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5년 전 이명박 대통령은 상대 정파의 10년 통치를 마감하고 집권한 터라 많은 야심찬 정책을 시행하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집권 초반부터 그야말로 속도감 있게 자신의 정책을 시행하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이런 저런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5년 전 이맘 때는 이미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를 결정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로부터 거센 반대에 부딛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정책 면에서도 밀어부치기식 태도를 취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상수지가 오랜 만에 적자로 전환돼 있었다. 그에 대한 처방으로 원화 절하를 선호하는 정책적 기조를 취했지만 이는 국내 물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곧 이어 터진 미국발 금융위기로 원화 가치는 급락했고 정부는 대규모 자본이탈을 막기 위해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탕진하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대조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정당에서 정권을 재창출했지만 근 한 세기 만에 불어닥친 세계 경제위기와 언제 끝날 지 모를 불황 속에서 유권자들의 요구도 많이 변화했다. 높은 경제성장보다는 낮은 인플레이션을, 빠른 수출 증가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 유권자들이 늘어나게 됐다.
이렇게 유권자들의 요구가 변화한 것과는 별개로 박 대통령은 정책을 구상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이고 한 번 결정하면 무리가 따르더라도 꼭 지키려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전세계가 경제 위기 극복에 여념이 없지만 경제 분야에서 박 대통령이 약속한 공약은 일면 빈약한 편이다. 고용률 70% 달성과 2% 초반의 인플레이션을 약속한 것이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전부다.
모든 대통령이 화려한 거시경제적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구호와는 달리 박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준비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하고 있다. 집권 직후부터 올해 경제전망을 하향조정하고 일자리 창출과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이를 신속히 집행하고 있는 모습은 환영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또 국민행복기금 조성을 통해 소규모 채무 부담으로 사실상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해 주겠다는 정책도 확정해 신속히 시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몇몇 정책 집행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궁금증이 하나 있다. 과연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책임있게 수립하고 집행하는 책임자가 누구냐 하는 점이다.
기획재정부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켜 정부 내 경제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무게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는 확인됐지만, 과연 청와대와 부총리 사이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또 아직도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고 있는 국무총리의 위상과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전임자가 임명한 중앙은행 총재와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등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 있다.
대한민국과 같이 역동성 있고 국민들의 정치적 욕구가 다양한 국가의 경제를 이끌어 가는 데 모든 당국자가 헐떡이듯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경제라는 말만 들으면 모두가 머리 속에 그리는 책임자의 믿음직한 모습, 그리고 문서로 쓰여지지는 않더라도 국민들 사이에 인정받는 정책의 청사진 같은 것은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의 가장 취약한 부문 가운데 하나로 부진한 국내 설비투자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기업 정책이 추구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경제민주화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 아베노믹스로 일컬어지는 일본의 유례없는 통화정책 실험의 성패에 따른 여파에 대처할 우리의 정책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남아 있다.
짧은 시간에 비현실적일 정도의 야심찬 목표를 쏟아내고 이를 밀어부치듯 추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준비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