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그래프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한은 기준금리 추이와 금리 정책에 영향을 주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내수 증가율,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 근원물가지수 증가율(모두 전년동기비 기준) 추이를 보여준다. 금통위는 물론 다른 여건도 참조해 정책을 결정하지만 밖에서 볼 때는 이러한 경제지표가 한은의 금리정책을 가늠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오랜 동안 한은 금통위 회의 기사를 담당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필자가 아직도 아쉽게 생각하는 기간이 두 번 있다. 필자가 어떤 면에서 아쉽게 생각하는지 간략히 소개하고 한은과 정부 나름대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소개해 본다. 물론 모두 필자의 사견임을 밝혀 둔다.
※ 더 일찍, 더 많이 금리를 인상했어야 (2009년 4/4분기~ 2011년 2/4분기)
미국발 금융위기로 많은 나라가 경기 후퇴를 겪기도 했지만 한국은 2009년 중반부터 가파른 회복세를 보였다. 급기야 이성태 당시 한은 총재는 2009년 중반 경기 하강세가 멈춘 것 같다고 말하고 9월에는 금리를 조금 올리더라도 상당히 완화적이라며 금리 인상 신호를 시장에 보냈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2010년 3월말 퇴임 때까지 금리 정상화 착수를 하지 못했다.
그림에서 보듯 당시 근원물가지수 증가율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지표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다. 만일 당시 금리정상화를 서둘러 시작해 결국 더 많이 인상할 수 있었다면 후일 경기 둔화세가 심화될 때 한은은 금리 인하를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지금도 나오고 있는 이유다.
물론 당국으로서도 사정은 있었을 것이다. 우선 정부 쪽에서는 세계 경제가 하루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한 상황 속에 있었고 게다가 모든 지표가 기저효과 등 기술적 요인에 의해 왜곡되고 있었으므로 경제지표 몇 개만 가지고 경기회복을 자신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한국은 2010년 G20 정상회담 의장국으로서 전세계적으로 시행중인 경기부양정책에서 제일 먼저 이탈하는 데 따른 부담을 피하고 싶었을 것으로 이해한다.
※ 더 자주, 더 많이 금리를 내렸어야 (2012년 1/4분기~2013년 1/4분기)
한국 경제는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 영향으로 내수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었고 인플레이션도 2011년 후반부터 둔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은은 2012년 2/4분기까지 금리 인하를 단행하지 않았고 3/4분기부터 인하했다. 그러나 금리 인하는 단 두 차례로 멈췄고 이후 새 정부 출범 뒤 깜짝 인하를 단행하기까지 금리를 동결했다.
그러나 당시 경제지표는 일제히 하강세를 지속했고 더구나 인플레이션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미온적인 금리 인하 속에 실질금리는 오히려 상승하는 결과를 나아 소비 촉진 효과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오고 말았다.
당국의 사정은 이렇다. 2011년 후반 유로존 재정위기 기간 중 한국의 금리가 너무 가파르게 내려가면 외국 자본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당국은 판단했을 수 있다. 또한 당국은 이른바 "정책여력"에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즉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의 경우 기준금리를 0%까지 내린 뒤에도 완화적 정책이 필요할 땐 뾰족한 정책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여전히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한국 금융자산의 경우 내외금리차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해주지 않으면 외국인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한은에 대한 시장의 신뢰일 것이다. 필자는 공허한 "독립성" 논란을 지양하고 오히려 "합리성" 및 "신뢰성" 구축에 더 많은 노력이 집중돼야 한다는 입장이며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관련 글 ☞ 한국은행 독립성의 우상을 넘어)