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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블록체인: 이상과 현실, 어디쯤 와 있나 - 강력 추천

존경하는 한화투자증권 김열매 연구원님이 블록체인에 관한 모든 것을 친절하고 정확하게 담은 책을 공개 보고서로 발간했다. 방대한 분량 때문에 여기서는 최근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그리고 미래와 관련한 부분만 여기에 공유한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맨 아래 소개한 링크에서 직접 자료를 구할 수 있다. 꼭 구해 볼 것을 권한다. 현재 미국에서 평이 좋은 책을 읽고 있는데 이 보고서가 훨씬 낫다.

다시 한 번 김 연구원님께 감사를 드린다.

《블록체인: 이상과 현실, 어디쯤 와 있나》

IX. 블록체인, 과연 세상을 바꿀 기술인가?

1. 잘 돌아가고 있는 기존 인프라를 바꿀 필요는 없다

지난 해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불면서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 스타트업뿐 아니라 상장사와 대기업 그리고 공공기관들도 블록체인 사업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블록체인은 잠재력이 엄청난 기술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장 모두가 뛰어들어야 할 기술인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블록체인의 잠재력과 현재 기술 수준 사이에 간극이 크다. 블록체인 관련 컨퍼런스나 포럼에서 자주 듣는 어구는 ‘infancy’, ‘at the early stage’, ‘too young’ 같은 것이다. 비탈릭 부테린조차 2015년에 만들어진 이더리움이 아직 30% 정도밖에 구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술 개발 초기에 아무리 잠재력이 뛰어난 기술이라고 해도 당장 효용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블록체인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도 없을 테지만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아직은 개발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블록체인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아직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초당 거래 승인 건수를 높여야 하고 거래 수수료는 낮춰야 하며 IPFS(Inter Planetary File System) 등 데이터를 분산해 저장하는 기술도 아직 완벽하지 않다. 인터넷 TCP/IP 프로토콜 같은 표준화가 이뤄지려면 한참 멀었다. 현재의 기술 수준만 놓고 보자면 블록체인보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훨씬 편리한 경우가 많고 클라우드 컴퓨팅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발달한 OECD 선진국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충분히 신뢰할만한 기관들이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 IT 강국이다. 전자정부 서비스가 잘 갖춰져 있고 모바일 뱅킹, 모바일 쇼핑, 메신저 서비스 등 삶에 필요한 대부분의 서비스가 이미 잘 구현되어 있다.

불편함이 없다면 블록체인 기술을 굳이 도입할 필요가 없다. 중계자나 중앙 집권형 기관을 신뢰할 수 있고 중계자의 역할이 필요하다면 탈중앙화를 위한 블록체인 도입은 더욱 불필요하다. 당연한 얘기임에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최근 필자가 만나본 수많은 팀들이 이미 잘 구현된 인프라를 두고도 블록체인으로 개발하겠다며 조언을 구해왔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없어도 잘 돌아가고 있다면 기존 인프라를 바꿀 필요는 없다.

현재 웹 서버/클라이언트 방식과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대부분의 시스템은 아주 효율적으로 구현돼 있다. ‘블록체인을 위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추진해서체 더 나은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렵다.

기존 시스템이 이미 잘 돌아가고 있는 분야가 아니라 기존 시스템으로 구현하지 못했던 부분 중에 블록체인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보는 편이 낫다. 예를 들자면 무료로 배포되던 디지털 자산 거래나 사회적 투자, 기부 사업처럼 비용이 발생하고 거래관계가 존재하나 시스템이 체계화 되지 않았던 분야를 먼저 검토해보면 어떨까?

2. 신흥국을 움직일 블록체인

세계은행에 따르면 세계 약 17억명의 사람들이 은행 계좌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최근 수년 간 모바일 폰 보급 덕분에 빠른 속도로 줄어든 숫자다. 2011년에는 27억명이 은행계좌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으나 중국, 인도, 그리고 아프리카 신흥국에 모바일 기기가 확산되면서 빠른 속도로 계좌도 개설됐다.

저개발 신흥국에서 은행 지점이나 ATM 기계를 설치하려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처럼 도시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은 지역에서는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렇게 오프라인 뱅킹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지역에서 모바일 머니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케냐, 가봉, 수단 등 아프리카 빈국에서는 은행 계좌를 만들기 전에 모바일 머니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중이다. 세계은행은 사하라 이남 국가들을 중심으로 모바일 머니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 지역에 은행 계좌가 없는 성인 3억 5천만 명 중 1억 5천만 명 이상이 모바일 폰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모바일 머니가 빠르게 확산된 대표적인 국가는 케냐다. 케냐에는 엠페사(M-Pesa)라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있다. 엠페사는 현지 통신사인 사파리콤(Safaricom)과 보다폰(Vodafone)의 자회사 보다콤(Vodacom)이 함께 만들어 2007년 서비스를 개시한 후 케냐 전역으로 확산됐다. 현재 알바니아, 콩고, 이집트, 가나, 모잠비크,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에서 약 3천만명 가까이 사용하고 있다.

