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보고서 주요 내용)
1. 들어가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하,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pandemic)’ 사태가 쉽사리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최근 국제사회는 그 영향이 글로벌 식량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하여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일부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식품 사재기’나 이른바 ‘식량보호주의’적 현실 인식에 기반한 곡물 수출 제한 조치, 이동 제한과 확진자의 증가 탓에 세계 곳곳에서 빚어지는 농산업 부문 노동 인력 공급의 차질 등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자칫 코로나19 발(發) 식량위기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최근 국제기구와 국내외 언론 등을 중심으로 대두되는 ‘식량위기론’의 주요 내용과 의미, 기존 식량위기와 차별화되는 특징 및 쟁점 등을 살펴보고, 대응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2. 코로나19 발(發) 식량위기론의 대두
현재 국제사회에 드리운 식량위기론은 지난 3월 26일,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 공조 방안 논의 차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처음 대두되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FAO)의 취동위(QU Dongyu) 사무총장이 당시 “다양한 이동 제한 조치가 국내외에서 식량의 생산, 가공, 유통 등에 ‘즉각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고, 특히 빈곤층과 취약계층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각국의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곧 이어 3월 31일에는 FAO는 물론 WHO(세계보건기구), WTO(세계무역기구) 등 세 개 주요 국제기구의 사무총장이 공동성명을 통해 다시 한 번 세계적인 식량부족 현상의 발생 가능성을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식량의 가용성과 이동성에 대한 불확실성의 증대가 연쇄적인 수출 제한을 유발함으로써 글로벌 식량난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 이들의 우려인 만큼, 이 성명은 세계 각국이 가급적 식량 공급사슬에 지장을 주지 않고 무역 흐름을 지나치게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소한의 봉쇄 조치를 취하기 위해 노력해줄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국제기구의 이러한 경고는 최근 일부 국가에서 식량 수출 제한 및 중단 조치가 발동되기 시작한 사실과 관련이 깊다. 자국 내 일부 지역의 식품 품귀 현상 탓에 3월 20일부터 열흘간 모든 곡물 수출을 일시 중단했던 러시아는, 최근 수출을 재개하긴 하였으나 그 양은 6월 말까지 700만 톤으로 제한할 계획임을 국제사회에 통보하였다. 주요 밀 수출국인 우크라이나 역시 지난 3월 30일, 200만 톤의 밀 수출 쿼터를 설정한 것으로 확인된다.
3월 24일에 쌀 수출을 일시 중단했던 베트남은 4월 3일, 4월과 5월에 각각 40만 톤씩의 쌀만 수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2019년 같은 기간의 수출량에 비해 40%가 감소한 수치다. 캄보디아는 4월 5일부터 쌀과 수산물의 수출을 중단했으며, 외신에 따르면 이집트와 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식량수입국들에서 대규모 곡물 비축 움직임이 감지된다. 국내에서도 관련 보도가 잇따르면서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3. 최근 식량위기론의 특징과 관건
미 상원의 농업 분야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던 Westhoff(2010)에 따르면, 세계적인 식량위기의 원인은 일반적으로 수요 요인, 공급 요인, 금융 등 기타 요인의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되곤 한다.
수요 요인은 경제의 성장이나 쇠퇴에 따른 식량 수요의 변화, 육류 소비 증감에 따른 사료곡물 수요의 변화, 바이오 에너지용 곡물 수요의 변화 등을 포함한다. 공급 요인은 기상 요인이나 생산비의 변화, 정책적 변수 등으로 작황, 혹은 시장 유통량에 충격이 생길 경우를 뜻한다. 환율과 투기 수요 등의 영향은 기타 요인으로 구분된다.
나아가 식량의 필수품적 성격과 국제 곡물시장이 세계 총생산량의 극히 일부만 거래되는 ‘얇은 시장(thin market)’이라는 사실은, 언제라도 세계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구조적이고 사회심리적인 기반이 된다. 가령 식량파동의 미미한 조짐도, 여기에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적정 수입량을 확보하려는 수입국의 초조함과 국내 시장의 동요 및 글로벌 곡물가의 상승 수준을 예의주시하며 수출량을 조절하려는 수출국의 셈법이 더해지게 되면, 국제 곡물 시장에서 실제 이상의 ‘초과수요’를 낳아 자칫 가격폭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07~2008년과 2010~2011년에 발생한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 식량시장의 특성과 앞서 말한 요인들이 두루 작용했던 대표적인 사례다. 경제발전으로 육류 소비와 바이오연료 수요는 증가한 반면, ‘라니냐’6)로 인한 가뭄과 폭염 등의 기상이변으로 당시 주요 곡물 수출국의 생산량 급감과 수출 제한 조치가 잇따르면서 심각한 초과수요 상태가 발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늘어난 곡물 투기 거래와 국제 시장에 만연할 수밖에 없었던 불안감이 한층 더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웠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당시와는 달라 보인다. 미국 농무부(USDA)의 최신 ‘세계곡물수급전망’에 따르면, 2019/2020년도 세계 전체 곡물 재고율은 30.4%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 대비 0.1%p만 감소한 수치로, FAO 권장 적정 재고율이 17~ 18%임을 감안하면 전 세계 곡물 재고량은 아직 충분함을 알 수 있다. USDA는 심지어 코로나19로 감소한 러시아의 밀 수출량이 이때를 수출 기회로 삼으려는 EU의 수출 증가로 상쇄되리라는 전망도 제시한다.
