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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인구구조론, 주택공급, 거시경제와 주택가격

(※ 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연구원 보고서 『하락의 추억, 침체에 대한 회고』 내용 중 일부를 공유한다. 지인 여러 분의 저서가 인용되고 필자의 평소 블로그 글 논조(⇒ 주요 글은 여기를 클릭)와 같은 내용이 등장해 반가웠다.)

※ 인구구조론과 주택가격

(전략) 일본 주택시장의 장기침체는 플라자 합의라는 외부충격에 대한 일본정부의 대응이 초래한 주택가격 버블과, 그 버블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의 정책실패 및 블랙먼데이로 인한 긴축 기회 상실이라는 불운 등이 겹친 것에서 비롯된 독특한 사례다. 그런데 이것 외에 자주 언급되는 원인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바로 인구구조 문제다. 일본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전후해 일본경제 성장률이 둔화되었는데,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잠재 GDP의 성장을 방해하여 장기침체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연령대의 사람들인데, 주택수요의 측면에서는 결혼, 자녀 출산, 보다 좋은 집에 살고자 하는 욕구 등의 이유로 주택 구입 수요가 있는 집단이다. 그런데 이들이 줄어 주택수요가 감소하였고, 그로 인해 주택시장 침체가 오랫동안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한국 역시 동일한 인구구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15세~64세)는 '95년 8,713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여 '16년 7,683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반대로,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은 '91년 12.3%에서 '06년에 20%를 돌파했고, '16년 기준 26.6%다.

일본의 주택시장 침체도 '91년부터 시작되어 생산가능인구비중의 감소 추세와 유사한 하락세를 오랫동안 보였다. 따라서 인구구조론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던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2010년대 초반,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일본과 같이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주택수요 감소로 주택가격이 하락(폭락)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물론 주택수요의 감소는 주택가격의 하락을 초래하는 중요한 변수다. 하지만, 주택가격 형성에 있어 주택수요만이 유일한 변수는 아니며, 일본의 사례만 가지고 한국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사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제시한다.

미국의 경우, 2000년대 중반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였고, 때마침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버블붕괴 초기의 일본과 유사한 패턴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11년을 고비로 미국경제는 회복되었고, 주가지수는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는 한편 주택가격은 '13년 이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90년대 중반에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정점을 찍고 하강 중인 이태리도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정점을 찍고 급락했던 주택가격이 다시 정점에 근접해가고 있다.

스페인도 글로벌 금융위기 무렵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정점을 찍고 지속적으로 하강 중이나 주택가격은 오히려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독일은 사실상 인구비중과 주택가격간의 상관관계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그 외에 호주, 캐나다, 기타 유럽국가의 사례를 검토해 봐도 생산활동인구 비중 및 총인구 감소가 주택가격 하락으로 이어진 경우는 없다. Knoll(2012) 등에 따르면, 세계 주요국의 물가를 감안한 실질 주택가격지수를 보면 주택가격의 급등과 급락을 경험한 국가는 일본이 유일했다.


따라서 생산활동인구 비중 등 인구구조가 일본과 유사한 패턴을 띠며 변화하고 있다고 해서 한국도 일본처럼 주택시장에 장기침체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기는 무리가 있다. 실제로 한국 역시 생산가능인구비중은 '13년 73.4%를 정점으로, '16년에는 72.9%로 약간 하락하였다. 그리고 추후에도 이 비중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14년 이후 전국적으로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한편, 최근에 서울 일부 지역의 주택가격이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인구구조와는 관계없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역시 생산가능인구 및 비중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지만, 주택가격지수는 최근 몇 년간 상승 중이다.


