사회는 교육의 질과 기술개발도 생산성 향상에 중요하다. 교육에서는 질적 요소가 중요한데, 한국 학생들은 PISA시험에서 항상 상위권을 성취해 ‘교육 투자’의 질이 높음을 입증하고 있다.
교육수준 못지않게 R&D투자도 총요소 생산성 향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R&D 투자를 열심히 하는 나라일수록 총요소 생산성이 빠르게 개선된다. 그런데 한국의 GDP 대비 R&D투자 비율은 2.9%로 핀란드에 이어 세계 2위다. 고령화로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겠지만, 그 속도를 늦추거나 상쇄할 요인도 분명히 있다.
물가 측면에서도 우리가 일본형 디플레이션을 겪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일본 디플레이션의 원인은 고령화가 아니라 버블 붕괴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례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면 자산시장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캐나다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고령화와 베이비붐 세대 은퇴기를 경험했지만 자산시장이 붕괴한 곳은 일본 뿐 이다. 1989년 일본증시 PER는 67배였고, 일본의 실질지가는 5년 사이에 2배 올랐다. 거대한 버블이 붕괴하면서 부채 디플레이션이 찾아왔고, 일본 중앙은행이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경제는 장기침체에 빠져들었다. 반면 한국의 증시 PER는 10배에 불과하고 부동산 가격도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크게 오르지 않았다.
버블은 아직 찾아오지도 않았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읽었다. 저자의 주장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물론 전망은 얼마든지 틀릴 수 있고, 저자와 나의 예상을 깨고 갑작스런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이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의 장기금리가 지나치게 낮다는 나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보충해주었다. 금리 상승 베팅을 조금 더 마음 편하게 만들어 준 저자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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