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9

(斷想) 가계부채를 위한 변명 (Ⅱ)

가계부채라는 단어가 하도 자주 언급되다 보니 한국에서는 이제 누구라도 가계부채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몇마디 쯤은 아무 준비 없이도 할 수 있게 됐다. "가계부채가 심각하다"는 말은 당연하고, 시사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 "가계부채 문제로 한국이 곧 금융위기에 빠질 것이다"는 말을 제법 전문가처럼 하는 것을 들어도 놀랍지 않을 정도다.

그렇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며 어떤 경로로 위기가 온다고 보는지 조금만 더 상세히 설명해 달라고 하면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그만큼 흔치 않다. 내가 들은 대답 가운데는 "이대로 빚이 늘어나면 못 갚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연쇄 파산이 나면 경제는 망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지금 속도만큼 "계속" 늘어날 수는 없는 일이고, "못 갚는 사람"이 생긴다는 말이 반드시 "대량 연쇄 파산"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그로 인해 자동적으로 경제가 망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대답은 차라리 "우리는 가만히 있다가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말만큼이나 허무한 말이다. 죽을 것을 알면서 가만히 있는 사람도 없거니와, 또 언젠가 우리는 죽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가 빠르지 않다거나 경제에 잠재적 위험 요인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기준으로 볼 때 한국 가계부채는 분명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통계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금융부채 잔액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연간 처분가능소득액으로 나눈 것을 백분율로 나타낸 것이다.

(가계부채 통계를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것이 바로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다. 한국은 2015년 현재 이 비율이 170%에 육박했으며 2016년 말에는 180%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비율로 볼 때 한국의 가계부채 부담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상위 10위 안에 든다.)

하지만 이 통계 하나만 가지고 가계부채 수준이나 부담 정도를 완벽하게 나타낼 수는 없다. 나라마다 금융거래 관행이 다르고 생활 관습도 다르기 때문에 이 비율이 의외로 높게 나타날 수도 있고 의외로 낮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간단한 예로 한국의 전세제도를 들 수 있다. 전세금을 현금으로 충당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부분 또는 전부를 대출로 충단하는 사람도 많다. 또 한국의 높은 자영업자 비중도 예로 들 수 있다. 자영업자는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본인이나 친인척 이름으로 가계대출을 받는 경우가 있다.

또한, 위 통계에는 비영리단체가 포함돼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물론 저 금액에서 순수하게 가계만 떼어서 계산할 방법은 없다. 그러니 비영리단체 상황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비영리단체를 빼면 얼마나 차이가 날 지는 알기 힘들다. 하지만 "자금순환표상 금융자산부채잔액"에서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금융부채 잔액은 2016년말 현재 1565조8100억원으로 돼 있는 반면 통계청이 조사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나타난 가구당 평균 금융부채를 가구수로 곱해 보니 916조6099억원이었다. 꽤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위 통계를 사용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위 통계를 언급할 때는 그 특징이 무엇이고 통계가 가진 한계는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위 비율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좋은 투자처가 생겨서 은행에서 좋은 조건에 1억원을 대출해 투자했다고 하면 이 사람의 부채는 1억원 늘지만 그렇다고 당장 가처분소득이 그만큼 늘리는 없다. 반면 이 사람의 금융자산도 늘어난다. 금융자산이 얼마나 늘지는 물론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처음에는 1억원 는다고 봐야 한다. 즉, 이 사람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갑자기 크게 늘지만 금융자산도 크게 는다는 말이다.

이론적으로 이 사람은 부채 상환이 크게 부담이 된다면 금융자산을 처분해 부채를 상환하면 된다. 반대로 부채 상환이 부담이 되지만 금융자산으로부터의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면 부채를 다소 과도한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다. 따라서 가계 금융자산과 부채 사이의 비율을 나타내는 통계를 보조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가계부채를 가처분소득이 아니라 가계금융자산과 비교해 보여 주는 통계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빠르게 상승하고 국제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라고 경고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금융자산과 함께 비교해 보면 상황은 다르다. 이 그림에서 실선은 가계부채액과 가계금융자산액을 각각 1997년말 100으로 놓고 이후 변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림에서 보듯 엎치락뒤치락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비슷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가계의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비율은 210% 넘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가계는 부채를 늘리면서 금융자산도 비슷한 속도로 늘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 가계와 비영리단체들은 부채를 늘리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금융자산도 늘려가고 있다. 이렇게 보면 또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두 가지 통계만 가지고 가계부채가 문제라거나 아니라거나 할 수는 없다. 아무리 금융자산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도 이런 저런 이유로 채무를 연체하는 사례가 늘어나면 경제에는 좋을 리 만무하다. 따라서 부채의 질적 변화를 보여주는 각종 통계를 활용하고 있다.

(은행 대출금 연체율을 차입주체별, 월별로 나타낸 통계다.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다고 위기 운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연체율은 2013년 말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연체율 통계와 금융자산 통계를 보면 가계부채 급증이라는 현상 하나만 보고 "위기가 코앞에 다가왔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것으로 판단된다. 부채가 경제성장 추세보다 지속적으로 빠르게 느는 것은 분명 경계하고 분석해 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부채가 빨리 는다는 통계 하나만으로 좋다 나쁘다고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채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시선을 갖는 경향이 있다. 부채 즉 빚을 내는 사람은 능력을 벗어나는 지출을 하고 있다고 보고, 이른바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을 높게 평가하는 과거의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채무자를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차입이라는 행위 하나만으로 분수에 맞지 않게 산다고 단정할 수 없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현상을 잘 분석하고, 그에 대비한 위험요소를 측정하고, 여기에 잘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낮은 금리의 자동차 할부는 현명한 소비고 가계부채 증가는 나쁜 일이라는 생각이 문제다. 자동차 할부도 부채라는 사실을 혹시 모른다고 할텐가!

▶▶▶ 이 글과 함께 키움증권 홍춘욱 이코노미스트의 글도 읽어볼 것을 권한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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