생산가능인구를 포함한 전체 인구를 놓고 볼 때, 인구수가 예상과 달리 빨리 줄어들고 있지 않은 점 또한 감안해야 한다. '05년 인구추계 당시 '18년부터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국민 평균수명의 증가와 국내에 정착하는 외국인의 증가 등의 이유로, '15년 인구추계 결과 '31년 5,296만 명을 정점으로 '32년부터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치가 수정되었다. 고령자 및 외국인이 적극적인 주택 수요자라 보기는 어렵지만, 이들 역시 소유 또는 임대 형태로 주택에 거주해야 한다. 따라서 외국인의 증가 및 고령자의 비중확대는 주택가격 하락을 초래할 만한 유의미한 주택 수요 감소를 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15년 인구주택 총조사 기준으로 약 711만 명(전체인구의 약 14.3%)에 달하는 베이비부머 세대('55~'63년생)의 은퇴 시점에 소득이 부족해진 이들 세대가 주택을 매도하기 시작하고, 이들이 많은 주택 매물을 내어놓아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법 설득력을 얻었었다. 하지만 이들 베이비부머 세대의 실질적인 은퇴가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는 지금, 결과는 상당히 다르게 나오고 있다.

오강현(2017)에 따르면, 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노후 생계비 마련 및 부채상환 등을 위한 주택 자가보유 은퇴가구의 주택처분 행태는 정년(60세) 후 완만히 증가하다가 70세를 기점으로 뚜렷하게 증가한다. 다시 말해, 노령인구의 주택 매도는 은퇴 후 10년 뒤인 70세 이후에야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은퇴 직후에 집을 내다 파는 것이 아니라 은퇴 후에도 일자리 등을 구해 근로활동을 지속하거나, 주택 외에 다른 수입원을 최대한 활용한 후에 주택 처분에 나서는 것이다. 따라서 베이비부머 세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1955년생이 현재 64세이며 70세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은퇴가구의 대규모 주택 매도에 따른 주택가격 하락은 당장 발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주택연금과 같이 주택 매도 없이도 일정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노후 소득 보장 수단이 보편화되고 있다.

주택연금은 '07년 출시 이후 가입자가 꾸준하게 증가하여 '16년 이후 연간 1만명 이상이 가입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고령가구의 1%가 주택연금과 같은 역모지기 상품에 가입하는 데 17년이 걸렸지만, 한국의 경우는 이보다 7년 빠른 10년만에 도달할 정도로 가입속도가 빠르다. 또한 주택연금 수요실태조사(2017)에 따르면, 만 60~84세 노년가구의 27.5%가 집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응답했는데, 이런 비중은 최근 3년간 증가하고 있다(24.3%(15) → 25.2%(16) → 27.5%(17)). 그리고 동일 연령대 노년가구의 17.7%가 주택연금에 가입할 의향이 있으며, 이 비중 또한 최근 3년간 증가하고 있다(13.5%(15) → 14.6%(16) → 17.7%(17)).

따라서 베이비부머를 위시한 고령가구는 주택연금을 국민연금, 퇴직연금 같은 노후 소득 보장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베이비부머 세대는 주택가격의 장기적인 상승을 직접 체험한 세대여서, 오히려 주택매매차익 또는 월세소득 확보를 위해 오히려 주택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여지도 있다. 한국감정원('17)에 따르면, 거주주택 외에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는 60세 이상 가구의 비중이 주택가격이 정점을 찍었던 '07년 대비 '14년에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07년에 60~64세 가구의 0.83%가 거주 중인 주택 외에 다른 부동산을 투자목적으로 구입하였으나, '14년에는 이 비중이 1.94%로 상승했다. 그리고 65~69세 가구 역시 '07년 1.44%에서 '14년 2.43%로 상승했다. 반면에, 다른 연령대의 가구는 해당 기간 동안 전반적으로 투자가구 비중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고령자의 주택 대량 매도로 인한 주택가격 하락 우려는 기우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 주택공급과 거시경제

이처럼 인구구조의 변동으로 인한 주택가격 하락론은 아직까지 한국 주택시장에는 유효하지 않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택가격은 주택수요 측면 외에 주택공급 측면을 고려해야 하며, 한 국가의 거시경제 상황까지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보다 나은 분석이 가능하다. 먼저 주택공급 현황을 살펴보자. 한국의 인구 1천 명당 주택수는 320.5호로, 미국 419.4호('15년), 일본 476.3호('13년), 영국 436.4호('13년) 대비 적은 수준이다.

