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제 성장률은 위기시를 제외하고는 거의 한국전쟁 이후 최악이었다. 특히, 제조업은 물론이고 사업장 부근 자영업 경기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수출이 급감한 가운데 건설업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등 내수 경기도 좋지 않았다. 이에 야당을 중심으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한 경기 부양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재정 건전화를 밀어붙이며 이를 거부했다.
그런데 실업률은 올라가기는커녕 역대 최저 수준을 유지했다. 2022년 들어 3%를 밑돌기 시작한 실업률은 2023년 2/4분기와 3/4분기에는 2.6%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개인적으로도 이 부분이 큰 미스터리로 여겨졌다. 지난 30여년 동안 성장률과 실업률 간 역의 관계를 나타내는 이른바 오쿤의 법칙을 고려해 보면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성장률 대비 실업률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 조사국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블로그에 게시했다. 성장이 둔화하는데 기업들이 높은 고용 수준을 유지하는 비결에 관한 한 가지 답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블로그 주소는 맨 아래 공유한다.
(채용박람회 현장 모습. 사진 출처: 뉴스1) |
최근 실업률은 오쿤의 법칙이 제시하는 실업률보다 1.2%p 낮은 수준
팬데믹 직전에 추정된 오쿤의 계수와 팬데믹 이후 실제 GDP 성장률을 이용하여 오쿤의 법칙을 토대로 추정한 실업률은 실제 실업률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그림3> 참조). 먼저, 팬데믹 초기(2020년) 성장이 감소하는 과정에서 실제 실업률은 소폭 상승에 그치며 오쿤의 법칙이 제시하는 수준과 큰 괴리를 보였다.
이는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 정책, 일시 휴직 증가 등에 기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성장세가 둔화된 2022년 이후에는 오쿤의 법칙에 기반한 실업률보다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그 격차는 지난해 1/4~3/4분기 중 1.2%p에 달하였다.
(그림 3. 오쿤의 법칙에 기반한 실업률) |
이는 기업들이 생산량에 비해 근로자를 많이 고용하고 있음을 의미
기업들이 생산량 대비 많은 근로자를 비축하고 있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기업들이 인력난에 대한 우려로 기존 근로자들의 해고를 줄이면서 노동력을 비축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팬데믹을 거치며 노동생산성이 낮아져 더 많은 근로자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후에는 기업의 노동 비축으로 논의를 좁혀, 그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사실 기업의 노동 비축 규모를 명확히 측정할 수 있는 지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규채용 어려움에 따른 인력난, 신규 실업 감소, 기존 근로자의 근로시간 조정(감소)이 동시에 나타날 경우, 이는 기업의 노동 비축 현상을 설명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먼저 타이트한 노동시장으로 인해 기업들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신규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림 4> 참조). 신규채용의 어려움으로 인력난을 겪는 기업들은 기존인력을 최대한 보유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신규 실업이 크게 줄어들었다.
실제로 경기가 둔화된 2023년에도 제조업을 중심으로 신규 실업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그림 5> 참조). 한편 제조업의 초과근로시간은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그림 6> 참조). 이는 기업들이 고용조정 대신 근로시간을 조정하면서 경기 변화에 대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업률 변동 요인분해 결과 해고 감소가 크게 기여
마지막으로 실업률 감소 요인을 실업으로의 유입(inflow, 취업→실업) 감소와 실업에서의 유출(outflow, 실업→취업) 증가로 나누어 분해(Shimer decomposition)해 보아도, 실업으로의 유입 감소에 따른 기여도가 훨씬 크게 나타났다. <그림 7>을 보면 취업→실업 전환율(실업으로의 유입)이 하락하고 실업→취업 전환율(실업에서의 유출)이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유입과 유출 모두 실업률 감소에 기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요인분해 결과 최근 실업률이 하락하는 동안 실업으로의 유입 감소의 기여도(92%)가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과거 평균 수준(71%)에 비해서도 높았다(<표 1> 참조). 이는 기업의 노동 비축에 따른 해고 감소가 실업률 하락의 주요 요인 중 하나임을 시사한다.
팬데믹 회복 과정에서 실업률이 큰 폭 하락한 것은 기본적으로 대면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노동수요가 늘어난 데 기인하나, 인력난을 우려한 기업의 노동 비축 행태도 낮은 실업률이 유지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올해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높아지면서 성장률과 실업률 간 괴리는 줄어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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