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지표로 보면 한국의 고용 사정은 비슷한 규모의 국가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좋은 상황이라고 할 정도다. 실업률은 3%대 근처로 매우 낮은 상태에 있고 OECD 기준 고용률도 65% 수준으로 양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 사정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만족감은 아주 낮은 상태이며 정부도 일자리 창출을 정책의 우선 과제로 늘 내세우고 있다.
실업률은 낮고 고용 증가는 계속되고 있는데 국민들은 통계가 이상하다고 하고 정부는 일자리 창출이 안 돼 송구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왜 그럴까? 우선 정부의 공식 통계에 대한 신뢰가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로 들 수 있다. 소비자물가지수 개편 때마다 정부의 "의도"에 대한 이런 저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아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거대 담론과 의혹 제기에 유난히 집착하는 일부 언론의 관행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한국에서는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일자리 수가 절대적으로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갖춘 자격요건에 맞는 일자리가 없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도 높은 대학진학률 등으로 인해 한국인들의 전체적인 학력수준은 높아졌지만 그에 맞는 고급 일자리는 충분히 늘지 않는 것이 그 이유다. 따라서 자신은 실업상태에 있지 않으면서도 고용사정이 "심각하게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최근 고용 증가가 주로 50대 이상 세대, 즉 경험은 풍부하면서도 일자리에 대한 기대치는 낮아져 있는 사람들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높은 가계부채 상환 부담, 자녀 양육 부담 그리고 자신들의 노후 대비 등의 압박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장년/노년층은 어떤 일자리도 마다 않고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펼친다. 이들의 취업이 늘자 상대적으로 젊은 구직자들의 취업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와 아들이 비슷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이런 경쟁 상태를 틈타 비교적 경험은 많으면서도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자세를 가진 아버지 세대를 선호하는 측면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일자리가 무한정 늘어나 일하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취업할 수 있다면 물론 이 문제는 바로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상황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본다면 결국 보다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개선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즉, 일자리 얘기가 나올 때마다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 아니라 교육 정책도 무작정 대학진학을 장려하거나 유도할 것이 아니라 대학진학의 경제적 비효율성에 대한 교육도 함께 실시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대학 졸업이 거의 필수인 것처럼 돼 버린 사회 풍조를 바로잡는 일도 시급하다. 그런데 이런 일을 포함해 모든 국가적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자리는 이미 거의 전부 이른바 명문대학 출신들이 독점하고 있다는 점은 최대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