서울은 355호('15년)로, 뉴욕 412호('10년), 도쿄 579호('13년), 런던 411호('11년), 파리 606호('12년)보다 작아 주요국 수도 대비 주택공급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홍춘욱(2017), 김효진(2016)에 따르면, 한국주택가격은 주택공급량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전년대비 주거용 건축물 착공건수 변동률과 주택가격변동률이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택수요가 주택가격에 절대적인 요소라고 보기 어렵듯, 주택공급만이 절대적인 요소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인구 1천명당 주택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주택공급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택공급의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주택가격이 주택공급량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 호 건설 정책으로 입증된 바가 있다. 이촌향도 현상에 따른 수도권 및 광역시로의 인구집중, 수출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 추진에 따라 상대적으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정책 추진이 등한시되면서, 증가하는 주택수요를 공급이 따라잡지 못했다. 그래서 서울을 비롯한 선호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80년대 중반부터 매년 크게 올랐고, 전세가 역시 매년 갱신될 때마다 큰 폭으로 올라, 오른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한 가장의 자살소식이 신문 사회면에 심심찮게 소개되는 등 큰 사회 문제가 되었다.

당시의 상황은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드라마 제목이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는데, 이러한 극심한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노태우 정부는 '87년에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주택 200만 호 공급을 공약했다. 하승주(2017)에 따르면, '88년 당시 한국의 전체 주택량이 667만 호였는데, 단 5년 사이에 전체 주택 물량의 1/3 가까이를 추가 공급하는 엄청난 정책이었다. 하지만 당초계획보다 1년 빠른 '91년에 이미 223.7만 호를 공급하여 공약 이행을 완료했고, '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전까지 주택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주택가격이 주택공급량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은, 2000년대 부산의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원갑(2014)에 따르면, 부산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나 아파트 가격은 '10~'17년 동안 크게 상승하였다. KB 부산아파트 매매가격지수를 살펴보면 '10.1월 67에서 '17.12월 106으로 58% 상승하였다. 반면, 인구는 '10년 360만 명에서 '17년 352만 명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즉, 인구의 감소 국면 속에서 주택가격은 상당한 속도로 상승하였다.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07~'12년 연평균 부산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은 14,897가구로, '04~'06년 32,895가구 대비 55% 감소했다. 실수요를 반영하는 아파트전세가격이 '07~'12년 사이 62% 상승한 것을 감안해 볼 때, 신규 아파트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의 감소폭보다 주택공급의 감소폭이 더 커서 주택가격이 상승했다고 해석할 수 있을 만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거시경제의 영향을 살펴보자. 혹자는 일본과 한국의 경제구조가 비슷하기에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하는데, 박상준(2017)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경제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많다.

우선, 공통점은 경제활동인구(노동력)가 감소하고 있으며, 경제성장률·잠재GDP·인플레이션율이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부실채권과 기업부채 비율,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일본보다 낮으며, 일본과 같은 심각한 수준의 버블형성이 없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한국 정부는 과감한 재정정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위기의 한가운데 있던 '09년에는 연간 GDP의 4% 이상의 재정을 투입하였다. 이러한 재정투입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정부부채 비율이 OECD 국가 중에서도 매우 낮은 수준인 31%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과 달리 한국경제는 수출중심이며, GDP성장률도 일본보다는 높은 수준이라 일본보다 인구 감소 및 내수 침체로 인한 경제적 악영향에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러나 한국은 가계부채가 많고, 부와 소득 불평등 정도가 일본보다 높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청년실업률과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 소득 불평등 개선이 쉽지 않다는 점 또한 일본에 비해 좋지 않은 점이다. 실제로 일본 기업의 대졸인력 구인난에 대한 기사가 심심찮게 한국 언론에 실릴 정도로, 일본의 고용환경은 구직자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거시경제 현황과 경제구조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들이 여럿 눈에 띈다. 그러므로 이러한 거시경제 환경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 또한 유사하다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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