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블로그에 소개되는 내용과 페이지는 Simon & Schuster가 2023년 9월 12일 출간한 영문본(ISBN 1982181281)에 기초한다.
전기(傳記)의 천재라고 불리는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집필한 테슬라와 스페이스X 창업자 일론 머스크에 관한 책 『Elon Musk』를 읽고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21세기 들어 아직 세계 최대 혁신가이자 기업가 겸 발명가라고 할 일론 머스크의 출생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작가가 최소 2년간 밀착 취재한 결과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물에 관한 책이지만 위인전이라고 분류해도 크게 문제가 없을 듯하다.
한국에서는 위인전이라면 흔히 주인공의 위대함과 비범함, 그리고 많은 선량한 시민들을 위기에서 구한 행동을 소개하고 그로부터 후세 독자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제공하는 내용으로 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일론 머스크를 빼고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인간 일론 머스크와 그의 성장 경로, 그리고 그의 행동들과 발언 내용 등은 때론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도 하지만, 그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독특하기도 하거니와, 예컨대 그대로 따라서 한다고 그가 이룬 업적을 이룰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이 책에서 보이는 미국이라는 나라, 그 제도와 관행이 어떻게 일론 머스크라는 사람뿐 아니라 그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혁신적 인물의 업적을 가능하게 했는지에 관심을 두고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을 고려해서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지는 않고 개략적인 관심 포인트를 몇 가지 예로 들어보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므로 참고만 하기 바란다.
◯ 은행이 안 보인다
머스크는 1995년 Zip2라는 인터넷 기반 지역 정보 제공 업체를 창업한 이후 이를 매각해 목돈을 마련하게 되고, 이어 X.com, 스페이스X, 테슬라, 솔라시티, 하이퍼루프, 오픈AI, 뉴럴링크, 더보링컴퍼니 등을 줄줄이 창업하며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첨단 및 우주 산업에 혁신을 일으키기까지 수많은 고비와 위기를 넘겼다.
이 책에서 등장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겠으나, 나에게 특이한 부분으로 느껴진 점은 은행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아직도 금융은 은행이 주도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런 가운데 정부가 은행을 '밀착 관리'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경제를 관리하는 한국의 경제 및 정치 구조를 볼 때 이는 충격적인 부분이다.
은행과의 관계를 잘 맺은 뒤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대출받고, 그 자금으로 사업을 확장한 뒤 자산 가치를 불리고, 그 자산을 바탕으로 다시 은행 자금을 융통 받아 사업을 확장하는 전형적인 한국식 사업 방식은 이 책에서 보이지 않는다. 물론 머스크가 은행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전혀 언급이 안 돼 있으므로 은행을 배제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비중이 크지 않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대신, 머스크는 고비 때마다 옛 동료 사업가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위기를 넘기곤 했다.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을 통한 자금조달도 꽤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동료 사업가들도 자신들의 사업을 통해 자본시장에서 현금을 확보했을 터라 그만큼 미국 자본시장은 엄청난 기능을 한다는 말이 된다. 한국의 경우 주식시장은 여전히 '투기판'으로 인식되고, 정책 당국자들마저 주식시장의 순기능을 키울 생각이 거의 없는 상태여서 이 부분이 특히 눈에 띄었다.
◯ 이사회가 작동한다
이 책에서 또 눈길을 끈 부분은 이사회의 기능이다. 머스크는 자신이 설립자 겸 최대 주주이면서도 종종 이사회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는 모습이 자주 이 책에 등장한다. 특히 자신이 사촌들에게 자금을 제공해 설립했던 솔라시티가 어려워지자 이를 테슬라가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잘 묘사돼 있다.
머스크는 솔라시티의 기업 가치에 25%의 프리미엄을 부여하기로 했는데, 여기에 이사회를 설득하는 데 공을 들이는 부분이 언급된다. 결국 테슬라와 솔라시티 양사 주주들 표결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테슬라는 이해당사자라 표결에서 제외된다는 설명도 나에게는 특이한 부분이었다.