엠페사의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엠페사 로고가 부착된 동네 상점에 가서 휴대전화 번호와 연결된 계좌를 만들 수 있으며 송금 시에는 상대방 전화번호와 송금액을 누르고 전송하면 된다.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엠페사 로고가 부착된 상점에 가서 해당 메시지와 비밀번호를 제시하면 현금을 받을 수 있다. 은행 시스템이 갖춰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아프리카에서 선진국보다 먼저 모바일 머니가 확산됐다.

모바일 머니에 익숙해진 아프리카 사람들은 블록체인을 활용한 송금 시스템이나 암호화폐에 대해서도 대체로 거부감이 없다고 한다. 자국 화폐의 가치가 안정적이지 않고 국경을 넘는 금융 거래 시 송금 수수료도 높아 블록체인 암호화폐 거래 시 장점이 많다.

2014년 비트페사(BitPesa)는 케냐에서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한 송금 결제 서비스를 개시했다. 케냐는 웨스턴유니언이나 시중은행을 통한 송금 수수료가 약 7%에 달하고 은행간 청산 결제에도 이틀 이상이 소요된다. 국경을 넘는 거래, 특히 선진국과 송금 결제시에는 은행거래보다 비트코인의 장점이 많다.

블록체인은 선진국의 기존 뱅킹 시스템에 비하면 아직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케냐와 같은 저개발 신흥국에서는 상당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아무 것도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모바일 폰으로 뱅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현재 블록체인 기술로도 충분히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부패한 정부나 기관이 오명을 씻고 신뢰를 회복하고자 할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중앙아메리카 최빈국 중 하나인 온두라스는 오랜 기간 군부 독재 체제 하에 있었다. 온두라스는 가장 부패한 국가 상위권에서 오랫동안 빠지지 않았다. 군벌이나 토호세력, 관료조차 시민의 토지를 권력으로 빼앗거나 불공정한 거래가 빈번했다고 한다.

온두라스 정부는 미국 블록체인 스타트업 팩텀의 기술을 도입해 국가 토지 대장을 블록체인 방식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 밖에도 공공부문에 블록체인을 도입해 신뢰도를 높이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엠페사 모바일 머니나 블록체인 등기부 등본 같은 서비스의 필요성을 느낄 수 없다. 은행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환율은 안정적인 편이며 등기부 등본을 의심해야 할 일도 거의 없다. 하지만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대한민국만큼 신뢰할 만 하고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비효율적이고 원칙없이 의사결정을 바꾸는 부패한 권력은 너무나 많다. 이런 국가나 기관들은 블록체인을 도입함으로써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구축하고자 할 유인이 존재한다.

3. 부패한 중개자를 배제한, 신속하고 투명한 원조


국제 원조 사업 역시 신뢰가 필요한 분야 중 하나다. UN(United Nations)과 UNICEF(United Nations International Childrens Emergency Fund) 등 국제 원조기구들은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하고 있으며 투명하고 신속한 원조가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구호 단체로서 식량 원조를 담당하고 있는 WFP(World Food Programme, 유엔세계식량계획)는 2017년 5월, 요르단에 있는 시리아 난민 약 1만명에게 암호화된 140만 달러 상당의 음식 쿠폰을 전달했다. 난민 원조에 이더리움 기반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상점 계산원들은 스캐너로 쿠폰을 식별하고 데이터를 확인함으로써 모든 거래 기록은 이더리움 분산원장에 남았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금융 수수료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인건비와 소요시간도 줄일 수 있었다. 회계적인 측면에서도 식품 지급 즉시 분산원장에 기록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정산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 프로젝트의 리더인 하다드는 지난 해 멕시코에서 열린 이더리움 개발자 회의에서 이 프로젝트를 통해 2018년까지 50만명 이상의 난민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블록체인 기술을 확장할수록 난민들에게 빠르고 신속하면서도 다양한 원조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하다드는 세계 보건 기구의 의료 기록, 유니세프의 교육 인증서 및 WFP의 영양 데이터를 포함해 현재 다양한 원조 기관마다 따로 관리하고 있는 데이터를 난민들에게 개인키 하나로 접근할 수 있게 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기술의 진보는 빠르고 관료화된 조직은 느리다. WFP의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관료주의를 없애고 세계 각 기구가 협력해야 한다. 긍정적인 점은 블록체인 기술로 신뢰가 높아지면, 더 많은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원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합당한 자원 배분이 이뤄지는 것을 세계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게 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자 하는 동기 부여 효과도 기대된다.