원유 가격의 하락 추이는 해상운임을 낮출 뿐 아니라 바이오연료용 곡물 수요의 감소도 가져온다. 국제기구의 권고가 주로 물류 경색의 완화나 시장 심리의 안정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식량 공급에 더 큰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주요 수출국에서 곡물은 대부분의 생산 과정이 기계화·표준화되어 있어 노동 공급의 변화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사실이나, 경제적 위축 및 외식 자제로 인한 식량 수요의 감소 현상 등이 곡물시장의 균형 지지에 도움이 될 것이다. 관건은 어떤 경우에도 모든 국가와 개인의 식량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특히 구매력이 없거나 약화된 국가와 시민의 경우에도 이를 보장하는 일로, 현재는 물론 가까운 미래에도 그러하다.
4. 대응 과제
코로나19의 피해가 자연이나 농작물에 직접적으로 미치지 않고 인간과 인간이 구축한 시스템에 한정되는 한, 이를 최소화하는 일도 우리 사회의 대응 방식에 따라 상당 부분 수습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고 할 것이다. 국제기구의 권고를 우리 상황에 적용하는 맥락에서, 당장 신속하고 유연한 대응을 요하는 한편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몇 가지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나라가 국제기구가 우려하는 빈국은 아니나, 소득과 구매력의 양극화 문제는 남는다. 체계의 공백을 현금이나 유가증권이 온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운 만큼, 우리 사회 내에 식량에 대한 접근성이 좋지 못하거나 이번 사태로 악화된 계층이 없는지 세심히 살피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급식’이 그나마 균형 잡힌 식단을 접하는 유일한 기회였던 학생이나 복지단체 급식 대상이었던 취약계층 등의 영양 실태와 복지전달체계 등을 긴급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여파가 시차를 두고 확산됨으로써 앞으로 실업자나 저소득층이 늘어날 가능성도 개인과 가계의 식량에 대한 접근성의 변화 차원에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는 기존의 전통적인 ‘식량안보(food security)’ 개념을 넘어 FAO(2006)가 강조한 식량안보에 대한 ‘권리 기반 접근(Rights based approach)’이나 USDA 경제조사국(Economic Research Service, ERS)의 주 관심사인 ‘가계식량보장(household food security)’ 개념과도 궤를 같이 한다.
둘째, 농촌 현장의 ‘외국인 (계절)근로자’ 수급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요청된다. 아직 곡물 재고에 여유가 있고 국제 시장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접근성도 양호한 편이지만, 농번기를 맞아 노동력이 제때 투입되지 못한다면 밭작물이나 시설재배 작물 등의 작황을 장담하기가 어려워진다. 보다 노동 집약적인 ‘과일이나 채소의 생산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FAO의 진단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물론 정부가 인력중개센터를 추가 설치하는 등의 ‘농번기 일손부족 지원’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현장 전반의 여론이다. 제도의 구조상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수급은 지자체의 의지와 능력에 크게 의존해 왔는데, 지금은 국가적․외교적 차원에서 기존 출입국 관리 차원 이상의 역할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일례로 독일의 경우, 최근 4월과 5월에 각각 4만명의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입국할 수 있도록 이동․작업 등과 관련된 규정 준수 및 정부, 농민단체, 지역 보건부서 등의 유기적인 역할 분담을 전제로 기존의 입국금지 조치를 일부 푼 것으로 확인된다.
셋째, 현재 정부가 관여하는 해외로부터의 식량 도입시스템 전반에 대한 검토와 보완이 요청된다. 예를 들어 2009년 이래 러시아, 캄보디아 등지에서 ‘해외농업개발사업’이 진행 중이고, 「해외농업․산림자원 개발협력법」 제33조에 의해 ‘비상시’ 해외 농업자원의 국내 ‘반입명령’을 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반입명령의 구체적 조건과 내용이 법령에 규정되지 않고 ‘실무 매뉴얼’로만 마련되어 있는 문제나 해당국 수출 금지 상황에서 반입의 실효성 제고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한진해운 파산 이후 ‘국가필수선박’의 규모가 줄어든 상황에서 곡물 운송의 적시성과 안정성 확보를 위해 이에 포함되는 곡물운반선 및 국적선사에 대한 지원과 관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넷째, 현재 공공비축제도가 쌀 중심으로 운용되는데, 공공비축 양곡에 포함되면서 자급도가 낮은 밀과 콩의 비축량을 늘리기 위한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들 품목은 특히 가공식품이나 사료 가격 등에 영향을 미쳐 국민 식생활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쌀과 함께 이들 양곡의 비축 관련 인프라와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국가기간설비와 사회적 위험관리 비용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다섯째, 상황 변화에 따라서는 농정당국의 투명하고 가독성 높은 정보 제공이 긴요해질 것이다. 국내외 농산물 수급(물류․유통 포함) 및 재고 현황, 농산업계 대응 동향, 농식품 물가 추이, 국제기구 및 언론 보도 동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수시로 모니터링하면서 그 함의와 당국의 고민, 전략 등을 널리 공유하여, 관계자와 소비자의 심리적 동요를 방지하고 시장을 선제적으로 안정시켜야 할 것이다.
5. 나가며
끝으로 한 가지 짚어볼만한 유의미한 사실은, 이 모든 논의를 우리 사회가 차분하게 검토하고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의 근저에는 주곡 생산의 안정성과 충분한 재고량이 있다는 점이다. 사태가 장기화될 수록 이는 더욱 가치 있는 사실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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