더구나, 주주들이 승인한 인수 이후 테슬라 주주들이 배임 혐의로 소송을 걸었는데, 재판부는 테슬라가 '이 부문에 진심'이라는 점을 인정해 머스크 편을 들어주는 부분도 특이하다. 그만큼 재판부가 탁상공론이나 윤리ㆍ도덕적 측면보다는 현실적인 산업적 측면을 잘 이해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점도 놀라웠다.
◯ 최고 경영자들이 자유롭게 소통한다
이 책에는 또한 머스크가 구글이나 아마존을 포함해 우리에게는 거대한 기업들의 창업자나 최고경영자들과 자유롭고 창의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모습도 소개된다. 물론, 나처럼 일반인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일 수는 있겠으나,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에서 관심이 있거나 큰 견해차를 느낄 때 머스크는 상대방 경영자에게 연락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사업 제휴나 협력 같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원리에 관한 견해차가 있을 때도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이채롭다.
◯ 정부의 역할은 '혁신을 막지 않는' 데 있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이렇다 할 성공 사례를 기록하기 전에 이미 국방성이나 NASA로부터 대규모 계약을 따내 사업을 더욱 진척시키게 된다. 이 과정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웬만한 나라라면 한번 맺으면 관계가 오래 유지되고 규모가 커서 각종 정치적 고려가 개입되기 마련인 국방 및 우주 관련 사업이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스페이스X 같은 신생기업에도 기회가 돌아간다는 점 자체가 미국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 거물급 정치인이나 정치 세력이 개입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이른바 '괘씸죄' 때문에 잘 나가던 사업이 망하는 사례가 아직도 없지 않은 한국에서 보면 이런 부분은 미국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 머스크 개인기로 이어져 온 혁신 드라이브
스티브 잡스의 사례에서도 거론됐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머스크가 주도한 혁신 바람이 과연 계속 이어질지, 그리고 얼마나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의 혁신은 쉽게 말해서 '물리학 규칙 이외에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는 엄청난 괴짜 발명가'의 개인기에 의존한다. 테슬라가 천재성을 잃거나 사망한 뒤 이 혁신의 바람은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아직 제도적으로 그의 혁신이 뿌리내렸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물론, 혁신이라는 것이 '제도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으면 혁신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 흐름의 미래는 나에게는 큰 궁금증의 근원이다.
━━━━━
[책 정보]
Publisher : Simon & Schuster (September 12, 2023)
Language : English
Hardcover : 688 pages
ISBN-10 : 1982181281
[저자 정보(위키백과)]
월터 세프 아이작슨(Walter Seff Isaacson, 1952년 5월 20일 ~ )은 미국의 작가, 저널리스트, 교수이다. 워싱턴 D.C.에 기반을 둔 비당파 정책 연구 기관인 아스펜 연구소의 회장이자 CEO, CNN의 의장이자 CEO, 타임지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아이작슨은 하버드 대학교와 옥스퍼드 펨브로크 칼리지에서 장학생으로 다녔다. "와이즈맨: 여섯 친구들과 그들이 만든 세계" (1986)의 에반 토마스와 공동 저자이며, "키신저: 전기" (1992), "벤자민 프랭클린: 미국인의 삶" (2003), "아인슈타인: 그의 삶과 우주" (2007), "아메리칸 스케치" (2009), "스티브 잡스" (2011), "해커, 천재, 괴짜들이 디지털 혁명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2014), "레오나르도 다빈치" (2017), "코드 브레이커: 제니퍼 다우드나, 유전자 편집, 그리고 인류의 미래" (2021), "일론 머스크" (2023)의 작가이다.
아이작슨은 툴레인 대학의 교수이자 뉴욕시에 기반을 둔 금융 서비스 회사인 Perella Weinberg Partners의 자문 파트너이다. 그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재건을 감독한 루이지애나 복구청의 부회장이었고, 미국의 소리 방송을 운영하는 정부 이사회의 의장이었으며, 국방 혁신 위원회의 일원이었다.
홈페이지: Isaacson.Tulane.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