4. 블록체인이 바꾸는 사회, 탈중앙화와 검열저항성

블록체인은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로서 탈중앙화와 검열저항성을 가진다. 중앙 서버나 특정 관리 기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블록체인에 기록할 때 사전 검열이 어렵고 블록체인에 한번 기록되면 누군가가 임의로 삭제할 수 없다. 이것은 블록체인이 미디어에 불러온 큰 변화다. 이미 세상은 인터넷 상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듯 변화해 왔지만 중앙 서버 관리 조직이 검열하고 임의로 삭제하거나 편집할 수 있었다. 블록체인은 분산화된 노드에 암호화돼 기록되며 한번 기록되고 나면 특정 시점의 기록을 임의로 변경할 수 없다.

2018년 4월,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중국의 미투(Me Too) 운동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중국 북경대의 한 학생이 온라인 검열을 피해 성폭행 사건을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기록한 것이다. 웨신(Yue Xin)이라는 이름의 학생은 이더리움에 이더(ETH)를 전송하면서 16진법으로 된 메모를 입력했다. 이 메모를 UTF-8으로 전환하면 ‘북경대의 선생과 학우들에게’로 시작하는 글이 나온다.

1998년, 북경대는 21살 대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은 남성 교수를 사임케 했다. 피해 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다. 학교 측은 단지 ‘사임’으로 죽음으로 이어진 성폭력 사건을 종결지었다. 이에 8명의 학생이 과거 사건에 대한 정보공개를 학교측에 요청했으나 학교측은 사임 사실 이외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고 정보공개청구서를 제출한 학생들을 압박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웨신은 이더리움 전송 메모에 기록했고 전세계 네트워크를 타고 퍼져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저장됐다.

중국 정부가 이더리움 블록체인 관련 사이트를 차단할 수는 있겠지만 블록체인의 특성상 한번 올라간 기록을 삭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검열저항성이라는 블록체인의 강점을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며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한국인 개발자에 의해 판문점 선언도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기록됐다. 그는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중국 미투 운동 기록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한국에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을 이더리움에 기록하게 됐다고 말했다. 판문점 선언은 이더리움 551만 7596번째 블록에 기록되었으며 이더리움 네트워크 노드 전체가 파괴되지 않는 한 이 기록은 사라지지 않게 됐다. 기록을 찾아보고 싶다면 이더스캔 사이트에 접속해 검색창에 해당 거래값(Txhash)을 입력하면 확인할 수 있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은 아마존 AWS같은 클라우드 컴퓨팅보다 느리고 더 비싸지만 탈중앙화, 검열저항성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언론의 자유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세계 많은 나라에서 힘없는 개인은 보호받지 못한다.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상에서는 검열을 피할 수 있고 개인 간에 자유롭게 무엇이든 거래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사회적인 기술이다.

한편, 아무도 검열하지 않는다는 것이 반드시 이로운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거짓정보를 기록해도 삭제가 불가능하며 대중은 거짓된 정보에도 때때로 휩쓸린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언론 통제가 강했던 정부일수록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철학에 불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블록체인은 검열에 저항할 수 있는 미디어의 탄생이라는 의미가 있다.


5. 초연결사회, 4 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될 블록체인

블록체인은 자율주행과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혁신을 가능하게 할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는 논란이 많은데 필자는 핵심은 초연결사회(Hyper Connected Society)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었다면 앞으로의 사회는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에 끊임없이 연결되며 자동적·지능적으로 컨트롤 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IT기업뿐 아니라 자동차, 물류,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업과 정부기관들이 협력해 M2M(Machine to Machine), IoT(Internet of Things)에서 IoE(Internet of Everything)로 초연결사회가 되는 스마트 시티를 연구하고 있다.

IBM에 따르면, 컴퓨팅 장치는 2014년 약 100억 개에서 2020년에는 약 250억 개로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까지 사물인터넷은 클라우드 컴퓨팅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 왔다. 이 방식은 중앙 서버로서 집중된 대규모 데이터 센터를 필요로 하는데 구축 비용이 많이 들고 확장성과 보안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그런데 사물인터넷 기기들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게 되면 기기 장치 스스로가 블록체인의 노드가 됨으로써 중앙 서버가 불필요해진다. 물론 보안성도 높아진다.

