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 얘기만큼이나 현상 진단에서부터 바람직한 방향에 이르기까지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공감대 형성이 어려운 분야도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 "주택시장" 상황에 대해 얘기하면서 경제논리를 바탕으로 얘기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과는 대화가 진전을 이루기 힘들다는 것을 여러차례 경험했다. 주택의 특성상 라면이나 회사의 주식과는 다른 무언가가 개입돼 있을 수 있다는 논리에는 일단 동의할 의향이 있다.
그러나 주택가격이 현재 수준에서 폭락하면 모든 국민이 주택을 구입할 수 있으며 따라서 바람직하다고까지 말한다면 이는 심한 선동형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주택가격이 폭락하면 경제위기는 거의 불가피하고 경제난으로 인한 고통이 주택 구입으로 인한 기쁨을 압도할 것이다. 이는 차라리 주택을 정부가 무상으로 전국민에게 공급해야 한다고 하는 편이 낫다. 이는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실현할 수 없다.
주택시장 얘기를 할 때 필자가 경계하는 것은 그럴듯하면서도 그 의미에 대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정의를 내리기 힘든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 하우스푸어, 집없는 서민, 주택가격 버블, 주거 정의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용어를 사용하며 주택시장에 대해 논하자고 하는 것은 마치 규칙도 없고 링도 없고 심판도 없고 장비에 대한 합의도 없이 온세상을 뛰어다니며 싸움을 하는 것을 운동경기로 취급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혹시 이런 용어에 대해 사전합의를 한 뒤 논의를 한다고 해도 이는 이미 경제현상으로서의 주택시장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사회현상이나 정치현상 혹은 문화현상에 대한 논의로 분류돼야 한다. 공식적으로 발표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지난 30여 년간의 경제지표를 바탕으로 할 때 한국의 주택가격은 전국단위로 평가하든 서울지역만 평가하든 고평가를 논하기는 힘들다.
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를 보면 서울지역 주택가격지수는 1985-2012년 사이 2.7배 상승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전국)는 3.1배 상승했다. 결국 실질 기준 주택가격지수는 약 40% 하락한 것이다. 더구나 한국 도시지역 가계소득은 자료가 있는 1990년부터만 보더라도 2012년까지 4.1배 상승했다. 이 기간중 소비자물가지수는 2.8배 올랐다.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집값이 과도하게 올랐다는 볼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서울 강남의 집값은 몇 배 올랐는데 무슨 소리냐, 혹은 어디 어디 집값은 많게는 5년만에 3배 올랐는데 무슨 소리냐라고 할 지 모른다. 아니면 월급쟁이가 월급을 한 푼 안 쓰고 모아도 서울 아파트 한 채 사는 데 과거보다 많은 기간이 걸린다든가 하는 얘기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대한민국 주택시장" 문제가 아니다. 또 "월급"을 평균 개념으로 할 지 중위값 개념으로 할 지 등등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집"에 대한 집착은 심한 편이며 "집"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오죽하면 "집없는"이라는 말 다음에 "설움"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자연스럽기까지 하겠는가. 집을 구매하고 안하고는 경제적 선택의 문제다. 현실적으로 집을 소유하지 못하면 임대해야 하고, 세입자는 서러운 일을 많이 겪으니 그런 것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택시장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임대차인간의 "부당한" 관계의 문제다.
물론, 주택시장 문제를 경제현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이상의 글은 사실상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전국 및 수도권 주택보급률은 모두 100%를 넘었다. 다주택 보유자가 많지만 주택보급률은 개선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
(주택 구입의 주 대상이 되는 30~40대 인구는 2006년 정점을 지나 감소하고 있지만 전국 가구 수는 증가하고 있다.) |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중요한 투자자산이자 동시에 부채 담보물이다. 주택가격 폭락이 주거복지와 서민생활 증진에 기여할 것처럼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
(서울 주택가격지수는 1985~2012년 기간 중 2.7배 올랐지만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3.1배 올랐다. 따라서 실질 기준 주택가격지수는 오히려 40% 하락했다. 더구나 이 기간 중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실질 기준 약 7배 증가했다. 가계소득이 고소득자들 때문에 과대평가됐다고 한다면 이는 소득분배의 문제지 주택시장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