블록체인은 중개기관(Middleman)을 없애는 것뿐 아니라 사람이 배제된 기계간(Machine to Machine) 거래가 가능하게 할 전망이다. ‘비즈니스 블록체인’의 저자 윌리엄 무가야는 블록체인 기술이 월드와이드웹 이후 가장 혁신적인 인터넷 기술이라고 말한다. 웹이 IT 생태계를 뒤흔들었듯 블록체인 역시 현재의 중앙집중형 시스템 체제에 변화를 예고한다.

6. 블록체인이 해결해야 할 과제: 기술은 번영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블록체인 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비탈릭 부테린은 3년차에 접어든 이더리움의 완성도가 아직 30% 수준이라고 말했다. 3세대 블록체인이라고 홍보하고 있는 대부분의 블록체인은 아직 개념 설계 단계 이거나 테스트넷을 구동하는 수준이다.

CBInsights는 블록체인의 3가지 기술적 난점으로 네트워크 속도, 투자 비용, 참여자 확보를 위한 인센티브 부여 방법을 꼽았다. 이 밖에도 수많은 기술적 난점을 해결하는 데 최소한 몇 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기술적 문제보다 더 큰 난관은 사회적, 법률적 문제다.

국내 한 보험사에서는 스마트 계약을 통해 고객이 의료기록을 별도로 제출하지 않아도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으면 자동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스마트 계약을 구동했을 때 문제의 소지가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 21조(개인정보의 파기)’에 의하면 ‘개인정보 처리자는 보유기간의 경과,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달성 등 그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되었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개인정보를 파기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블록체인에 한번 기록된 데이터는 파기할 수 없다.

물론 블록체인에는 개인의 실명이나 의료기록 원본이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암호화된 문자로만 남게 된다. 현재의 기술로 본인이 아니면 해석이 불가능한 기록이라 해도 개인으로부터 발생한 기록은 법률 상 개인정보로 보기 때문에 이를 블록체인으로 상용화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스마트 계약은 현재 법적 강제성이 없고 알고리즘에 의한 계약이기 때문에 계약 불이행시 피해 보상에 대해 법적인 보호를 받기 힘들다. 따라서 전력 시장에 블록체인을 적용한다면, 마이크로그리드 상 개인 간 직접 전력 거래 시, 계약이나 결제 불이행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대처할 법적인 보호 장치가 없는 셈이다. 부동산 등기부 등본이나 유언장 서비스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비단 블록체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연관된 산업의 전통적 규율과 제도적 장벽을 뛰어넘는 개방된 논의가 필요하다. 1865년 영국의 ‘적기조례(Red Flag Act)’는 산업혁명의 중심이었던 영국이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독일, 미국 등에 빼앗긴 이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마차와 마부를 보호하겠다고 만든 법은 결국 마차와 마부뿐 아니라 자동차 산업도 망쳐버렸다. 암호화폐 투자 열풍과 사기에 대한 소비자 보호 장치도 물론 필요하지만 블록체인을 적용해 사회적 효용을 높일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딜로이트는 2017년 10월, GitHub에 올라와 있는 블록체인 프로젝트 86천여 개 중 약 8%만이 관리되고 있는 중이며 5% 정도만이 생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발전하겠지만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할 수는 없다. 기술을 통해 혁신을 이루고 비즈니스를 성공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이며 조직이다.

이더리움 재단 창립자이자 컨센시스(ConsenSys)의 CEO 조셉 루빈은 자본주의가 살아남으려면 우리 힘으로 체제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네트워크 세상에 부합하지 않는 지시나 통제 기반의 위계질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컨센시스 멤버들은 자신이 일할 것을 알아서 선택하며 하향식 업무 할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해야 할 작업을 공유, 확인하고 하고 업무를 배분하고 각자의 역할과 책임, 보상 수준을 합의하며 이 과정을 블록체인 네트워크 상에서 구현한다. 앞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 기업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다. 특히 코딩같은 컴퓨터 기반의 업무가 대부분인 산업에서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은 상당히 유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거대 기업일수록 조직 체계는 고위 임원진을 시장의 신호로부터 떨어뜨리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도를 밀어내는데 파괴적 혁신은 변방에서 일어나고 결국 기업은 작은 혁신으로부터 위협받게 된다. 90년대 인터넷 확산기에 태동한 기업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 공룡 기업이 되어있다. 아마존도 구글도 모두 한 때는 스타트업이었다.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닷컴버블 이후 사라졌듯 수많은 블록체인 기업들도 험난한 생존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막연한 낙관이나 비관은 불필요하다. 변화가 무섭도록 빠르기는 하지만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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